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장식 퓨전한복과 어릴적 색동저고리

홍미옥 2018. 10. 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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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10)

인사동 거리의 모습 by 갤럭시 note5 S노트. [그림 홍미옥]

“나는 잠깐 수줍고 오랫동안 행복하오”-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중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의 대사는 장난스럽게 혹은 가슴 아픈 느낌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한낮의 가을 햇살이 반가웠던 인사동의 거리에서 만난 젊은 저 청춘들도 드라마에서처럼 이런 대화를 나눌까? 단아한 한복차림으로 말이다. 아마도 커플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그들을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게 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인사동은 한복을 입은 지구인(?)으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고미술과 화랑, 필방이 약 700m에 이르는 길에 늘어선 걷기 좋은 인사동. 때론 자동차가 사람을 피해서 다니는 거리인 이곳은 오늘도 화사한 한복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점심시간을 틈타 가을 햇살을 만끽하러 나온 직장인의 분주한 발길 사이로 색동저고리를 입은 외국인 소녀가 지나간다. 윤기 흐르는 피부에 커다란 눈망울을 한 귀여운 이국의 소녀는 셀카 놀이에 여념이 없다. 소녀가 입은 한복 치마 색감을 보아하니 ‘음…. 혹시 자메이카?’ 월드컵 축구에서나 보던 그 색상 조합인 것 같다. 아님 브라질이든가. 유럽풍 드레스인지 전통 한복인지 도무지 가늠이 안 가는 한복 사이에서 소녀의 색동저고리는 단연코 아름다웠다.

그 옆의 다정한 커플을 보자. 내 맘대로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으로 발탁(?)해버린 젊은이들이다. 뒤통수가 동글동글한 게 분명 넓은 마음을 가졌을 도포 자락의 청년. 여자 친구의 앙증맞은 주머니 가방을 들어주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아름다운 금박 한복차림의 아가씨는 씩씩한 걸음걸이로 인사동 거리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치마 아래로 드러난 운동화까지도 내 눈엔 기특하고 예뻐 보였다. 요즘에야 도심에서 한복을 입고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복은 명절에도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입기 어렵고 왠지 망설여지고 특별한 날에나 볼 수 있는 옷으로 인식됐던 게 사실이다.


시장통 바느질 집에서 색동저고리를!
1970년 시장골목의 한복집 풍경 by 갤럭시탭 S3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아마도 1970년쯤이었을까? 내가 대여섯 살 무렵이었을 거다. 음력설을 앞두고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간 시장통의 한복집 골목은 대목을 맞아 여간 분주한 게 아니었다.

엄마바느질집, 중앙한복, 시장한복, 과부 등등 저마다 개성 있는 간판을 달고 있던 시장통 한복 골목. 콩기름이 눅진하게 배어 있던 낡은 방안엔 앉은뱅이 재봉틀과 천 조각, 통통한 실패와 골무, 작은 창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의 인색한 햇빛이 걸려있었다. 여주인은 손재봉틀을 돌려가며 좀처럼 구하기 힘들다는 일제 다리미 자랑에 여념이 없다.

몇 년은 입을 수 있게 넉넉하게 딸의 한복을 짓고 싶은 젊은 엄마와 한복을 예쁘게 입히려면 몸에 딱 맞게 지어야 한다는 바느질집 주인의 가벼운 실랑이가 시작됐다. 한참을 이야기한 끝에 결국은 주인의 조언대로 딱 맞게 짓기로 했고, 젊은 엄마의 표정은 벌써 어여쁜 한복을 입은 어린 딸이 눈앞에 있는 양 뿌듯하게 변해버렸다.

내 기억 속의 그 한복은 윤기 나는 양단의 색동저고리와 꽃분홍 치마 그리고 토끼털로 장식한 연둣빛 배자였다. 어서 빨리 설날이 왔으면, 세뱃돈은 바느질집 아줌마가 선물로 만들어주기로 했던 빨간 복주머니에 넣어 두는 게 좋겠지? 하루하루가 더디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설날, 새로 지은 한복을 입고 하늘을 나는 것 마냥 즐거웠던 난 그 차림새로 동네 가게에서 풍선을 뽑기도 하고 괜스레 큰길가를 서성이기도 했다. 음력 정월 대보름까지는 한복을 입어도 된다는 어른들 말에 추위도 참아가며 신나게 입고 다녔다.

하지만 눈치(?) 없는 나의 성장 속도는 다음 해 설날엔 그 한복을 입을 수 없게 했고,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면서 바느질집 주인 얘기를 들은 게 실수였다고 후회했다. 그 후로도 한동안 색동저고리에 꽃분홍 양단치마 연둣빛 베자는 안방 장롱에 얌전히 개켜 있다 어느샌가 기억 밖으로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럴 줄 알았다면 폰 그림 속의 인사동 사람들처럼 평소에도 마구 입고 다닐 걸 그랬다 싶다.


안방에서 길거리로 나온 한복의 얼굴
2018년 인사동 사진. [사진 홍미옥]

스마트폰으로 인사동의 모습과 1970년 바느질집의 모습을 그리고 있자니 다소 한복의 외양이 변한 듯싶었다. 눈처럼 하얗고 꼿꼿한 동정은 온데간데없고 레이스가 그걸 대신하고 있기도 하고 넓은 열두 폭 치마는 이상한 디자인으로 바뀌어 거리를 활보한다. 정체불명의 퓨전 한복은 가끔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한다.

다행스러운 건 무분별한 한복에 대한 규제가 조만간 시행된다는 소식이다. 이렇듯 요즘 인사동의 모습은 뭔가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더러는 인생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 혹은 한나절 재미를 위해서 한복을 입기도 하겠지만 그런들 어떠한가. 거리로 나온 한복의 물결 속에는 열두 폭 치마만큼이나 넓고 아름다운 마음이 분명 그 안에 담겨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 오늘의 드로잉팁

「 폰으로 컬러링에 빠져보자. 몇 년 전부터 열풍을 일으켰던 컬러링을 이젠 스마트폰에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료 그리기 앱인 펜업에서 그 기능을 추가했는데 마음을 달래고 싶거나 우울할 때 혹은 뭔가를 그리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는 당신이라면 이걸 추천한다.
펜업에서 컬러링 기능을 추가해보자. [사진 홍미옥]

앱 실행 후 첫 화면에서 컬러링을 선택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도안이 나오는데 다른 유저의 컬러링 작품도 참조하면서 색상이나 브러시를 선택한 후 컬러링 시작! 하나씩 채워 나가다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아래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언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젠 컬러링도 내 손안의 폰으로!
도안을 선택한 후 색상과 브러시를 선택해 컬러링을 시작한다. [사진 홍미옥]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keepan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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