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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얻으니 외로움 따라오더라

20~30대 1인가구 몰린 서울 관악구…

공유주거·혼술집 등 싱글족 위한 맞춤형 비즈니스모델 눈길
등록 2018-10-06 08:53 수정 2020-05-02 19:29
한 공유주거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앱)에는 서울 관악구에만 70개의 셰어하우스가 있다.

한 공유주거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앱)에는 서울 관악구에만 70개의 셰어하우스가 있다.

서울 관악구는 서울에서 1인가구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통계청에서 지난해 집계한 관악구 전체 1인가구 수는 10만6865명에 이른다. 금천구(9만5331명), 용산구(9만1102명) 등 자치구 전체 가구 수보다 많은 인원이다. 특히 20∼30대 청년 1인가구는 전체 관악구 1인가구의 64%에 이른다. 이들 인원(6만8464명)만 종로구(6만2372명)와 중구(5만2208명)의 전체 가구 수를 넘어섰다.

관악구를 가로지르는 지하철 2호선 신림역·봉천역·서울대입구역·낙성대역은 회사와 학원이 집중된 강남역으로도, 대학들이 모인 신촌(지하)역·이대역·합정역으로도 연결됐다. 고속버스를 탈 때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 기차를 탈 때는 서울역으로 가면 된다. 둘 다 관악구 바로 옆 사당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30분 안팎으로 갈 수 있는 거리다.

집값이 저렴했지만 그만큼 지상이 아닌 집도 많았다. 시민단체 관악주민연대는 지하·반지하·옥탑 등 취약 주택이 관악구 전체 거주 형태의 5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물가도 쌌다.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 입구에는 단돈 800∼900원에 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가 2곳이나 있었다. 신림역 4번 출구 쪽 술집들은 ‘혼술 환영’이라고 적힌 간판들에 불을 켜고 퇴근길 혼술객들을 맞았다.

생활비와 주거비는 적게 드는 반면 출근이나 등교하는 것이 편리해, 관악구는 신림동을 중심으로 청년층 1인가구의 베드타운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서울로 올라와 새 삶을 시작하려는 청년 1인가구에게 관악구는 주요한 첫 관문인 셈이다. 관악구청은 8월 기준 신림동(1만2200명), 청룡동(1만2019명), 대학동(1만1121명) 등에 1인가구가 주로 사는 것으로 분석했다.​ 관악구청 관계자들은 에 “대학동과 신림동 등에 20∼30대 청년 1인 가구들이 많이 산다”며 “사법고시 폐지 후 회사원들과 학생들이 유입되고 있다”고 했다.

공유주거 급증, 새로운 1인가구
공동생활을 하는 공유주거에도 정해진 규칙과 질서가 있다.

공동생활을 하는 공유주거에도 정해진 규칙과 질서가 있다.

청년 1인가구가 관악구에 들어오면서 역세권의 낡은 다가구주택과 다세대주택도 재구성되고 있다. 진짜 가족이 아닌 낯선 사람들과 식구처럼 지내는 셰어하우스(공유주거)가 대표적이다.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일부 리모델링하거나 아예 허물고 다시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한 공유주거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앱)을 살펴보면 관악구에만 70개 셰어하우스가 있다. 셰어하우스 운영자들은 여러 부동산 중개 앱과 누리집에 홍보하고 있어 실제 셰어하우스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25살 여성 남아무개씨는 지난 9월부터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관악구의 한 셰어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남씨는 서울 강남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충북 청주에 있는 대학교에 다닐 때 그는 서울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도 경기도 남양주에 살아 서울에 있는 아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는 처지였다.

올해 초 갑자기 서울에 있는 학교로 발령이 나면서 1학기에는 남양주에서 강남구까지 왕복 3시간여의 원정 출퇴근을 강행했다. 늦게까지 일하거나 동료들과 회식이라도 하면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2학기부터 지하철 2호선을 타면 바로 강남까지 갈 수 있는 신림역의 셰어하우스에 들어왔다.

남씨는 20대 중반이지만 이미 대학교 기숙사부터 자취, 친구와 함께 원룸에서도 생활해봤다.

기숙사는 화장실도 대신 청소해주고, 구내식당·도서관과 가까워 처음 독립했던 남씨에게는 편했다. 하지만 외출증을 끊어야 외박을 나갈 수 있고, 자정에 문 닫고 다음날 아침 6시에나 문을 열어 새벽에 오갈 데가 없었다. 고향에서 친구들이 놀러 와도 하룻밤 재우지도 못했다.

2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끝내고 시작한 자취는 남씨에게 자유를 줬다. 하지만 밥을 잘 챙겨 먹지 않던 남씨의 생활은 불규칙해졌다. 끼니를 걸렀고 청소나 설거지도 미루게 됐다. 결국 6개월 만에 자취 생활을 청산했다. 친구와 함께 원룸에 지내면서 남씨는 질서를 되찾았다. 친구와 월세를 반반씩 내면서 부담도 줄었다.

남씨는 “취업 직후 살 데를 알아보다가 혼자 사는 친구 집에 밤늦게 술 취한 남자가 들어오려 했다는 말을 듣고 혼자 사는 게 걱정됐다”며 “셰어하우스는 여자들끼리 살고 원룸만 있는 다가구주택이 아니어서 걱정을 덜었다”고 했다.

실제 남씨는 퇴근길이나 퇴근 뒤 근처 도림천에서 산책을 마치면 큰길로 집에 돌아왔다. 귀갓길 중간에는 남씨가 도시락 등을 사먹는 단골 편의점이 24시간 어둠을 밝히고 있다. 골목길 전봇대에도 비상벨과 다목적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돼 있었다.

같은 셰어하우스,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여성 김아무개(26)씨는 이번이 두 번째 공유주거 생활이었다. 경남 양산에서 자취하다 서울로 온 김씨가 셰어하우스를 다시 찾은 이유는 외로워서였다. 지금 김씨는 신림역과 같은 지하철 노선인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바리스타(커피를 만드는 사람) 과정을 배우고, 합정역에서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2016년 셰어하우스에서 살다 지난해 친구와 함께 투룸에서 지냈다. 대학 졸업 뒤 고향에 가 자취했지만, 외로움이 엄습했다. 혼자 먹는 밥은 괜찮았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싶어도, 술을 마시고 싶어도 문화생활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김씨는 요새 같이 지내는 남씨와 술도 마시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자전거도 타러 나간다.

5명이 함께 지내는 이 셰어하우스에도 규칙이 있다. 냉장실, 냉동실, 화장실 선반은 각각 A∼E까지 구역을 나눠 쓴다. 5명이 돌아가며 공용 공간인 화장실·거실·주방을 치우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한다. 각자 보증금 3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면 침대·화장대·장롱 등 기본적인 가전과 가구부터 수저·냄비·그릇까지 휴지나 세안 용품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을 제공받는다.

집, 편의점, 식당에서 혼밥족이던 이들은 셰어하우스에서 끼니를 함께 먹는 식구가 됐다. 부모님이 챙겨줬거나 각자 장만한 반찬을 꺼내 함께 밥을 먹는다. 김치찌개와 파스타 등을 곧잘 해먹는 김씨의 냉장고 칸에는 김치, 깻잎장아찌, 쇠고기, 돼지고기 등의 재료가 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나 간편식을 즐겨 사먹는 남씨의 냉장고 칸에는 음료와 삶은 달걀 등이 있다.

1인가구 상징 대학동 고시촌도 변화

사법고시·행정고시 같은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에도 셰어하우스들이 문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사법고시 폐지로 고시생들이 빠져나간 빈방을 직장인과 학생들이 채우면서다.

대학교나 기숙학원·고시원 등에서 공부하고 밥 먹고 잠자던 고시생들이 사라지면서 평일 대낮에도 활발하던 상권은 평일 저녁과 주말로 피크타임이 옮겨갔다. 고시촌 1인가구들의 나잇대는 비슷해도 고시생에서 직장인으로 소비층의 직업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1인가구의 주거 기간도 짧아졌다. 관악주민연대는 2년 미만 거주하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3분의 1 정도라 추산했다. 실제 셰어하우스들도 길게는 6개월 단위로 계약했다. 원룸도 계약 기간이 1년 단위가 대부분이었다.

관악구 원룸, 학생 이삿짐 개인 용달을 전문으로 하는 이아무개(64)씨는 “예전에는 고시생이 많아 이삿짐에 전공서적이나 자료가 많았다”면서 “최근 직장인이 늘면서 원룸에서 동네 다른 원룸으로 이사한다. 사다리도 필요 없이 옷가지 같은 짐을 계단으로 옮겨 1t짜리 트럭에 싣는다”고 했다.

고시촌 전봇대 곳곳에는 ‘잠자는 방 있음’이라고 적힌 전단이 붙어 있었다. 다가구주택이나 가정집 대문 앞에도 비슷한 내용의 전단이 나붙었다. 잠자는 방은 말 그대로 ‘잠만 자는 방’이었다. 고시텔과 달리 공용 주방도 없어 밖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구조였다. 잠자는 방을 둘러보면 6.6㎡(2평)도 안 되는 크기에 냉장고 놓을 공간이 없어 책상 위에 올려둔 방도 있었다.

이 때문에 잠자는 방 주변에는 저렴하게 주·월 단위로 장부를 놓고 밥을 먹는 뷔페 식당이 늘어서 있었다. 최근에는 고시촌 1인가구의 소비력이 향상되면서 혼밥 메뉴도 다양해졌다. 집에서 만들어 먹기 어려운 1인용 보쌈, 스테이크, 게장, 곱창 등을 파는 식당도 생겼다. 한 1인 전용 식당에 들어가보니 창가에 긴 테이블을 붙여 칸막이를 쳐놓았다. 옆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식사할 수 있도록 고려한 구조였다.

컴퓨터가 없던 과거 1인가구들은 집 근처 피시(PC)방에 모였다. 하지만 컴퓨터를 가진 직장인이 늘면서 고시촌 PC방은 30여 개로 줄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컴퓨터 60∼70대를 보유한 소규모 PC방이 80개가 넘었다. 당시 은평구 전체 PC방 수보다 많은 규모다. 장명철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관악지회장은 “예전에는 컴퓨터가 없는 고시생들이 PC방에서 자료를 찾았다”며 “요즘은 직장인이 퇴근 뒤나 주말 정도에만 와 활기를 잃었다”고 했다.

구도심으로 밀려나는 저소득 1인가구

역세권을 벗어나자 관악구의 변두리에는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1인가구가 모여 있었다. 실제 관악주민연대는 다가구주택 등을 사서 저렴하게 임대하는 공공임대주택이 관악구 전체 주거 유형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봤다.

관악구에서 4년째 혼자 사는 유아무개(32)씨는 직장을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바탕’이라고 봤다. 유씨는 2014년 중학교에 다닐 때 살았던 신림동으로 돌아왔다. 안정적 직장이 없는 유씨에게 허락되는 공간은 20㎡(6평) 이하의 원룸뿐이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5만원짜리였다. 관악구 1인가구 10명 가운데 2명 이상이 유씨처럼 20㎡ 이하 원룸에서 지내는 것으로 추산된다.

공간이 협소한 원룸이라 유씨는 접이식 침대를 장만했다. 낮에는 침대를 접어 소파로 활용하고 잠잘 때는 폈다. 이불 빨래는 엄두도 못 냈다. 대신 빨랫감을 모아 집 근처 빨래방에서 세탁부터 건조까지 한꺼번에 처리했다. 관악구에는 빨래방만 130여 개가 있다.

헬스클럽 트레이너였던 유씨는 무릎 수술로 일을 그만두면서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1년에 서너 차례 돌아오는 친구들의 결혼이나 돌잔치 초대는 반갑지 않았다. 축의금 부담에 여러 핑계를 대며 못 가고 있다.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땄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유씨는 최근 지역자활센터에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작성법 등을 배우며 ‘정상적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준비한다.

혼자 사는 유씨는 식사를 잘 챙기지 않는다. 하루 평균 한 끼 정도 먹는다. 냉장고에는 돼지고기, 물, 가루차, 얼린 밥, 친구가 챙겨준 찌개가 있다. 주로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나 컵라면 등을 사먹는다. 1만8천원에 파채를 올린 치킨 3마리, 떡볶이까지 주던 ‘가성비’ 좋은 치킨집이 문을 닫으면서 배달 음식도 끊었다.

유씨의 친구는 노트북과 혼술이었다. 텔레비전을 치우고 그 자리에 전자레인지를 올려뒀다. 텔레비전 대신 노트북으로 외국 드라마를 보고 시사 프로그램도 봤다. 외롭고 우울해지면 집 근처 순댓국, 감자탕, 김치찌개 식당에서 홀로 소주를 마셨다. 월세가 한 달 생활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유씨에게 적은 돈으로 가장 쉽고 간단하게 생활하는 방법이다.

최근 학자금 대출 700만원을 갚고 나서야 유씨는 빚 독촉에서 벗어났다.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은 날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원룸에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었다. 부족한 형편에도 돈을 모아 빚을 갚은 자신에게 5점 만점에 2.5점을 줬다.

갈수록 커지는 싱글의 외로움

유씨는 1인가구에서 벗어날 40대를 꿈꿨다. “직장을 구하면 돈을 많이 모아 지금보다 넓은 전셋집으로 이사하고 싶다. 5년간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해 가족을 만들고 싶다.”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1인가구의 외로움도 커졌다. 김씨와 남씨가 생활 중인 셰어하우스가 운영하는 다른 지점에는 최근 40대 여성 5∼6명이 그곳에서 생활하고 싶다며 집을 보러 왔다. 천영희 올라이브(ALL-LIVE) 셰어하우스 대표는 “오랫동안 혼자 살면서 외로워져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거주 문의를 한 이들이었다”고 했다.

실제 40대에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 사는 정아무개(54)씨는 “기회가 있다면 누군가와 다시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봉천동에 사는 정씨는 20대에 살았던 관악구로 2014년 되돌아왔다. 정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세임대주택인 3층짜리 다세대주택의 반지하에서 산다. 옆집에도 40대 여성이 홀로 지냈다.

정씨 집은 거실 겸 주방에다 방 하나, 화장실 하나가 있다. 반지하였지만 방과 부엌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3년간 지냈던 월세 25만원짜리 고시원보다 3배나 넓었다. 고시원에는 화장실도 세탁기도 부엌도 없었다. 침대와 책상만 간신히 놓인 10㎡도 안 되는 공간이었다. 전세금(4천만원)의 이자만 내는 정씨는 “관악구여서 전세 4천만원에 방 2칸에 화장실 1칸짜리 집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씨는 소장으로 일했던 공사장에서 폭발 사고가 난 뒤 전 재산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후 기도원과 고시원을 전전했다. 일당 15만원을 받는 기술자였던 정씨는 3년 만에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공사장에서 일하기 어려울 만큼 몸이 망가졌다. 이제 정씨는 자전거수리센터에서 자전거를 고치며 재개를 꿈꾼다.

빚을 청산하고 반지하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모으는 정씨는 자전거수리센터 근처 관공서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가격도 4500원으로 저렴하다. 이혼한 뒤 40대부터 혼자 살았던 정씨는 김치까지 담글 정도로 요리 실력이 늘었다. 된장국이 단골 저녁 메뉴다.

나이 들수록 1인가구들은 앞으로 10년 이상 ‘나 홀로’ 살 것으로 내다봤다. 정씨 역시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자식이 있지만 이혼 뒤 얼굴을 못 본 지 수년째다. 정씨는 “앞으로도 혼자 살까봐 걱정”이라며 “관공서에서 혼자 지내는 사람들끼리 안부를 묻고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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