'아이돌 사관학교'의 일그러진 교육...술자리 모임에 학생들 세운 서울예술공연고

문주영 기자
지난해 3월 서울 모처에서 서울공연예술고 학생들이 한 보험회사가 마련한 직원대상 만찬회에서 교복을 입고 공연하고 있다. 이 행사에서 직원들은 술을 마시면서 학생들의 공연을 지켜봤다. ㅣ더불어민주당 박용진 국회의원실 제공

지난해 3월 서울 모처에서 서울공연예술고 학생들이 한 보험회사가 마련한 직원대상 만찬회에서 교복을 입고 공연하고 있다. 이 행사에서 직원들은 술을 마시면서 학생들의 공연을 지켜봤다. ㅣ더불어민주당 박용진 국회의원실 제공

“교장 선생님이 몇년 전부터 학생들을 실습 목적이라며 외부 공연에 내보내는데, 춤을 추는 실무과와 노래하는 실음과 학생들이 주로 동원됐어요. 작년부터 스무 차례 넘게 공연하면서 한번도 사례비를 준 적 없고, 해외공연은 오히려 학생들이 사비를 내서 갔죠. 군부대 공연의 경우 과거 몇몇 군인들이 여학생들에게 신체접촉을 시도해서 아이들이 거부했어요. 그랬더니 올해는 연기과에서 ‘난타’ 공연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갔다고 들었어요.”

방탄소년단 정국을 비롯해 유명 아이돌 가수들이 졸업해 ‘아이돌 사관학교’로 불리는 서울공연예술고가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보험회사 만찬회 등 어른들 술자리에 동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학생들은 또 부부 사이인 교장과 행정실장의 모교에서 치러지는 행사에도 동원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15일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 “이 학교가 아이들을 교장·행정실장의 사적인 동문모임이나 보험회사 만찬에 데려가면서도 공연비는 교장 개인 소득으로 가져갔다”며 이처럼 밝혔다.

이날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학부모 ㄱ씨는 “보험회사 술자리 공연은 지난해와 올 3월에 있었다”며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공연하는데 무대 앞 원형탁자에선 술판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학교 측에 항의했지만 교장 등은 “나는 보지 못했다”는 말만 했다고 했다. ㄱ씨는 “그 공연에 교장과 행정실장, 교사가 함께 있었다는데 몰랐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의 공연은 한국교직원공제회가 100% 출자한 더K손해보험이 주최한 행사에서 이뤄졌다.

전교생이 800여명인 이 학교는 학생들이 전공에 따라 실무과와 실음과, 연기과, 무대미술과로 나뉜다. 공연은 주로 춤을 추는 실무과 소속과 보컬 담당하는 실음과 소속 학생들을 시켰다. 실음과에서도 악기를 담당하는 학생들은 제외됐다. “악기를 운반하려면 번거롭고 돈이 들기 때문이었다”고 학부모들은 설명했다.

학생들은 올해 들어 8월까지 군 위문공연, 교회 초청공연, 노인복지관 초정공연 등 총 15차례 걸쳐 동원됐으며 이 중엔 교장의 모교인 ○○고교 부흥회 초청공연, 행정실장의 모교인 ◇◇여대 총동문회 공연도 포함됐다.

올해 6월 3박4일 일정으로 일본 오키나와 공연을 갈 때에는 학생들이 항공료·숙박료 등 70여만원을 직접 부담했지만 사례비를 전혀 받지 못했다. ㄱ씨는 “나중에 현지 신문 등을 찾아보니 이 공연은 성인 한 명당 별도의 입장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행사 주최 측이 학교에 1000만원을 공연비로 준 것으로 학교 운영위 회의록에 기재돼 있었다”며 “교장은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게 불법이라 안 줬다’고 한다. 그렇다면 학교운영비로 썼어야 하는데 학교 수입으로 잡혀 있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실 관계자는 “한국교직원공제회를 통해 확인해 보니 각각 100만원씩인 공연 사례비는 모두 행정실장의 개인통장으로 입급됐다”고 밝혔다.

학부모들은 지난 8월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에 제보했고, 시교육청은 이달 10일부터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이 학교는 학생들을 공연과 술자리에 동원한 것 이외에도 시설공사비 횡령과 신입생 전형 불공정 의혹 등이 제기된 상태다. 옥상 등 학교 시설 일부를 실내공간으로 개조해 이사장과 교장·행정실장 부부가 거주한 의혹도 받고 있다.

학부모들은 만 99세인 재단이사장 ㄴ씨가 몇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인 후 교장·행정실장 부부가 학교를 파행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학교는 지난 9월16일 이사회를 열어 ㄴ씨가 자의로 사임했다며 이사장을 교체했다.

시 교육청 감사관이 ㄴ씨 면담을 요구했지만 교장·행정실장 부부는 입원을 이유로 ㄴ씨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를 맡은 시교육청실 관계자는 “경찰을 통해 신변확보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ㄴ씨의 행방을 모른다”며 “이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하지만 학교 측의 비협조적 태도로 감사가 지연되고 있다. 법 위반 사례가 나타나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5일 국감에서 “지난달 감사에 착수하려고 했지만 대학입시 원서 접수기간이어서 학부모들 요청으로 날짜를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아이돌 산실’로 평가받는 한림연예예술고의 경우 평생교육법에 따른 평생교육시설로 2015년 감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시교육청이 신입생 모집 중단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시교육청은 이 학교로부터 법인화 전환 약속을 받아 현재는 처분 유예를 통해 신입생 일부를 받도록 한 상태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