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욕하고, 나가도 또 부르고"..탈출구 없는 '사이버 불링' 만연

김지연 2018. 10. 4.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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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사이버 불링 심각①] 청소년 잡는 온라인 학교 폭력

개학을 하루 앞둔 지난달 2일, 충북 제천의 한 상가 4층 건물에서 16살 A양이 스스로 극단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경찰 수사결과 A양은 학교 선배와 친구들에게 스마트폰 메신저 등을 통해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A양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다 결국 스스로 비극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온라인상 괴롭힘, 이른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다수가 한 사람을 불러 욕설을 퍼붓는 ‘떼카’와 대화방을 나가도 자꾸 초대해 괴롭히는 ‘카톡 감옥’, 피해 학생만 남게 하는 ‘카톡 방폭’ 등 유형도 다양하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던 학교 폭력의 양상이 디지털 기기의 발전으로 점점 다양해지고 교묘해지는 상황에서 이를 예방하고 적절히 대처하기 위한 교육 당국의 대책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효과적인 사이버 불링 대처 방안으로 또래 상담자 활용 등 다각적인 대응 방안을 주문하고 있다.

◆‘사이버 불링’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하는 학생들 잇따라

지난달 12일 SNS에서 비속어 등 이른바 ‘댓글 폭력’에 시달리던 B(15)양이 ‘엄마, 아빠 사랑해요’ 등이 적힌 유서를 남기고 인천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B양의 부모는 경찰 조사에서 “딸의 전 남자친구가 페이스북에 사귈 당시 둘이 겪은 일을 안 좋게 표현해 올렸고, 또래들의 비난 댓글이 많이 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B양 시신 부검을 의뢰하고, 유족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추가로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버 불링’에 시달리는 많은 학생은 B양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괴로움과 후유증을 호소한다.

지난 7월 인천에서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린 C(13)양도 생전에 사이버 폭력을 당해온 사실이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경찰은 C양이 지난 2월 동급생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이후 C양의 ‘에스크’(SNS의 익명 질문페이지) 계정에 명예훼손성·모욕성 발언,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질문이 지속해서 올라온 것을 확인했다.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은 가상공간을 뜻하는 사이버(cyber)와 집단 따돌림을 뜻하는 불링(bullying)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온라인 공간에서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소셜네트워크(SNS) 등을 활용해 특정 대상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뜻한다.

◆교육현장의 무관심 탓에 확산하는 ‘사이버 불링’

정부는 사이버 따돌림을 학교 폭력의 유형에 포함하면서 사이버 불링 등을 개선하고자 2012년 3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하지만 교육현장의 무관심 탓에 사이버 불링은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사이버 불링은 스마트폰 보급 등에 따라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일 교육부에 따르면 2012년 신고된 사이버 불링은 900건, 2013년 1082건, 2014년 1283건, 2015년 1462건, 그리고 2016년에는 2122건까지 증가했다.


교육부가 최근 전국의 학생(초등 4학년~고등 3학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학교 폭력을 경험한 5만명의 학생 가운데 사이버 불링을 당했다는 응답이 10.8%를 기록했다. 학생 10명 중 1명은 사이버 불링을 경험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 당국이 사이버상에서 행해지는 폭력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양이 다니던 학교 측 역시 그가 사이버 불링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실제로 A양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에도 “학교 폭력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양이 사이버 불링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야 “방학 중 사건이 발생해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전 세계적인 문제 ‘사이버 불링’

사이버 불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초 호주에서도 유명 모자 브랜드의 모델 활동을 하며 이름을 알린 14세 소녀 에이미 에버렛이 사이버 불링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후 에이미의 부모는 딸의 비극을 그냥 넘길 수 없다며 앞으로 사이버 불링의 경각심을 알리기 위해 SNS를 통한 캠페인에 나섰고, 에이미와 비슷한 사이버 불링의 피해를 입은 가족, 개인, 지도자급 인사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지지가 쏟아졌다.

미국에서도 청소년 10명 중 6명(59%)은 사이버 불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미 ABC 방송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3~4월 13~17세의 미국 청소년 743명을 조사해 내놓은 결과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 조사에서 사이버 불링은 컴퓨터 또는 휴대전화를 통한 거짓 소문 확산, 원치 않는 불쾌한 이미지·욕설 수신, 장소·행위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 신체적 위협, 동의 없는 이미지 공유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였다.

◆전문가 “효과적인 사이버 불링 대처 위해 또래 상담자 활용해야”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된 현대 사회에서 사이버 불링은 결코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며 또래 상담자 등을 활용한 실효성 있는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강창경(경희대 대학원 교육학과 박사과정)씨는 지난해 청소년문화포럼에 발표한 논문 ‘또래 상담자를 활용한 사이버 불링 개입방안’에서 “효과적인 사이버 불링 대처를 위해서 또래 상담자 활용이 가장 실효성 있는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강씨는 “사이버 불링의 심각성에 대해서 학생들이 자각하고 인식하는 것이 사이버 불링 예방의 최우선적 과제”라며 “또래 상담자들이 사이버 불링에 대한 관련 지식을 갖춘 후 학생들에게 사이버 불링 대처전략을 사전에 숙지시키는 것이 개입단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FBI 통일범죄 총계 보고서(The U.S. Uniform Crime Report)에 따르면 사이버 불링 피해자 중에 10% 정도만이 부모에게 사이버 불링 피해사실을 알린다고 조사됐다. 이처럼 사이버 불링 피해 경험을 어른에게 알리는 경우가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또래 상담자가 사이버 불링에 대한 적절한 대처 사항을 학생들과 사전 공유하며 안내하는 것은 예방적 차원에서 또래 상담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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