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자 김슬옹 "훈민정음 해례본에 신분제 타파정신 담겨있다"

글 원희복 선임기자 · 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기자가 보기에 그는 ‘미쳤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77년부터 그랬으니 이미 40년이 넘었다. 그가 미친 대상은 한글, 정확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한민족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을 꼽으라면 최초의 금속활자, 측우기…. 그러나 기자는 단연 한글을 꼽는다. 한글의 실용성과 과학성은 단연 세계 으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한글에 미쳐 40년 넘게 같이했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는 국어문화원 김슬옹 부원장(57·사진)이다. 김 부원장은 한글 관련 저술 60권(단독저술 26권, 공동저술 34권), 한글 관련 논문 110편을 발표했다. 훈민정음학, 국어교육학 2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활동도 한글학회에서 연구위원,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한글문화연대에서 활동하고 근무했다. 2016년 외솔상도 받았다. 그를 만난 것은 10월 9일이 한글날이라 한글의 ‘현실’을 듣기 위해서다.

[원희복의 인물탐구]한글학자 김슬옹 "훈민정음 해례본에 신분제 타파정신 담겨있다"

한글 관련 저술 60권과 논문 110편

-한글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언어로 꼽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자를 만든 취지와 원리가 기록된 최초·유일의 문자라서인가.

“한글에는 한마디로 보편주의가 담겨 있다. 인류에게 여러 언어가 있었지만, 신분과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지식과 정보를 접하라는 취지를 담은 문자는 한글이 유일하다. 또 그런 사실을 해설한 문자도 없다. 내가 민족주의자적 입장에서 한글이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자도 인류의 문명을 담은 우수한 문자지만 어려워 지식과 정보를 쉽게 나누기 어렵다. 그나마 영어는 자모문자라 쉽지만 한글만큼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지 않다. 한글에는 음양오행의 철학 보편주의, 과학 보편주의, 음악 보편주의가 담겨 있다.”

-<훈민정음>에 음악적 요소가 담겨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다.

“<훈민정음>에는 궁·상·각·치·우 우리 다섯 음계가 반영돼 있다. 입술에서 나온 소리는 궁음, ‘쓰’와 같은 소리는 상음, ‘ㄱ’은 각음, ‘ㄴ’과 같은 혀에서 나오는 소리는 치음,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우음이다. 해례본에 이 28자를 익히면 ‘누구나 노랫가락으로는 음률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훈민정음>을 배우면 양반 상놈 없이 모두 하늘의 동등한 백성이 된다는 놀라운 정신이 담겨 있다. 그래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양반에 의해 멸실됐다.”

-1446년 세종이 간행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양반들이 일부러 없앴다는 것인가. 현존하는 해례본이 1940년 발견된 간송본이 유일한 희귀본이기 때문인가(최근 안동본이 발견됐지만 정식 공개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다고 본다. 양반들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싫어했다. 양반들은 최소 10년, 20년 한문을 배워야 지식과 학문이 열렸는데 한글은 28자만 익히면 한문체를 쉽게 풀고,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목판본은 책을 빨리, 많이 보급하기 위해 사용했는데 해례본을 최소 500권은 인쇄했을 것이다. <용비어천가>를 550권 찍었다는 사실이 실록에 기록돼 있다. 내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1527년 <훈몽자회>를 쓴 최세진조차 해례본을 보지 못하고 이를 인용했다. 17~18세기 유명한 이덕무가 쓴 백과사전격인 <청장관전서>에도 ‘세속에 전하기를 세종이 변소에서 문살을 보다 깨닫고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돼 있다. 이덕무가 백과사전을 만들면서 이 해례본을 구해 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이렇게 빨리 희귀본이 된 이유는 ‘정인지서’ 대목이 신분제를 무너뜨릴 것을 우려해 양반들이 일부러 책을 파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훈민정음>은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을 가엾게 여겨 28자를 만들었다’는 세종임금의 자비로움만 배웠다. 그러나 <훈민정음>이 당시 신분제를 뒤흔들 정치적 요소가 있었다는 해석은 처음이다. 해례본 ‘정인지서’에는 “28자로서 전환이 무궁하며, 간단하면서도 요점을 잘 드러내고, 정밀한 뜻을 담으면서도 두루 통할 수 있다”면서 “이 글자로 한문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이 글자로 소송사건을 다루면 그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연구 미진한 이유

2018년 한국을 대표하는 40권에 선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 강독본>

2018년 한국을 대표하는 40권에 선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 강독본>

열흘 안에 한문을 이해하고, 무엇보다 소송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기득권 양반층에게는 심각한 위협일 수 있다. 조선시대 정보와 학문, 무엇보다 법적 권리를 독점하는 것은 신분제를 유지하는 데 필수요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도구인 한글은 지금까지 누리던 신분제를 무너뜨릴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양반들은 여겼을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양반들에게 ‘금서’로 여겨졌을 가능성은 충분했던 것이다. 이 대목은 <훈민정음>과 관련해 매우 재미있는 시사점을 던져 준다.

그런데 정작 기자를 ‘미치게’ 하는 것은 지금 아무도 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전공한 교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전공한 교수가 없으니 가르치는 곳도 없고, 당연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국어선생님도 <훈민정음> 해례본을 배우지 않는다. 하기야 평생 글로 먹고사는 기자들조차 <훈민정음> 해례본을 처음 볼 정도니 말할 것도 없다.

김 부원장은 “대학은 고사하고 최소한 한국학 본산인 한국학중앙연구원에도 <훈민정음>을 주전공한 전문가가 없다”면서 “한글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언어라고 선전만 했지, 실제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해례본을 놓고 국제학술대회를 연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설마 한글이 이렇게 홀대받고 있을 줄이야. 해례본에 대한 국제학술대회 한 번 한 적 없다는 것은 국가의 심각한 직무유기다.

김 부위원장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이유에 대해 “국어학자는 한문을 몰라 순한문으로 된 해례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문학자는 한글 원칙을 몰라 해례본 연구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2015년 교보문고와 간송미술문화재단과 함께 <훈민정음> 복간본(책의 색깔, 재질, 제본방식까지 똑같이 재현) 고증작업 학술책임자로 참여했다. 그때 국어학자로는 유일하게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 원본을 보고 복간본에 딸린 해설서를 출간했다. 2018년에는 이 책을 보완해 중학생 정도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 강독본>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올해 한국을 대표하는 책 40권’에 선정돼 ‘2018년 베이징 국제도서전’에 전시됐다. 사실 그의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 강독본>이 ‘한국을 대표하는 책 40권’에 선정된 것은 김 부위원장에겐 ‘평생의 복수’ 같은 의미를 가진다.

김 부위원장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다. 2005년 서울대가 인류고전 100권을 선정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이 빠졌다. <훈민정음>이야말로 인본주의적 철학과 과학·음악을 담은 최고의 사상서라고 확신하던 그는 크게 분노했다. 그리고 한문으로 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설서를 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결심으로 만든 해설서가 당당히 ‘올해 한국을 대표하는 책 40권’에 선정된 것이다.

대학 ‘서클’을 ‘동아리’로 바꾼 주역

1961년 경기도 수원 출신인 김 부원장은 부친이 한학자로 초등학교 시절 이미 천자문을 다 뗐다. 어려서 별명이 ‘한자박사’라 할 정도로 한자를 잘했다. 그는 1977년 고등학교(철도고등학교) 시절, 신문에 어린아기를 뜻하는 ‘영아’(?兒)를 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영’자는 천자문에 나오지 않아 한자는 천자문을 떼어도 신문을 읽지 못하는 문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한글학회 부설 전국국어운동 고등학생연합회에 참여하면서 한글운동을 시작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뜻을 잇기로 결심하고 1982년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83년에는 재판을 통해 한자이름 김용성을 한글이름 김슬옹으로 바꿨다.

김슬옹 부위원장이 한글회관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슬옹 부위원장이 한글회관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학시절 연세대 서클연합회 홍보부장으로 흔히 쓰이던 ‘서클’을 ‘동아리’라는 우리말로 쓰자고 결의, 1984년 연세대가 전국 처음으로 ‘동아리연합회’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동아리’는 널리 보급돼 86년쯤 대학가에서 ‘서클’이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식당 메뉴판을 ‘차림표’로 바꾸자는 운동을 한 것도 그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사(현대문법), 박사과정(전산언어학)을 마치고 다시 훈민정음 연구로 박사학위(상명대)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조선왕조실록>을 분석, 한글이 양반가 여성 위주로 전승, 발전됐음을 밝힌 것이다.

그는 40여번 대학교수 임용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전공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를 알아주는 대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3~4개 대학 시간강사와 강연으로 생활한다”면서 “그래도 공무원(도서관 사서)인 아내 덕을 많이 본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최근 ▲서울시를 <훈민정음> 해례본 도시로 선포하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28개 국어로 번역하고 ▲내년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조명하는 최초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방북해 ‘남북 연합 정음대학원대학교’ 설립을 건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만들었다. 그는 올 9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언어정책을 조언하는 서울시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 위원에 위촉됐다. 김 부위원장은 “이와 관련된 사업을 위해 누리집(홈페이지)이 <훈민정음>이 창제된 12월 28일 정식으로 문을 연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한 중소기업의 협조로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외국어 번역과 세계 보급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민간 차원에서 하도록 방치하는 것 역시 정부의 직무유기다.

그는 “우리는 <훈민정음>을 반포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북에서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1월 15일을 ‘조선글날’, ‘훈민정음 기념일’로 기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배경 사진이 바로 <훈민정음> 언해본 사진”이라며 “<훈민정음> 서문에 한글은 바로 ‘소통’이라고 말했고, 남북이 가장 동질성을 가진 것이 한글이고, 이것을 매개로 남북이 소통하는 것이 바로 <훈민정음>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가 남북이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싶어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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