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노조 파괴’ 컨설팅 업체보다 더 은밀하고 교묘했다”

정대연 기자

검찰 ‘노조 와해’ 수사 결과

임금 삭감은 기본…심성 관리한다고 불러 노조 탈퇴 강요…임신 사실 사찰까지…죽은 조합원 아버지에 돈 주고 불법행위 시키기도

“삼성은 ‘노조 파괴’ 컨설팅 업체보다 더 은밀하고 교묘했다”

미래전략실 인사팀이 총괄
이사회 의장 등 32명 기소
“이재용 등 윗선 지시 여부
현재까지는 증거 못 찾아”

삼성그룹의 조직적인 협력사 노동조합 파괴 공작이 2013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S그룹 노사전략’ 문건 공개 후 5년 만에 검찰 수사를 거쳐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삼성이 온갖 수법을 동원해 노조 활동을 방해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노조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는 27일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이날까지 그룹 2인자로 꼽히는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63),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61), 강경훈 삼성전자 인사팀 부사장(55) 등 삼성 전·현직 임직원 18명,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전·현직 대표 7명, 한국경영자총협회 전·현직 관계자 3명 등 총 32명(구속 기소 4명)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 법인도 기소했다.

검찰 수사 결과 삼성은 노조 설립을 ‘악성 바이러스 침투’로 규정하고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무노조 경영’ 방침을 관철하려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

그룹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이 노조 와해 공작을 총괄 기획하고,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는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을 마련해 협력사 노조에 대한 전방위 공작을 실행했다. 미전실은 매년 노조를 고사화하는 일명 ‘그린화’ 전략을 세워 계열사별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임직원 교육을 실시했다. 노무 담당 임직원들의 평가 요소로 ‘노조 세확산 방지’ 항목을 넣어 인사에 반영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에서는 임직원들로 구성된 ‘종합상황실’과 ‘신속대응팀’을 꾸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체계적인 노조 와해 작업을 해왔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 노조 전문가 송모씨에게 자문료 명목으로 총 13억원을 지급하고, 경찰청 정보국 소속 간부 김모씨에게 노조 내부 정보를 빼내게 하고 금품을 제공했다.

검찰은 “삼성이 노조 파괴 전문 노무컨설팅 업체로 잘 알려진 ‘창조컨설팅’보다 더 은밀하고 교묘한 수법을 썼다”고 밝혔다. 협력사들로부터 노조원들의 경력, 출신학교, 결혼·이혼 여부, 채무 등 재산상태, 임신이나 정신병력 등 건강상태, 성향 등을 사찰해 수집한 뒤 친사 측 직원인 ‘앤젤’ 요원들이 이들을 1 대 1로 밀착 관리했다. 2014년 5월 노조원 염호석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유서에 따른 노동조합장을 막으려고 법인자금 6억8000만원을 염씨 부친에게 불법 전달했다.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거나 노조 활동이 활발한 협력사에는 ‘위장폐업’을 지시하고 그 대가로 업체 사장에게 거액을 줬다. 폐업 후 비노조원에게는 다른 협력사 재고용을 알선해줬지만, 노조원은 재고용하지 말도록 했다. 노조원에게는 ‘심성관리’라 불린 개별면담과 업무전환, 징계·실적 압박, 일감 안 주기, 표적감사를 통해 노조 탈퇴를 끊임없이 회유했다.

노조 괴롭히기에는 경총도 힘을 합쳤다. 2013년 7월 노조 설립 무렵 경총은 삼성 요구대로 협력사들에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지연·불응하도록 지도했다.

당시 협력사 사장들을 경기도의 한 콘도에 불러모아 역할극을 시키면서 노조원으로 분한 경총 직원들이 사장들에게 생수병을 던지거나 욕설을 하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하게 해 노조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줬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삼성전자서비스가 2012년 4월부터 현재까지 협력사 노동자들의 업무내용을 직접 관리하고, 협력사 폐업도 임의로 결정하는 등 불법파견을 해오면서도 도급계약으로 위장했다고 판단하고 박상범 전 대표 등에게 파견근로자보호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검찰은 2013년 노동부가 근로감독 결과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을 확인하고도 이를 은폐한 혐의를 두고 당시 노동부 간부 등에 대한 수사도 벌이고 있다.

올해 초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을 수사하던 중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 문건 수천건이 담긴 외장하드를 발견하면서 재수사 실마리가 잡힌 삼성전자서비스 수사는 4월에 본격화한 이후 약 6개월 만에 일단락됐다. 검찰은 염호석씨 시신 탈취 과정에 경찰이 개입한 의혹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에버랜드, 에스원, 삼성웰스토리, CS모터스 등 다른 계열사·협력사에서 벌어진 노조 와해 공작도 수사 중이다. 검찰은 그룹 차원의 그린화 전략이 다른 계열사에서도 동일하게 실행된 것으로 의심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시 없이 노조 와해 공작이 이뤄질 수 있었겠느냐’는 지적에 검찰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수사에 임했지만 이상훈 의장 이상의 윗선이 개입한 사실에 대해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물론 현재까지 상황”이라며 진행 중인 수사에서 추가적인 윗선이 밝혀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오기형 정책위원은 “만시지탄이지만 검찰이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반헌법적·조직적 범죄를 확인한 점은 의미가 있다”며 “법원에서도 법에 따른 엄정한 판단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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