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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칫돈 쥔 오너들 첫 행보는 빌딩 매입

전범주 기자
입력 : 
2018-10-09 18:03:21
수정 : 
2018-10-09 21: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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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판 자금은 어디로

`안정수익·자산가치 증식`
배달통·AHC·이츠게임즈 등
`대박` 낸 성공기업들도
공식처럼 부동산투자 나서
◆ 기업 물려줄 바엔 판다 ◆

기업을 통매각하거나 사업부문·자산 일부를 양도해 뭉칫돈을 쥔 기업 오너들은 자산의 상당 부분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 성장과 원화 상승에 베팅할 때 한국 국채를 들고 가듯이, 은퇴한 국내 기업 오너들은 서울의 핵심 부동산을 가장 안전한 고수익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빌딩중개업체들은 회사를 매각한 자금을 강남 빌딩에 묻어두는 투자 방식은 이제 하나의 '공식'이 돼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 뷰티 등 신사업 영역에서 젊은 나이에 거부가 된 오너들은 사업을 일찍 정리하고 부동산 투자에 공을 들이는 경향이 짙다.

국내 배달 앱의 원조인 '배달통'의 전 최대주주인 김상훈 전 대표는 지분 상당 부분을 외부에 매각하고 그 돈으로 강남 빌딩을 사들였다. 2014년 김 전 대표는 자신의 지분 일부를 독일 온라인 유통 업체인 딜리버리히어로에 넘기고 300억원가량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김 전 대표는 청담동에 위치한 꼬마빌딩을 사들이는 데 58억원을 썼다.

인기 온라인게임 '아덴'을 만든 이츠게임즈의 창업자도 같은 길을 걸었다. 이 회사 최대주주인 1980년대생 김병수 전 대표도 2017년 넷마블게임즈에 자신의 지분을 팔아 200억원 정도 돈을 벌었고, 이 중 69억원을 역삼동 빌딩 매입에 지불했다.

토종 화장품 브랜드 AHC를 매각해 1조원 넘는 현금을 챙긴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도 올해 2월 신사동 가로수길 맞은편에 위치한 780억원짜리 빌딩을 사들였다.

이 전 회장은 식당, 한의원, 약국 등이 입주해 있는 기존 4층 건물을 허물어 고층 빌딩을 올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40대 중반 나이로 1조원을 벌어들여 '미다스의 손'으로 통했던 이 전 회장이 잠행을 거듭하다가 내린 첫 투자 결정이 빌딩 매입이었다.

스타트업 대박으로 회사를 매각하고 강남 빌딩을 사는 '성공 스토리'의 시초는 허민 전 네오플 대표부터 시작된다. 서울대 최초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으로 유명했던 허 전 대표는 네오플이라는 회사를 세워 '던전앤파이터'로 잭팟을 터뜨렸다. 그는 2006년부터 네이버(당시 NHN)에 회사 지분을 수차례 나눠 팔면서 1000억원 넘는 돈을 벌었고, 2009년에는 강남 대치동의 미래에셋타워 2개동을 885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자산이나 사업 일부를 양도하면서 제조업체를 부동산투자회사로 만들어가는 사례도 있다. 지난 8월 명동중앙로(명동8길)에 위치한 대지 지분 63.1㎡(약 19평)의 꼬마빌딩이 200억원에 팔려 '명동 땅값 평당 10억원 시대'를 열었다. 단위 땅값으로 국내 최고가 빌딩을 사들인 매수자는 오성전자라는 중소업체였다. 이 업체는 기존 제조업을 사실상 접고 현재는 부동산 투자와 빌딩임대업을 영위하고 있다.

인천 송도에서 제조업을 하고 있는 중견기업 오너 김 모씨(42)는 "기업 하는 친구들을 만나보면 10명 중 9명은 회사를 팔아서 강남의 빌딩을 사고 싶어한다"며 "회사가 안 팔려서 사업을 하는 거지 팔리기만 한다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누가 공장을 돌리고 싶어하겠냐"고 되물었다.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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