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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츠 에이스 제이콥 디그롬이 지난 27일(한국시간) 홈구장 시티필드에서 열린 애틀랜타와 경기서 호투한 후 팬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뉴욕 메츠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뉴욕 메츠 우완투수 제이콥 디그롬(31)이 환상적인 시즌을 완성했다. 올시즌 마지막 선발등판에서 8이닝 10탈심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방어율을 0.07 낮췄고 개인통산 1000번째 탈삼진도 달성했다. 2018시즌 최종성적은 32경기 217이닝 10승 9패 269탈삼진 방어율 1.70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0.91. 지난 4월 17일 워싱턴전부터 27일 애틀랜타전까지 29연속경기 3실점 이하, 5월 19일 애리조나전부터는 24연속경기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했다. 이는 빅리그 100년 역사에서 단일시즌 최고기록이다.

디그롬의 올시즌 무한질주는 ‘불운’과 함께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승수에서 알 수 있듯 디그롬이 선발 등판하는 경기마다 메츠 타자들은 지독한 침묵에 빠졌다. 실제로 디그롬은 올시즌 경기당 평균 3.53점을 지원받으며 메이저리그 전체 선발투수 중 콜 헤멀스(3.42점 지원) 다음으로 타자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디그롬이 마운드에 올랐을 때 한 점도 뽑지 못한 경기가 5경기, 1점만 뽑은 경기가 12경기에 달한다. 그러면서 디그롬 상대 선발투수의 방어율은 2.46에 달했다. 메츠 불펜투수들도 디그롬을 외면했다.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메츠 불펜진은 디그롬이 선발 등판했을 때 방어율 6.85, 디그롬 외에 선발투수가 마운드에 오를 때 방어율 4.75를 기록했다. 불펜진 방화로 선발승이 날아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디그롬은 1913년 이후 처음으로 1점대 방어율, 250탈삼진 이상, 50볼넷 이하를 나란히 기록한 두 번째 투수가 됐다. 첫 번째 투수는 2000년 사이영상을 수상한 보스턴의 페드로 마르티네즈다. 디그롬이 사이영상을 수상할 경우, 디그롬은 역대 선발투수 최소승 사이영상 수상자가 된다. 다음은 역사적인 시즌을 보낸 디그롬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2018년은 디그롬이 투수를 시작한지 10년째 되는 해다. 공식신장 193㎝ 몸무게 81㎏의 디그롬은 야구인생의 반 이상을 야수로 보냈다. 플로리다 스텟슨 대학 2학년까지 디그롬의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우투좌타 유격수였던 그는 뛰어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한 넓은 수비범위와 강하고 정확한 송구가 장점이었다. 하지만 대학시절 통산 타율 0.263로 타격에는 큰 재능이 없었다. 디그롬이 투수로서 처음으로 경기에 나선 것은 2009년 5월이었다. 불펜투수로 시작해 선발투수로 자신의 자리를 한 단계씩 올렸다.

-대학시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디그롬은 투수로 전향하면서 빅리그 스카우트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2010년 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272순위로 뉴욕 메츠에 지명됐다. 입단 당시만 해도 메츠 구단은 디그롬의 빅리그 보직을 불펜투수로 바라봤다.

-지난 17일 보스턴 펜웨이파크에서 디그롬과 크리스 세일이 선발투수 맞대결을 펼쳤다. 두 투수 모두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이날 경기는 ‘에이스 빅뱅’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대학 시절 디그롬이 세일에게 홈런을 쳤다는 점이다. 디그롬은 2010년 애틀랜틱 선 컨퍼런스 챔피언십 토너먼트에서 세일의 플로리다 걸프코스트 대학과 맞붙었고 세일을 상대로 우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터뜨렸다. 당시 많은 빅리그 스카우트가 초특급 유망주 세일을 보기 위해 이 경기를 찾았다가 디그롬에게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타자가 아닌 투수로. 비록 세일에 맞서 홈런을 터뜨린 디그롬이지만 이 홈런은 당해 디그롬의 유일한 홈런이었다.

-프로 입단 후 디그롬은 마이너리그에서 팔꿈치 수술과 재활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2011년 두 차례 사이영상을 수상한 요한 산타나와 함께 재활을 하면서 산타나로부터 체인지업을 배웠다. 이후 그는 꾸준히 마이너리그에서 주가를 높였고 2013년 11월 메츠의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이듬해에는 행운도 따르면서 빠르게 진가를 발휘했다. 2014년 5월 처음으로 콜업된 디그롬은 당초 불펜투수로 빅리그 마운드를 밟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선발투수였던 딜런 지가 부상으로 이탈해 갑자기 선발진에 합류했다. 당해 5월 16일 뉴욕 양키스와 서브웨이 시리즈서 선발 등판해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7이닝 4피안타 6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런데 이때도 승리투수가 되진 못했다.

-디그롬의 메이저리그 첫 시즌은 올시즌과 여러모로 비슷했다. 22경기 140.1이닝을 소화하며 방어율 2.69로 활약했으나 9승에 그쳤다. 그래도 그는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에서 경쟁자를 압도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1984년 드와이트 구든 이후 30년 만에 메츠가 배출한 신인왕이었다.

-디그롬은 실력 만큼이나 헤어 스타일도 주목 받았다. 그의 긴 펌머리는 트레이드 마크가 됐고 몇몇 메츠 마이너리그 유망주들은 그의 헤어 스타일을 따라했다. 웃긴 에피소드도 있었다. 디그롬에 앞서 에이스로 주목받은 맷 하비는 라커룸에서 디그롬의 벗은 뒷모습을 보고 헐벗은 여자가 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마른 체형의 긴머리가 하비를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메츠팬은 디그롬이 등판할 때마다 ‘Here We Go’에서 따온 ‘Hair We Go’라는 응원문구를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디그롬은 2017시즌을 마치자마자 머리를 짧게 잘랐다. 예전에는 긴 머리를 유지할 계획이었으나 이제는 짧은 머리가 편해 다시 머리를 기르지는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신인왕은 시작이었다. 디그롬은 빅리그에 오른 후 꾸준히 기량이 향상됐다. 구위와 제구 모두 언제든 사이영상을 바라볼 수 있는 수준이 됐다. Fangraphs.com에 따르면 2014시즌 평균 93.5마일이었던 포심 패스트볼 구속이 2015시즌 95마일, 2017시즌 95.2마일, 올시즌 96마일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직구·슬라이더 투피치에서 체인지업을 꾸준히 연마하며 스리피치로 자리매김했다. 이따금씩 커브와 투심 패스트볼도 던진다. 메츠가 디그롬, 하비, 노아 신더가드를 앞세워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던 2015시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존 스몰츠는 메츠 선발진과 자신의 현역시절 애틀랜타 선발진을 비교한 바 있다. 당시 스몰츠는 디그롬이 하비와 신더가드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고 극찬했다. 더불어 스몰츠는 조만간 디그롬이 사이영상을 수상할 것으로 예측했다.

-디그롬의 별명은 터미네이터에서 따온 ‘디그로미네이터’다. 메츠 홈구장 시티필드나 메츠 주관 방송사 SNY는 디그롬이 호투를 펼치면 터미네이터 주제가를 튼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디어와 팬이 사용하는 별명이다. 디그롬은 “우리 팀에서 누구도 나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보통 제이크, 제이콥, 디그롬 등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유니폼에 별명을 붙이는 ‘플레이어스 데이’서도 디그롬은 ‘JAKE(제이크)’를 선택했다.

-올시즌 많은 투수들이 디그롬의 사이영상 수상을 응원했다. 매디슨 범가너와 크리스 세일은 “디그롬이 현재 최고 투수”라며 “사이영상 투표권이 있다면 디그롬을 선택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김선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도 “투수라면 디그롬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지원없이 꾸준히 활약을 이어가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엄청난 멘탈을 지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메츠 미키 캘러웨이 감독은 올시즌을 마무리한 디그롬을 향해 “이런 투수는 처음 본다. 디그롬은 궁극의 에이스(The Ultimate Ace)”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캘러웨이 감독은 클리블랜드 투수코치 시절 두 차례 사이영상을 받은 코리 클루버를 지도한 바 있다. 캘러웨이 감독은 “올시즌 디그롬이 선발등판한 모든 경기가 대단했다. 그는 항상 같은 방법, 같은 구위로 경기를 지배했다. 언제나 상대보다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고 돌아봤다.

-디그롬은 올시즌 모든 등판을 마치며 “마지막 경기에서 통산 1000탈삼진, 그리고 무실점을 모두 해내고 싶었다. 둘 다 달성해서 기쁘다. 나 또한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항상 팀이 이기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공 하나하나에 신경썼다. 이렇게 시즌을 마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활짝 웃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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