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우울증·억압으로..게임처럼 번지는 '극단 선택' [전 세계 자살과 전쟁 중]

정재영 2018. 10. 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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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40초 한 명꼴 목숨 끊어/여성 10명 중 3명 인도서 발생/美서도 3대 사망 원인으로 집계

“전 세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성 10명 가운데 3명이 인도 여성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의학전문지 ‘랜싯’의 연구보고서를 인용, 전 세계에서 자살하는 여성의 36.6%가 인도 여성이라고 보도했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의 2∼3배이지만 인도에서는 상반된 결과를 보인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이 억압받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극단적인 선택이 많은 것인데, 보수적인 종교문화를 가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도 인도 여성들과 비슷한 처지라는 지적이다.

6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구촌에서 40초마다 1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자살로 사망한 성인 한 명당 20회 이상의 자살 시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WHO는 지적했다. 매년 80만여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지금의 상황에 대처하는 각국의 움직임이 숨 가쁘다.

미국 CNN방송은 미국 내 자살을 택하는 젊은 세대 가운데 남성 트랜스젠더가 유독 많다고 지적했다. 10대 청소년들이 교내 집단따돌림에 안타까운 선택을 한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연령별로 보면 사회의 중추 역할을 떠안은 4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까지의 자살률이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 직장 생활에서의 스트레스는 물론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 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군에서 전역한 젊은 백인들의 잇따른 자살도 미국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65세 이상 자살자 수가 인구 10만명당 16.6명으로 전 세계 평균보다 50%가량 높다. 우리나라도 65세 이상 자살자 수가 53.3명으로 전 세계 평균의 2배에 육박할 정도로 노인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이처럼 사회에서 외면받거나 억압받는 이들은 여전히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

남미의 일부 국가와 이집트에서는 10대들 사이에 자살게임이 확산하면서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은 자살률이 하락세이지만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학교 수업에 대한 중압감에 자살하는 청소년이 줄지 않고 있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고심에 빠져 있다.

◆인도·아프가니스탄 등 남아시아 여성의 고단한 삶

가디언은 자살로 사망하는 인도 여성의 비율은 1990년대 이후 줄어들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감소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대체로 결혼해 도심에 사는 35세 이하 인도 여성의 자살률이 높은데, 전문가들은 남성의 폭력, 가부장적인 문화, 조혼 제도를 그 배경으로 꼽고 있다. 인도 여성의 20%가 만 15세 전에 결혼하는데, 기혼 여성의 62%는 남편의 폭력을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는 조사보고서까지 나왔다.


BBC방송은 보수적인 종교문화를 가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도 인도 여성들과 상황이 같다고 지적했다. 아프간자립인권위원회(AIHRC)에 따르면 매년 3000여명의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훨씬 높은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자살 시도의 80%가 여성이다. AIHRC 관계자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실제 자살 시도 건수는 통계 수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며 “여러 이유로 자살 시도가 당국에 보고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WHO에 따르면 40년 이상 지속한 내전 등으로 인해 100만명 이상의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아프가니스탄 여성 가운데 87%가 적어도 한 번은 육체적 폭력이나 성폭력 등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고, 경제적 독립이 보장돼야 극단적인 선택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고착된 문화를 바꾸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美 ‘백인·청소년 자살’ 증가, ‘총기 자살’이 절반

WHO는 “자살은 전 세계 사망의 1.4%를 차지한다”며 “특히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서 발생하는 자살이 전체의 80%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강대국인 미국도 자살률 증가로 고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6년까지 미 전역에서 자살률이 25%가량 증가했다. 특히 네바다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자살률이 늘었는데, 노스다코타주는 같은 기간 자살률이 58%가량이나 증가했다. 연간 10만명 가운데 29.2명이 목숨을 끊은 몬태나주의 자살률이 가장 높았고, 워싱턴은 이 수치가 6.9명으로 가장 낮았다. 특히 2016년 전체 자살자 수는 4만5000여명에 달했다. 치매, 약품 남용에 이어 자살이 미국의 3대 사망 원인 중 하나로 집계됐다. 자살한 사람 10명 중 7명이 백인이었는데, 백인 자살률은 여러 인종 가운데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 전체 자살자의 51%가 총기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한 남성 수가 여성의 3.5배 수준이다.


전 연령대에서 자살률이 증가했는데, 특히 45~64세 구간에서 자살률이 가장 크게 늘었다. 최근 10년간 수치로 보면 15∼24세, 25∼34세의 자살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실제 올해 초 오하이오주의 중소도시에서 10대 6명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교육계가 발칵 뒤집혔다. 자살한 학생의 부모가 집단따돌림을 원인으로 지목한 탓이다. CDC는 “15∼19세 10대 5명 가운데 1명이 자살을 고려해본 일이 있고, 약 10%는 자살 시도 경험이 있다”며 “2015년 10~24세 미국인 사망 원인 가운데 2위가 자살”이라고 지적했다. 자살은 친구·가족 구성원·직장 동료·소속 집단은 물론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공공보건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2015년 통계를 보면 27개 주에서 자살자 절반 이상이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다. CDC는 하지만 “자살 원인을 단순히 한 가지 문제로 볼 수는 없다”며 “주 차원에서 경제적 지원 강화 등을 통한 자살 예방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살게임’에 노출된 남미·이집트의 10대들

콜롬비아와 아르헨티나, 인도 등에서는 ‘모모 귀신 게임’으로 불리는 인터넷 게임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10대의 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콜롬비아에서는 산탄데르주의 소도시에서 10대 남녀가 잇따라 자살했는데, 이들의 휴대전화에서 해당 게임으로 연결되는 링크가 담긴 메시지가 발견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남학생은 죽기 전에 여학생에게 해당 게임의 링크를 보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메시지를 받은 여학생도 목매 숨졌다.
아르헨티나 경찰이 발표한 `모모귀신게임`에 대한 경고 문건.트위터 캡처

메신저 앱인 왓츠앱을 통해 10대 사이에 빠르게 번진 이 게임은 귀신의 계정으로 알려진 번호에 전화를 거는 놀이다. 전화를 받은 ‘모모 귀신’이 내리는 명령은 공포 영화를 보라거나 밤새 깨어있으라는 것에서부터 자해와 자살까지 점점 수위를 높여가기에 ‘자살 놀이’로 불린다. 콜롬비아 정부 관계자는 “죽은 아이들이 왓츠앱을 통해 이 게임을 했고 게임 속 모모가 이 아이들이 자해토록 이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12세 여자아이의 자살 사건이 이 게임과 관련 있는지에 대해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인도에서도 18세 남학생의 자살이 이 게임과 연관돼 있는지 경찰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앞서 이집트 정부는 올해 초 청소년의 자살 시도와 관련된 온라인게임 차단에 나섰다. 나빌 사데크 이집트 검찰총장은 이른바 ‘대왕고래 게임’ 등 청소년의 자살과 관련된 온라인게임을 차단할 것을 지시했다. 이집트 정치인의 18세 아들이 이 게임의 영향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에서도 15세 소녀가 대왕고래 게임의 임무를 완수하려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피해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진행되는 이 게임도 참가자에게 50일 동안 과제를 제시한다.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기’ 등 단순한 과제를 부여하다가 종국에는 자살 등 극단적인 행동을 강제한다. 2013년 러시아에서도 이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이 자살에 나서면서 사회문제가 됐다.

◆여름방학 끝날 때 극단적 선택하는 日 청소년

일본은 지난해 자살자 수가 2만1321명으로 8년 연속 감소했다. 하지만 미성년자의 경우 567명으로 전년보다 47명 늘었다. 특히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들이 많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자살종합대책추진센터가 2006~2015년 7월 하순~9월 하순의 자살 통계를 분석한 결과 8월 하순의 자살 건수가 가장 많았다. 한 시민단체는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학생들에 대한 저명인사 20명의 조언을 담은 책을 펴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30%가량은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해 라인이나 페이스북 등 SNS 등을 통한 자살 방지 상담을 추진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98개 지자체를 상대로 실시한 조사 결과, 22곳은 여름방학이 끝나는 8, 9월에 상담을 시작하기로 했다. 개학 시기에 학교생활 스트레스 등에 의한 청소년의 자살이 많이 발생한 때문이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번 소식으로 정신적 고통이 느껴지거나 우울감이 가중된다면 자살예방전화 1577-0199, 복지부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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