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카메라를 내려놓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담았습니다

정여울 작가·문학평론가

참으로 아름답고너무나 다정해서

리우데자네이루·쿠스코·멕시코시티의 거리 풍경

마리아 이스키에르도, ‘프롤레타리아 어머니’, 1944

마리아 이스키에르도, ‘프롤레타리아 어머니’, 1944

차마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는 풍경들이 있다. 상대방의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지만, 왠지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페루의 쿠스코에서 힘겹게 아기를 들쳐 업고 걸어가는 어린이의 모습이 그랬다. 조그만 아기를 업은 어린이는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였고, 그 작은 등짝에 업힌 아기는 두 살이나 되었을까. 엄마가 일을 나간 사이 혼자 아기를 보는 소녀의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제 몸도 작으면서 더 작고 앙증맞은 아기를 업고 비틀비틀 걸어가며 햇살보다 더 찬란하게 웃고 있는 그 아이의 미소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검은 눈망울을 초롱초롱 굴리며 나를 빤히 바라보며 빙긋 웃는 소녀의 모습이 너무 어여쁘고 애틋해서 차마 카메라를 들이댈 수가 없었다. 그들의 언어를 말할 수만 있었다면, 아이에게 말을 걸어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쿠스코의 한 비좁은 골목길에서 나는 멀어져가는 두 자매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이미 저만치 앞서간 아이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너는 사진으로 찍기엔 너무 아름답구나. 이 카메라는 이토록 눈부신 너를 담기엔 너무 작아.’

마음을 찍는 카메라가 있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상대방의 진심을 알아낼 수 있을까.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서 본 젊은 어머니의 모습도 감히 사진으로 담을 수가 없었다.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몸을 푼 지 몇 달 되지 않은 듯 보이는 젊은 어머니는 이제 막 검은 곱슬머리가 소용돌이치며 돋아나기 시작한 아기를 어르고 달래며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노래를 불러주며 젖을 먹이고 있었다. 가슴을 풀어헤친 그녀의 모습을 누구도 힐긋거리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세상에 아기와 자신만 존재하는 것처럼 누구의 눈치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없이 평화로운 표정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기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피에타가 광장 위에 현현한 듯 눈이 부셨다. 아이를 끌어안은 페루 여인의 모습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사랑이란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세상의 판단에도 좌우되지 않는, 그런 완전한 몰입과 충만함이라고.

과감한 그라피티로 가득한 리우데자네이루 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이승원

과감한 그라피티로 가득한 리우데자네이루 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이승원

사진으로 담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만 담아두는 그런 마음의 풍경이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예술작품에서 되살아나는 순간도 있다. 남미 여행에서 돌아와 멕시코의 화가들을 찾아보다가 프리다 칼로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친 화가 마리아 이스키에르도를 알게 되었다. 마리아 이스키에르도의 ‘프롤레타리아 어머니’를 보고 있으니 내가 페루나 멕시코의 거리 곳곳에서 바라보았던 힘겨운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이 그림을 통해 성모 마리아처럼 모두에게 칭송받지는 못하는 이 세상 많은 엄마들, 가엾고 쓸쓸하게 홀로 떨어져 상처 입고 고립된 어머니들의 피에타를 본다.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누구도 도와주지 않기에 오직 혼자 힘으로 아기를 키워야 하는 수많은 엄마들의 안타까우면서도 강인한 표정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가난한 엄마가 낡은 천조각 하나로 아이를 감싸안은 채 그래도 무한히 행복한 표정으로 아기를 토닥거리며 주변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처럼. 찰나의 인간이 지닌 아름다운 피에타의 시간을, 이 그림은 보여주고 있다.

그 순간 내가 차마 카메라로 찍지 못한 풍경들의 공통점이 떠올랐다. 차마 기계로는 포착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것은 아마도 우주의 아주 미미한 순간밖에 누리지 못하는 인간이 ‘사랑’이라는 신비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부여잡을 수 있는 영원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찰나의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연출해내는 찬란하고 영롱한 피에타의 순간. 그 순간이 거리 위에, 그림 위에,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담기는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다.

힘겹게 아기를 업고 가는 어린이의
햇살보다 더 찬란한 미소 앞에서…
광장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한없이 평화로운 엄마 앞에서…

차마 기계로는 포착할 수 없는
찬란한 피에타의 순간을 보았다

전망대나 탑 위에서 바라본 도시 풍경도 아름답지만, 나는 천천히 걸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과 몸짓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높은 산 위에서 바라본 리우데자네이루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 속 사람들의 오밀조밀한 일상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도시의 전체적인 풍경을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것보다는 지상에서 아주 천천히 골목길의 가게 하나하나, 낯선 사람 한 명 한 명, 나무와 꽃들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걷는 시간이 좋다.

브라질의 민속춤 공연 ‘라파인 쇼’에서 춤을 추는 댄서들. ⓒ이승원

브라질의 민속춤 공연 ‘라파인 쇼’에서 춤을 추는 댄서들. ⓒ이승원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그렇다. 멀리서도 들려오는 그 사람의 업적이나 평판으로 그를 판단하기보다는 가까이서 그 사람의 잔주름, 미소 짓는 입꼬리, 마주치는 눈빛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어떤 장소의 아우라를 결정하는 것은 단지 박물관이나 교회 같은 특정한 건축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거리의 풍경들, 그 거리를 걸으며 바라본 사람들의 표정 속에 존재한다. 카메라로 쉽게 담을 수 없는, 그러나 영혼의 카메라가 있다면 꼭 담아내고 싶은 그런 찰나의 풍경들이야말로 내가 매번 다시 이렇게 ‘사서 생고생’임에 분명한 배낭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는 나로 하여금 내가 잠깐씩 스쳐지나가는 행위만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이 지닌 향기와 빛깔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반가움의 인사를 할 때도, 헤어짐의 인사를 할 때도 정말 참 많이 서로를 안아주고 입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볼에 키스를 하고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할머니든 한 번 서로를 붙들면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멕시코에서는 이런 친밀한 인사를 ‘베시타’라고 한다. 키스를 뜻하는 베소(Beso)와 친밀감을 표현하는 베시타(Besita)는 다르다. 베소, 즉 키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플끼리의 애정표현의 전형적인 모습이고, 베시타는 친구들끼리도, 이웃들끼리도 가능한 가벼운 ‘볼’과 ‘입술’의 정겨운 부딪침이다. 누구에게나 베시타를 아낌없이 퍼붓는 남미 사람들의 다정함은 여행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했다. 유럽 사람들도 헤어질 때 볼에 입을 맞추기는 하지만 남미 사람들처럼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지는 않다. 어쩌면 ‘스킨십’이나 ‘제스처’야말로 언어를 뛰어넘는 언어로서 특정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심리적 친밀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아닐까 싶었다.

전망대에서 조망하는 풍경보다
평범한 거리를 걸으며 만나는
잔주름과 미소와 눈빛이 좋다
그들의 열정적 ‘베시타’가 좋다

한때 독일에서는 ‘커들 파티(cuddle party)’라는 새로운 문화가 유행했다고 한다. 서로를 정성껏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기만 하되, 결코 성적인 행위나 데이트를 지향해서는 안되는 파티를 말한다. 커들 파티를 콘셉트로 하여 술과 음료와 ‘스킨십’까지 상품화하는 카페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다정한 스킨십에 굶주려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남미 사람들을 보면 이런 ‘커들 파티’는 필요치 않아 보인다. 늘 서로에게 아낌없이 친밀한 스킨십을 퍼붓는 그들을 보면 너털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페루의 민속의상을 입고 쿠스코의 축제 의식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 ⓒ이승원

페루의 민속의상을 입고 쿠스코의 축제 의식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 ⓒ이승원

만약 멕시코 사람들에게 이 ‘커들 파티’를 설명한다면, ‘돈을 지불하고 인간의 접촉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면, 그들은 탄식을 금치 못할 것 같다. 매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공짜로 주어질 수 있는 삶의 축복을 굳이 돈을 주고, 파티까지 일부러 열어가며 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지 않은가.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다. 서로를 더 많이 걱정해주는 눈빛을 보내고, 서로를 더 많이 쓰다듬어주고, 서로를 향해 의미 있는 눈빛과 몸짓을 교환하는 것. 나처럼 무뚝뚝하고 접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정적인 애정과 우정을 표현하는 남미 사람들을 바라보는 기간 내내 나는 점점 더 그들의 못 말리는 명랑함과 과도한 따스함을 동경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넘친다 싶었던 그 과장된 애정표현이 점점 더 ‘나에게는 없는 것’임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어도 오해받을까봐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삶의 따스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한발 다가서려 하면 오히려 더 멀어지려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타인에게 정을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나답지 않은 것임을, 지나친 방어기제였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아직도 냉정한 이들에게 걸핏하면 상처받고, 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심하게 편애한다.

[정여울의 라틴아메리카 기행](14)카메라를 내려놓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담았습니다

상처받을까봐 두렵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멀리하지 않고, 사람을 그저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좋아하고, 만나면 반가워서 ‘그저 쓸데없는 수다’라도 좋으니 좀처럼 놓아주지 않고 ‘이 얘기만 좀 더 하고 가, 차 한 잔 더 마시고 가’라고 붙잡는 남미 사람들. 그들의 그칠 줄 모르는 수다와 정겨운 베시타를 보며 나 또한 그렇게 삶의 살가움을, 잃어버린 다정함을,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조차 가족 못지않은 애정을 듬뿍 주는 그런 삶을 되찾고 싶어졌다. 한 사람을 향한 배타적인 사랑이 아니라 모두를 향해 한없이 펼쳐지는 사랑, 그것이 오직 우리 마음의 카메라에만 담길 수 있는 정겨운 베시타의 힘이 아닐까.


Today`s HOT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400여년 역사 옛 덴마크 증권거래소 화재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장학금 요구 시위하는 파라과이 학생들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케냐 의료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시위 2024 파리 올림픽 D-100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