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눈의 심은하? 구미호? 가장 무서웠던 공포드라마는?

김성규 2018. 10. 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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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 부터 <손 the guest> 까지, 공포드라마가 걸어온 길

[오마이뉴스 김성규 기자]

OCN 수목드라마 <손 the guest>의 기세가 매섭다. 한국 드라마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영매, 사제, 빙의 등을 소재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4회 만에 3%대 시청률을 넘어서며 탄탄한 마니아 층을 구축해냈다.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공포 드라마'가 <손 the guest>의 등장과 함께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셈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한국방송 50년사에서 시청자를 사로잡은 공포드라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KBS <전설의 고향>
ⓒ KBS

공포드라마의 고전: KBS <전설의 고향>

한국 공포드라마의 원류를 따지자면 KBS <전설의 고향>을 첫 손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1977년 '마니산 효녀'를 시작으로 1989년 '왜장녀'까지 약 12년간 방송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 후,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여름특집으로 방송되어 변함없는 인기를 누렸다. 2008년에도 8부작으로 편성되어 방송된 바 있고, 2010년에는 한은정 주연의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방송되었다.

각 지역에서 떠도는 전설과 설화를 각색하여 영상화 한 <전설의 고향>이 공포 드라마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구미호' 덕분이다.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도 구미호의 인기는 대단한 것이어서 한혜숙, 장미희, 김미숙, 정윤희, 유지인, 선우은숙, 노현희, 박상아, 송윤아, 김지영, 박민영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돌아가며 구미호 역할을 소화해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내 다리 내놔!"로 유명한 '덕대골' 편도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에피소드 중 하나. 다리를 훔쳐간 윤유선을 쫓아가며 한 발 투혼을 펼친 이광기의 열연은 아직까지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훗날 이광기는 이 장면을 촬영한 이 후, 한동안 다리를 펴지 못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전설의 고향>은 엄격한 유교 사회에서 핍박받았던 여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한 행동을 실천하고자 노력한 백성들, 가정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목숨을 바친 여러 인물군상 등을 자연스럽게 극으로 녹여내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수작으로 지금까지 손꼽히고 있다.
 공포드라마로서 역대급 성공을 거둔 MBC < M >
ⓒ MBC
MBC 공포드라마 4편: < M ><거미><별><불꽃놀이>

1994년, 10부작으로 방송 된 MBC 미니시리즈 < M >은 한국 공포드라마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명작으로 손꼽힌다. <마지막 승부>를 통해 당대의 청춘스타로 떠오른 심은하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평균 시청률 38.6%, 최고시청률 52.2%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기록하며 전국의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낙태된 태아의 복수라는 파격적 소재를 채택하고 치정과 살인, 자살 등 지금 봐도 매우 잔혹하면서도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아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갑자기 초록색으로 눈이 변하면서 섬뜩한 목소리를 내는 심은하의 변신 장면은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 공포 드라마로는 전무후무한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 M >의 인기를 등에 업고 MBC는 1997년까지 매해 공포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1995년, 이승연 주연의 <거미>는 식인 거미가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내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 M >의 성공 덕분에 첫 방송부터 30%를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였으나, 난해한 구성과 완성도가 떨어지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초반의 인기를 유지하는데 실패해 아쉬움을 자아냈다.

"거미떼의 습격은 공포스럽기는커녕 파리떼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여 컴퓨터 그래픽 등 기술수준이 시청자들의 안목에 미치지 못함을 드러냈다. 파티장에 모인 엑스트라들은 뻔히 통로가 보이는데도 밖으로 도망가지 않고 어설프게 우왕좌왕함으로써 공포드라마가 아니라 코미디 같았다는 중평"(동아일보, 95.8.23.)과 같은 혹평도 있었으나, 심리적인 공포뿐 아니라 작품의 실험성 등에서 < M > 이상의 노력이 엿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1996년에는 고소영, 이소라 주연의 <별>이 외계인을 소재로 하여 방송 되었다. 외계인과 인간의 시공을 초월하는 사랑 이야기를 담아냈으나 다소 우스꽝스러운 외계인의 모습 등으로 흥행면에서는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 후, MBC는 1997년 최수종이 1인 2역을 맡은 <불꽃놀이>를 끝으로 납량특집 드라마 제작을 중단한다.
 세기말 공포드라마 SBS <고스트>
ⓒ SBS
세기말의 공포드라마: SBS <고스트>

1997년 이 후, 이렇다 할 공포 드라마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개국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던 SBS가 '세기말 공포드라마'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며 만든 작품이 바로 1999년 작품 <고스트>다. 당시 SBS 드라마국이 모든 힘을 다 쏟았다고 할 만큼 화려한 연출 및 출연진, 엄청난 제작비를 자랑했다.

<여명의 눈동자><모래시계>로 유명한 김종학 PD가 연출을 맡았고 <호텔리어><유리구두><오! 필승 봉순영><달자의 봄><제빵왕 김탁구><구가의 서><가족끼리 왜 이래><낭만닥터 김사부> 등을 집필한 강은경 작가가 대본을 맡았으며 장동건, 김민종, 명세빈, 김상중, 박지윤 등 톱스타들이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소재도 신선했다. 소설 <퇴마록>의 인기를 바탕으로 '퇴마'를 메인 소재로 삼았고, 이를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캐릭터들의 변화무쌍한 연기 변신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SBS의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홍보가 더해져 첫 회 시청률은 26.7%를 기록하였다. 순조로운 출발 덕분에 당시 SBS 드라마국에서 "공포드라마를 완벽히 부활시켰다"는 자화자찬이 나왔을 정도.

그러나 상큼했던 첫 출발과는 달리 <고스트>는 방송내내 당시 경쟁작이었던 강남길-심혜진 주연의 MBC <마지막 전쟁>에 발목을 잡혔다. 방송 6회까지 <마지막 전쟁>과 엎치락 뒷치락하던 시청률은 7회를 기점으로 완전히 선두를 빼앗긴 뒤 종영하는 16회까지 하락세가 이어지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16회 마지막 시청률은 19.7%로, 첫 방송 시청률보다 약 7%P 가량 낮은 성적표였다. 동시간대 <마지막 전쟁>의 시청률이 39.4%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막대한 제작비와 엄청난 공력을 쏟아 부은 것이 무색한 셈이다. 결국 <고스트>는 SBS에 다른 의미로 '공포스러웠던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MBC <혼>
ⓒ MBC
아쉬움을 자아낸 공포드라마: KBS < RNA >와 MBC <혼>

<고스트>의 실패 이 후에도 공포드라마 실험은 계속됐다. 2000년 방송된 KBS < RNA >가 대표적 작품이다. 1999년까지 매해 여름 <전설의 고향>을 방송하던 KBS가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새로운 공포극을 만들겠다며 출범시킨 < RNA >는 < M ><별> 등을 집필한 이홍구 작가가 집필을 맡고 당시 떠오르던 신예인 배두나, 김효진 등이 주연을 맡아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작품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고, < M >의 설정들이 군데군데 보이는 등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재밌는 것은 20%에도 못 미치는 시청률을 기록했음에도 동시간대 1~2위를 왔다갔다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는 것. 경쟁작이었던 MBC <뜨거운 것이 좋아>와 SBS <도둑의 딸>이 약체였던 탓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후,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공포드라마는 2009년 MBC <혼>으로 부활한다. 처음부터 '19세 이상 시청가'로 파격적인 연출과 독특한 소재를 내세웠던 이 작품은 감각적이고 스피디한 전개로 시선을 사로잡으며 초반부터 명품 공포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중반 이 후, 스토리 라인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결말 등으로 안방극장에서 차가운 외면을 받았다.
 공포드라마의 새 장을 열고 있는 OCN <손 the guest>
ⓒ OCN
쉽지 않은 공포드라마 성공, 그러나 도전은 계속된다

이처럼 공포드라마는 공포영화와 달리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은 역사를 써내려 왔다. <전설의 고향>< M >과 같이 대성공을 거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흥행작을 찾기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파격적인 소재와 실험적인 연출을 시도해야 하는 만큼 안정성을 추구하는 TV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30~50대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어려웠던 탓이다.

이 때문에 공포드라마는 꾸준한 명맥을 이어오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제작되었고, 탄탄한 시청자 층을 구축하지도 못했다. 각 방송사가 에피소드 드라마 형식의 MBC <이야기 속으로>, SBS <토요미스테리 극장>이나 SBS <어느 날 갑자기>와 같은 단막극 등으로 우회하여 공포 드라마를 제작한 이유도 '확실한 성공'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공포드라마는 끝없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다채널 시대를 맞아 보다 신선하고 새로운 소재 및 연출 기법이 활용되고 있으며, 타깃 시청층을 확고히 해서 흔들림 없는 구성력까지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OCN <손 the guest>의 등장과 성공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손 the guest>와 함께 새로운 공포드라마 시대를 연 한국 공포드라마는 이제 어떤 식으로 발전하게 될 것인가. 공포드라마 장르를 사랑하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하고 또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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