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호 감독
윤재호 감독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뷰티풀데이즈>는 한 탈북여성의 신산한 삶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하울링>(2012) 이후 6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배우 이나영의 복귀작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4일 부산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된 <뷰티풀데이즈>는 대사를 최소화하고 시종일관 담담하고 묵직한 느낌으로 진행된다. 특히 남북 화해 모드가 정점에 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경계에 선 탈북자들에 대한 감독의 오랜 고민이 녹아있다.

영화는 중국 조선족 대학생 젠첸(장동윤)이 병든 아버지(오광록)의 부탁으로 오래전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엄마(이나영)를 찾아 한국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술집을 운영하며 건달처럼 보이는 한국인 남자와 사는 엄마. 엄마의 부재 탓에 힘든 유년시절을 보내 가뜩이나 원망의 마음을 가진 젠첸은 그런 엄마에게 크게 실망한다. 엄마 역시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무심하게 대한다. 엄마를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상태로 갈등하던 젠첸은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엄마가 짐 속에 넣은 낡은 공책 한 권을 통해 엄마가 오랫동안 숨겨온 충격적인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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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젠첸이 엄마의 공책을 통해 과거를 엿보는 방식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윤재호 감독은 그 안에 여러 겹의 이야기를 겹쳐 두면서 한꺼풀 과거가 밝혀질 때마다 관객에게 새로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탈북여성의 옹이진 삶과 생존을 위한 사투, 그로 인한 가족의 해체와 이산, 그리고 결과적으로 가족의 복원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까지 이른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윤재호 감독은 “파리 유학 중 민박집의 조선족 아주머니와 인연을 맺으며 그가 중국에 두고 와 9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들에 대한 단편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경계에 선 사람들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며 “그 이후 다큐멘터리 <마담B>(2016)를 3년 동안 찍으면서 다큐로는 하지 못한 탈북민들에 관한 이야기를 극영화를 통해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뷰티풀데이즈>는 윤 감독이 지난 7년 동안 고민해 온 이런 주제들에 대한 포괄적인 결과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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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부산 중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 기자간담회에서 전양준 부집행위원장(왼쪽부터)
4일 오후 부산 중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 기자간담회에서 전양준 부집행위원장(왼쪽부터)

영화는 젠첸 이외에 어떤 인물에게도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엄마, 아버지, 엄마의 새 남자, 황 사장 등 모두 대명사나 모호한 익명으로 처리된다. 감독은 “탈북자들은 가명을 쓰거나 개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젠첸을 제외한 인물들에 이름을 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한편으론 이 영화가 어느 특정한 탈북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감독이 수년 동안 만난 수많은 탈북자의 이야기며, 우리 주변에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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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데이즈’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누리집
‘뷰티풀 데이즈’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누리집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개런티로 영화에 참여한 이나영은 중국어, 옌벤사투리, 서울 표준어 등 다양한 언어를 소화해 낸 것은 물론 10대부터 3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 묵묵히 살아가는 강인한 여성이자 엄마의 모습을 눈빛과 표정을 통해 깊이 있게 표현해냈다. 그는 “길다면 긴 6년이라는 공백기를 거치면서 항상 관객에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로 다시 만나길 바랐다. 그 과정에서 <뷰티풀데이즈>라는 훌륭한 시나리오를 만났다”며 “엄마가 된 뒤 상상만 했던 감정들에 대해 100%는 아니라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 특히 촬영 역시 과거 회상 부분부터 현재까지 차례로 진행돼 감정을 누적해 가는 과정이 그나마 더 수월했다”고 말했다.

작품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뷰티풀데이즈>라는 제목은 매우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맨 마지막 부분,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이 둘러앉아 말없이 밥을 먹는 장면은 앞으로 이들 앞에 펼쳐질 미래가 아름다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희망을 안긴다는 점에서 또한 더 없이 적절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