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블프'라더니..인터넷보다 비싸고, 살 것도 없더라

박성우 기자 입력 2018. 9. 29. 10:00 수정 2018. 9. 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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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 뿐인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가격 혜택 없고 참가업체 기간도 축소
‘박근혜 사업’이라? "처음부터 틀렸다"

"코리아세일페스타(이하 코세페)요? 그게 뭐죠? 그런 행사는 없는데…제휴사 카드 할인, 구형제품 반납, 상품권 페이백 넣어서 그 가격 맞출 수 있어요."

28일 오전 11시쯤 서울 시내 한 대형 가전업체 직영매장을 찾아 "코세페 3000대 한정 특가로 파는 399만원짜리 ‘65인치 OLED TV’를 보여달라"고 했다. 직원이 당황해하며 직원용 태블릿PC를 조회했다. 답답한 마음에 TV가 진열된 곳에 가보니 ‘코세페 행사’용 가격표가 보였다. 모델명만 다를뿐, 동일한 사양의 제품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인터넷 최저가는 378만원이었다.

대형가전업체 직영매장에 놓여있는 코리아세일페스타 할인상품. /박성우 기자

또 다른 대형가전 기업 매장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 매장에서 코세페 행사 중인 75인치 초고화질(UHD) TV가격은 280만원. 하지만 할인에는 비밀이 있었다. TV의 정가는 458만원이지만 제휴 카드사 결제와 구형TV 반납 등을 해야만 280만원대에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해당 모델을 검색해 최저가를 확인해봤다. 카드사 할인 등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가격은 268만원. 매장 직원은 "인터넷 최저가와 비교하면 답이 없다"며 "매월 판촉행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코세페라고 대단한 할인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 인터넷 최저가보다 비싼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라던 코세페가 오늘(28일)을 시작으로 다음달 7일까지 열린다. 올해로 3회째인 코세페는 소비 촉진을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쇼핑 할인 행사다.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로 시작해, 이듬해 현재의 명칭으로 재탄생했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라는 건 이름 뿐, 실제로는 별로 싸지 않다. 인터넷 최저가보다 비싸다"는 소비자의 불만을 사 왔다. 코세페 기간이 백화점 가을 정기 세일 기간과 겹치면서, 다른 할인 행사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개 백화점도 9월 말에서 10월 중순까지 정기 세일 행사를 한다.

28일 서울 명동 거리에 대규모 쇼핑 할인 행사인 ‘코리아세일페스타2018’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뉴시스 제공

코세페 홈페이지에서 ‘파격 할인’ 대표 상품인 20종을 살펴봤다. 대다수의 제품이 인터넷 최저가보다 비싸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금강제화의 리갈 신사화는 정가가 25만8000원인데 40% 할인해 15만4800원에 판매 중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최저가가 16만원이다. 적외선 그릴 ‘자이글 파티’는 29만9000원에서 30%할인한 20만9000원에 판매한다고 적혀있지만,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16만~17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2018 코리아세일페스타 홈페이지에는 대표할인상품 20개가 올라와있다./ 코리아세일페스타 홈페이지 캡처

일본 마쯔오카 대표상품인 그릇세트도 코세페 할인가(11만5000원)보다 낮은 10만2700원에 구매 가능했다. 메디힐 아쿠아링 앰플마스크 인터넷 최저가는 코세페 특가의 절반이었다. 특히 메디힐 상품은 코세페 홈페이지에 정가·할인가 없이 할인율(50%)만 적혀 있었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는 ‘진짜 세일’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형성돼있다. 지난해 11월 블랙프라이데이 세일기간 중 삼성전자는 75형 QLED TV를 정가의 45%, 2500달러(약 277만5000원) 할인한 3499.99달러(약 388만5000원)에 팔았다. 이 제품은 블랙프라이데이 직전까지 베스트바이 등 미국 유통점에서 1000달러(약 110만원) 비싸게 판매됐다. 65형 QLED TV는 2700달러(299만7000원)를 세일했다. 이 제품 역시 당시 인터넷에서 10~15% 더 비싼 약 3000달러 이상에 판매됐다.

LG전자 역시 OLED TV를 최대 30% 할인된 가격에 판매했다. 65형 OLED TV의 정가는 3299.99달러(약 366만3000원)였지만, 블랙프라이데이에는 700달러 할인한 2599.99달러(약 288만6000원) 가격표를 붙였다. 당시 인터넷 최저가는약 2800달러(약 310만원) 수준이었다. 비싼 가전제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블랙 프라이데이까지 기다리자"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코세페도 장점은 있다. 오프라인 상점은 눈으로 직접 보고 살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지만, 가격이 온라인 최저가에 비해 비싸다는 인식이 많았다. 코세페 기간에는 오프라인 상점의 할인폭이 크기 때문에 인터넷 최저가와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눈으로 직접 보고 제품을 구입하려는 ‘매장 쇼핑족’한테는 코세페가 유리하다.

또 올해 코세페는 쇼핑 이외에도 행사 기간 서울 주요 지역에서 △쇼핑(명동) △트렌드(강남) △체험(삼성역) △젊음(홍대) △패션(동대문)을 주제로 여러 이벤트가 진행돼 볼거리도 많다.

◇ ‘전 정권 꼬리표’ 코세페…"정부, 기업, 소비자도 외면"
코세페의 예산, 참여기업수, 행사기간은 점점 줄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산업부가 코세페 행사를 위해 책정한 예산은 총 34억5000만원으로, 지난해 51억원의 67% 수준에 불과했다. 이 중 전야제 행사 초청 연예인 출연료를 포함한 기획 및 홍보 예산만 21억5000만원으로 전체 예산의 62%를 차지했다. 홍보를 제외한 순수 행정 예산은 13억원 뿐이었다.

코리아세일페스타 기간은 34일에서 10일로 줄고, 예산도 20억원 가까이 감소했다. 참여업체수는 9월 13일 기준.

행사 기간도 짧아졌다. 지난해에는 34일 간 열렸지만, 올해는 단 10일간 열린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존에 행사 기간이 너무 길어 임팩트가 적다는 지적이 있어서 기간을 줄였다"며 "민간이 해야 할 행사라는 기조가 강해 예산이 줄었다"고 했다.

지난해보다 참여기업의 수도 대폭 줄었다. 지난 14일 기준 코세페 참여기업 수는 총 231개사(유통 96개, 제조 84개, 서비스 51개)로 2017년 446개사(유통 192개, 제조115개, 서비스 139개)의 반토막 수준이다.

기업들도 코세페 참가를 그리 달가워 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미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자체 직영매장을 갖췄고 매월, 매분기별 자체 할인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코세페만을 위해 할인행사를 기획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내 한 가전업체 대관(對官) 담당자는 "코세페 참가는 실적보다 정부 부처에 잘보이기 위한 대관용에 가깝다"며 "실적에 큰 도움도 안되고, 열심히 하자니 눈치가 보이고 ‘계륵’같은 존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권 행사’라는 꼬리표가 붙은 코세페를 일부러 ‘고사(枯死)’ 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코세페 자체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시도였다"고 지적한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블랙프라이데이는 내수촉진 활성화를 원하는 정부, 재고처리가 필요한 기업, 싼값에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며 "코세페가 블랙프라이데이처럼 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는 게 아니라, 민간이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쇼핑 플랫폼을 만들어주면 된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코세페는 정부, 기업, 소비자 모두 달갑지 않은 행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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