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40cm칼로 시민 위협 경찰 "요리 좋아해" 황당 무혐의

김다영 입력 2018. 10. 12. 01:55 수정 2018. 10. 12.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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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경위 40cm 식칼들고 찾아가 조합장 위협
"요리를 좋아해 가져간 것" 혐의 부인
수사 보름 만에 '불기소의견' 검찰 송치
피해자 "명백한 제식구 감싸기" 반발
동대문경찰서 소속 A경위가 8월14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위치한 재개발조합 사무실에서 신문지에 싼 흉기를 들고(빨간색 동그라미) 조합원을 위협하고 있다. [사진 이문1구역 재개발조합 ]
갈등 관계에 있던 재건축 조합장을 흉기를 들고 찾아가 위협한 현직 경위에 대해 경찰이 무혐의 처분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측은 "경찰의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1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중랑경찰서는 신문지에 싼 식칼을 들고 재개발조합사무실로 찾아가 조합장 B씨를 위협한 혐의(협박)를 받는 동대문경찰서 소속 A경위에 대해 불기소 의견으로 8월 28일 검찰에 송치했다. A경위는 8월 14일 오후 5시30분쯤 한 여성과 함께 조합사무실을 찾아가 그동안 갈등 관계에 있던 조합장 B씨를 향해 고함을 치며 "밖으로 나오라"고 위협했다. A경위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A경위가 소지하고 있던 약 40cm가량의 흉기를 증거물로 압수하고 A경위를 대기발령 조치했다.

경찰은 중립성을 위해 사건을 동대문서가 아닌 인근 중랑서로 이첩해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중랑서는 수사를 시작한 지 보름 만에 A경위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중랑서 관계자는 "소속이 달라 A경위를 감쌀 이유가 전혀 없다"며 "형사팀에서 수사를 마친 뒤 중립성을 위해 경찰서 내 별도의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재확인했지만 범죄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A경위는 당시 들고 간 식칼에 대해 "요리를 좋아해 이를 위해 들고 있던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랑서 측은 "A경위가 대학에서 조리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근무 중인 지구대에 확인한 결과 지구대에서 요리를 해 먹기도 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사건 당시 A경위와 사무실에 동행했던 여성이 A경위가 들고 있던 흉기를 빼앗아 해당 건물 지하에 숨겼던 상황에 대해서는 "여성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 그렇게 했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동대문경찰서 소속 A경위가 8월14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위치한 재개발조합 사무실에 신문지에 싼 흉기를 들고(빨간색 동그라미) 들어가는 것을 한 여성이 말리고 있다. [사진 이문1구역 재개발조합]

그러나 피해자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피해자 B씨는 "칼을 들고 고함을 지르며 위협하는 사람이 요리를 위해 칼을 가져왔다고 하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는데, 이를 믿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냐"며 "이건 상식 밖의 처분이고 명백한 경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고 비판했다. B씨는 이어 "아직도 그날만 떠올리면 손이 떨리고 겁이 나 잠을 못 잔다"며 "경찰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같은 시민은 억울해서 살겠냐"고 비판했다.

경찰은 지난해 6월 경남 진주시에서 차량 안전벨트 단속에 걸린 뒤 “눈 감아 달라”는 부탁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욕설하며 위협한 C씨에 대해 흉기소지죄를 적용한 바 있다. 현행 폭력행위처벌법 제7조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범죄에 공용될 우려가 있는 흉기를 휴대하거나 제공, 알선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물론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흉기 소지만으로 폭력행위처벌법에 규정된 범죄에 쓰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그러나 경찰을 위협한 시민에 대해서는 흉기 소지를 범죄로 봤던 경찰이 시민을 위협한 경찰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준다면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에서 재조사 중이다. 사건을 송치받은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관계자는 "아직 기소 및 불기소 등에 관해 결정하지 않았다"라며 "사건에 대해 다시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A경위가 소속된 경찰서 청문감사관실 측은 "검찰의 처분을 본 뒤 A경위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다영·김정연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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