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의 여성시대

김소영 입력 2018. 9. 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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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왕과 여왕, 그리고 강한 여자들이 있다.

<A Girl Cried Red>

Princess Nokia

신예라 할 수 없지만 ‘시대정신’에 대해 말하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래퍼, 프린세스 노키아는 ‘Smart Girl Club’이란 팟캐스트의 설립자이자 당당한 페미니스트다. 하지만 그런 ‘의미’ 이외에도 그는 뉴욕의 이스트 할렘에서 자랐고 16세 때부터 가사를 썼으며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만만찮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서사도 갖고 있다. 또한 러프 트레이드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통 있는 레코드에서 차린 동명의 레이블과 계약했다는 ‘힙’한 요소도 그의 일부다. 믹스테이프 의 커버에서 그는 웃으며 록 밴드 슬립낫 티셔츠를 입고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힙합이라기보다 이모(Emo: 펑크의 한 장르)의 영향이 강력하게 드러나는 앨범이지만, 그 또한 좀처럼 정의할 수 없는 프린세스 노키아의 면모다.


<Enchanted Propaganda>

Jvcki Wai

이 음반엔 피처링이 하나도 없다.그렇게 재키와이는 용맹하다. 그의 언어엔 남녀 구분이 없다. 보편적 힙합의 언어를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낸다. “너희는 안경을 벗고 봐, 내가 이뤄낼 성공. 통장에 더 쌓일 공공의 적이 된대도 낮추지 않아 내 속도”, “지나가는 니 대가리에 던진 수류탄을 직격으로 맞췄지.” 음원 차트를 겨냥한 것이 명백한 ‘팝 랩’이나 성별을 강조하는 가사 대신(그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저 강한 래퍼일 뿐. “쓸데없는 건 치워. 남은 잔을 비워. 빛나는 도마 위, 진실한 도그마 위로.” 그렇게 쓸데없는 걸 치우고, 힙합이 남았다. 지난 EP <Neo EvE> 수록곡 ‘Anarchy’에서 이미 이렇게 밝혔듯. “뭘 나눠 이분법에. 난 인간. X녀도 성녀도 아니네.”


<Invasion Of Privacy>

KCardi B

독한 자만 살아남는 시대. 어쩌면 SNS 시대의 총아. ‘가사를 잘 쓰네, 플로우가 독창적이네’ 같은 말이 실력의 기준이 되는 기술적 요소라면, 힙합은 기술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장르가 아니다. 수많은 거친 남자들이 거리의 삶과 폭력과 형제에 대해 랩을 했고, 거기서 ‘스트리트 크레디트’를 얻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용담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카디 비는 래퍼가 되기 전, 래퍼를 꿈꾸는 스트리퍼였다. 거기서부터 악착같은 성실함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랩 가사에 싣기 이전에 SNS로 온갖 개인사를 노출했다. 거짓말이야말로 치명적인 힙합의 세계에서, 그렇게 자신을 맘껏 드러내며 (‘The King Of New York’이라는 그 자신의 주장대로) 왕이 됐다.


<Gemini2>

윤미래

지금 윤미래를 얘기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으나 윤미래 이외의 어떤 여성 래퍼도 그와 같은 커리어를 쌓지 못했다. 신보 <Gemini2>는 ‘Memories…(Smiling Tears)’의 라이브 클립으로 시작한다. <Gemini>는 16년 전에 발매한 음반이고, ‘Memories…(Smiling Tears)’는 해당 음반 수록곡이다. “칠전팔기 내 인생 끝까지 가볼래.”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1997년 업타운으로 데뷔한 이래 진짜 ‘칠전팔기’만큼의 시간이 쌓였다. 첫 곡의 제목은 ‘Rap Queen’. 어쩌면 단 한 번도 부정당하지 않은 지위. 음반의 전반적 완성도에는 다소 의문이 남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운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윤미래처럼 남녀 불문 독보적 발성과 함께 랩만이 줄 수 있는 원초적 쾌감으로 승부하는, 정공법을 구사하는 래퍼가 드물어서다.


<Top 5>

Maliibu Miitch

이건 확실히 옛날 목소리, 옛날 발음, 옛날식 라임이다. 1990년대 여성 래퍼들이 떠오르는 랩으로, ‘Bitch’와 ‘Pussy’와 ‘N Word’를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요즘 1990년대를 참조한 래퍼들은 많지만 그것이 베네통식 총천연색 1990년대에 대한 오마주라면 말리부 미치는 그보다 릴 킴, 폭시 브라운 같은 이른바 ‘먹통 힙합’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퍼 재킷에 금붙이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걸고 자신이 자란 고향의 과거 유산에 대한 존중을 표한다. 최근 진행 중인 투어 이름도 ‘The Nasty Tour’로 지었다. 힙합의 고향, 사우스 브롱스 출신의 래퍼답게. 혜성 같은 믹스테이프 <Top 5>에 이어 싱글 <Give Her Some Money>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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