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의 문인들 회고담..'미당 서정주의 뽀뽀' 등

2018. 10. 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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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문학의 거장으로 꼽힌 이호철(1932∼2016) 작가 타계 2주기를 기려 그의 글을 모은 산문집이 출간됐다.

작가가 말년(2015∼2016)에 '월간 문학'에 연재한 글을 정리하고, 다른 매체들에 실은 글을 더해 묶은 '우리네 문단골 이야기 1·2'(자유문고). 작가가 60여 년 동안 소설가로 살며 어울린 문단 사람들과의 추억, 회고담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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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기 기념 '우리네 문단골 이야기' 1·2 출간
[자유문고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분단문학의 거장으로 꼽힌 이호철(1932∼2016) 작가 타계 2주기를 기려 그의 글을 모은 산문집이 출간됐다.

작가가 말년(2015∼2016)에 '월간 문학'에 연재한 글을 정리하고, 다른 매체들에 실은 글을 더해 묶은 '우리네 문단골 이야기 1·2'(자유문고). 작가가 60여 년 동안 소설가로 살며 어울린 문단 사람들과의 추억, 회고담을 쓴 것이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인 그는 1950년 12월 6·25전쟁 중에 혈혈단신 월남해 아무 연고도 없는 남한 땅에서 부두노동, 제면소 직공, 경비원 등을 전전하며 주경야독으로 소설을 습작하다 1955년 단편소설 '탈향'으로 등단했다.

1960∼70년대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고 김대중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며 옥고를 치르기도 해 '투사' 이미지로 많이 알려졌지만, 사람을 사귈 때는 좌우 이념이나 학연, 지연, 연령 등을 따지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실제 모습, 거창한 현실 이면에 드리워진 사람살이의 솔직한 모습에 천착했다.

이 책에서는 그런 그의 진솔함과 넉넉한 품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젊은 시절인 1950∼60년대 문단 사람들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중에서도 미당 서정주 이야기가 여러 차례 등장해 눈길을 끈다.

1권에 수록된 '미당 서정주 선생의 '뽀뽀!''라는 제목의 글은 그가 어느 술자리에서 당시 문단 큰 어른 서정주에게 기습 뽀뽀를 당했다는 이야기다.

"어느 날 저녁 명동거리 어느 술집에서 미당과 상봉했을 때였다. 그 두 시('무등을 보며', '상리과원')뿐만 아니라 '산중문답', '문둥이' 그밖에도 몇 편을 내리다지로 읊어대자, 맞은편에 앉았던 미당도 너무너무 좋아하며 '내 새끼, 내 새끼' 하고 좋아했다. 술상 너머로 갑자기 나를 끌어안으며 다짜고짜 입에다 뽀뽀를 하는데 아예 당신의 혀를 내 입 한가운데로 밀어넣어 그 당시 숫총각이던 나는 기겁을 하게 놀랐다. 그날 그이는 끝내 내 하숙집까지 와서 주무시기까지 하였다. (…) 그 미당과의 마지막 헤어짐도 나로서는 만만치 않게 깊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195∼196쪽)

2권에서는 '난세 속 푼수 같았던 미당'이라는 제목으로 미당이 5·16 직후 삼엄한 분위기에서 어느 모임에 나갔다는 이유로 중부경찰서에 잡혀갔을 때의 일화를 들려준다.

[자유문고 제공]

"미당이 친북? 옛날 그때나 지금이나 그건 도무지 어불성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뒤에 그 무렵의 이야기는 한동안 문단의 우스갯소리로 떠돌기도 하였지만, 진보당 조봉암 당수의 친 사위였던 이봉래 시인도 같은 중부경찰서에 잡혀갔었는데, 그 유치장 안에서의 미당의 행태는 여러 가지로 웃겼다고 한다. (…) 독방에 갇힌 미당이 아침저녁으로 때 없이 '간수니임, 간수 나으리, 지금 몇 시나 됐습니까요?' 하고 묻는다거나, 그밖에도 뭐라 뭐라 혼자 구시렁거리던 행태는, 어떻게 저런 사람이 이 나라 제 일급의 시인일까 보냐 싶어질 정도로 웃기더라는 것이다."

"그 점, 미당은 시 하나는 끝내주게 잘 쓰는지는 몰라도 사람들 사는 평상인 쪽으로는 말 그대로 '푼수'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 정도로 푼수여서 어쨌다는 말인가. 나 같은 사람으로 말한다면 그때도 바로 미당의 저런 점이 기똥차게 좋았던 것이다. 아니 말은 바른대로, 좋았다기보다는 제대로 생긴 시인다워 보였다. 처음부터 웃기는 구석이 전혀 없는 조연현 같은 사람보다는, 타고난 자연 그대로의 사람 냄새가 짙게 풍겨서도 좋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저래서, 저렇게 푼수 대가리여서 바로 이 나라 제 일급의 시인이 아니겠는가." (85∼86쪽)

그는 김수영 시인을 두고는 '가부장적 문단을 등진 '외톨이''로 기억했다.

"김수영은 천성적으로 '문예', '현대문학'으로 이어지는 당시의 가부장적 문단 체제에 적응하지를 못하고 외톨이로 지내며 잡푼벌이로 그런저런 영어 번역을 많이 하고, 저녁이면 명동의 '은성'과 광화문 근처의 술집을 비잉빙 돌았다."

어느 날 북창동 '세대'지 편집부에서 만난 김수영은 급전이 필요해 어렵사리 번역료 선불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것 같았다고 한다.

"문득 김수영은 '호철, 어때? 호철은 아직 혼잣몸이라 견딜 만할 거야.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이게 도대체 사는 건지 안 사는 건지, 무슨 쌕쌕이 판인지 당최 모르겠어. 문학? 시? 모두가 웃기고 있어. 모두가 생지랄들이야!' 하곤 그이다운 괴이한 모습으로 한바탕 낄낄거리며 웃던 일이 묘하게도 선렬하게 떠오른다." (69쪽)

소설가 김동리는 이호철의 첫 작품 '탈향' 초고를 황순원의 추천으로 읽은 뒤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며 조언해줬다고 한다. 당시 이름을 날리던 선배 작가의 격려에 힘입어 그는 첫 문장을 바꾸는 등 다듬어 1955년 이 소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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