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달리는 중환자실’ 부족…서울 외에는 서비스 안돼읽음

홍기정 | 대한응급의학회 정책위원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미흡한 환자 전원 체계

‘달리는 중환자실(SMICU)’ 차량으로 심정지 후 자발 순환 회복이 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심정지 시에 즉각 대처하기 위해 환자에게 자동심장압박기 적용 후 응급약물, 인공호흡기, 제세동 모니터를 부착하고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달리는 중환자실(SMICU)’ 차량으로 심정지 후 자발 순환 회복이 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심정지 시에 즉각 대처하기 위해 환자에게 자동심장압박기 적용 후 응급약물, 인공호흡기, 제세동 모니터를 부착하고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생명이 위급한 순간 찾게 되는 곳이 응급실이다. 가족의 생명이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서 부랴부랴 응급실로 달려가면, 중환자실 치료를 당장 받지 않으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이 남는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게 된다. 그런데 “현재 병원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시라”는 말을 들으면 보호자들은 막막함을 지나 ‘멘붕’에 빠지게 된다. 보호자가 응급실에서라도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해도, 중환자실과 인공호흡기 등 장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환자를 위해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전원 과정이 필요하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고 설득하는 이 과정은 응급실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에게도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안녕하세요 응급실입니다](10)‘달리는 중환자실’ 부족…서울 외에는 서비스 안돼

어렵사리 보호자와 의료진이 전원하기로 합의를 해도, 안전하게 다른 병원으로 갈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다시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겨야 한다. 서울에서만 연간 약 4600명의 심정지 환자, 약 8000명의 중증 외상 환자, 약 2만5000명의 심뇌혈관 응급 환자가 발생한다. 이들은 전문적인 중환자 치료가 필요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2016년 한 해에만 서울에서 약 4만2000명의 환자가 응급실 방문 후에 구급차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다시 이송되었다. 병원에서 병원으로의 이송 과정은 병원 밖 현장에서 119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올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119구급대는 현장에서 신속한 응급 처치 후에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임무다. 반면에 병원 간의 전원은 응급실에서 전문적인 응급 처치를 마친 후에 인공호흡기, 여러 가지 복잡한 모니터링장비, 약물주입펌프, 상황에 따라서는 에크모 장비 등을 달고서 이송하게 된다. 그야말로 중환자실을 통째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병원 간 전원을 하려면 민간 이송 업체를 이용해야 하는데, 민간 이송 업체가 전문적인 중환자 치료를 제공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진료비 등에 대한 수가는 없이 택시비처럼 이송료만 지급되는 현재 제도하에서는 전문의 탑승은 고사하고 인공호흡기의 연결 튜브 하나 구입하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서울시, 2015년부터 시범 사업
진료비 등 수가 없이 이송료만
시 예산으로 의료 장비 등 지원

다행히도 서울시에서는 2015년 말에 시범 사업을 시작으로 서울시 중증환자이송 서비스(Seoul Mobile Intensive Care Unit·SMICU), 소위 ‘달리는 중환자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는 서비스로, 지난 8월 초에 이 서비스를 이용한 중증응급환자가 2000명을 넘어섰다. 심폐소생술을 받고 다시 맥박이 뛰기 시작한 심정지 환자, 에크모를 달고 있는 환자, 심근경색·호흡부전 환자 등 생명이 위급한 많은 서울 시민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해서 병원에서 병원으로 안전하게 이송되었다.

SMICU 차량과 서울 소방 구급대가 응급환자를 실은 닥터헬기의 착륙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SMICU 차량과 서울 소방 구급대가 응급환자를 실은 닥터헬기의 착륙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더 먼 거리 더 위험하게 이송
전국 서비스망 구축 엄두 못 내
정부, 제도 뒷받침 생명 살려야

하지만 이 서비스는 현재 서울시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병원 간 전원 과정에 대해서는 별도의 수가 체계가 없다보니 서울시가 전문의 등 인력과 약물, 의료 장비 등의 비용을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어쩌면 서울보다 더 먼 거리를 더욱 위험하게 이송해야 하는 지방에서는 서비스가 더 필요해도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얼마 전 인천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5세 소아가 폐기능이 악화되어 에크모 장비를 달고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전원을 해야 하는 사연이 보도되었다. 환아의 부모가 서울시 중증환자이송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고 요청해서 박원순 시장이 이를 수락한 일이 페이스북에 소개된 것이다. 생명이 위급한 환자가 병원 간 전원이 필요한데, 달리는 중환자실 사용을 옆 동네에서 허락해 주었다는 게 미담 사례여야만 할까?

며칠 전에도 경기도 모 병원의 보호자가 “달리는 중환자실 서비스가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왜 서울에서만 운영되냐”는 항의 아닌 항의를 했다. 생명이 위급해서 촌각을 다투는 환자를 안전하게 전원하는 것은 전 국민이 반드시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다. 정부의 제도적인 뒷받침하에 전국에서 달리는 중환자실이 운영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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