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문화 확산 기여" vs "훼손된 책 누가 사나"

이창수 2018. 10. 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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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거면 또 몰라도."직장인 김모(30)씨는 얼마 전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에 갔다가 눈살이 찌푸려졌다.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위탁판매가 아닌 경우는 서점 측이 (책 훼손 등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는데 이런 부분이 잘 알려지지 않아 오해가 쌓인 것 같다"며 "꼭 테이블이 아니더라도 서점 바닥에 앉아 읽는 모습은 오래전부터 있지 않았느냐"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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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도서관화' 엇갈린 시각 / 서점, 테이블 등 배치 늘면서 확산 / 책 여러 권 가져다 놓고 독서·공부 / 출판업계 "진열 공간 줄어" 반감도 / 중소책방도 '보는 곳' 변화 떨떠름 / "본 책은 최대한 구매" 목소리 높아

“사는 거면 또 몰라도….”

직장인 김모(30)씨는 얼마 전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에 갔다가 눈살이 찌푸려졌다. 테이블에 앉은 한 남성이 곁에 10권 넘는 책을 쌓아놓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구입하지도 않은 책 여러 권을 아무렇게나 뒤집어 놓은 건 조금 심해 보였다. ‘저렇게 손때 묻은 책을 나중에 누가 살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김씨는 “도서관 책도 아닌 판매용 책을 쌓아두고 보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며 “행여 훼손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최근 이용객 편의를 위해 널따란 테이블과 소파를 둔 대형서점이 늘면서 서점을 도서관처럼 이용하는 ‘서점의 도서관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독서문화 확산에 기여한다’는 긍정적 시각도 있으나 ‘출판생태계가 붕괴하는 조짐’이란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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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대형서점 두 곳을 둘러보니 평일인데도 개장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매장 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모두 찼다. 한 60대 이용자는 “자리를 선점하려면 아침 일찍 나와야 한다”고 귀띔했는데, 실제 한 서점의 경우 개장 30분 전부터 스무명 넘는 시민이 몰렸다.

서둘러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소지품을 놔두는 방식으로 남의 접근을 막은 뒤 많게는 6, 7권의 책을 가지고 돌아왔다. 매대에서 참고서 여러 권을 가져온 뒤 노트와 펜을 꺼내 필기하는 등 공부가 목적인 듯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심지어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독서대를 꺼내 쓰기도 했다. 이용자들은 “도서관보다 신간을 먼저 볼 수 있어서”, “헌 책이 아닌 새 책을 볼 수 있어서” 등의 이유를 말했다.

이런 풍경은 2015년 11월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한번에 100명이 앉을 수 있는 대형 테이블을 두면서 시작됐다. 당시 교보문고 측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책을 읽게 하자는 창립자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출판업계 시선은 곱지 않다. 그로 인해 훼손된 책이 늘었는데 그 비용을 출판사만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란 것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독서문화 일상화에 기여한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서점 입장에선 일종의 ‘마케팅’인데 부담은 출판사가 지는 것 같아 불합리하다”고 토로했다. 다른 출판사 관계자도 “서점들이 책을 진열하는 공간은 되레 줄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말했다.

출판업계 사정에 밝은 한 정부 관계자는 “서점들이 출판사 측에 ‘책의 발견성’을 얘기하는데 읽던 책을 그대로 사가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등 통계나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불만이 쌓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위탁판매가 아닌 경우는 서점 측이 (책 훼손 등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는데 이런 부분이 잘 알려지지 않아 오해가 쌓인 것 같다”며 “꼭 테이블이 아니더라도 서점 바닥에 앉아 읽는 모습은 오래전부터 있지 않았느냐”고 설명했다.

중소 책방들도 대형서점이 만든 이런 변화가 달갑지만은 않다. 사실상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하는 대형서점과 그렇지 않은 작은 서점은 수익 구조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서점이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여겨지면서 책을 ‘사는 곳’에서 ‘보는 곳’으로 바뀌는 대목은 작은 서점 입장에선 따라가기 어려운 변화”라고 말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서로 입장이 다른 대형서점과 중소형서점, 출판업계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며 “이용자도 자신이 다 본 책들은 최대한 구매하는 등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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