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엄마, 왜 오빠는 명절에 일 안 시켜?"

박가영 기자 2018. 9. 2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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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가족 내 성차별로 인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여성이 적지 않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지난 16일 남녀 11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서울시 성평등 생활사전-추석특집'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53.3%)이 명절에 겪는 대표적인 성차별 사례로 '여성만 하게 되는 가사노동'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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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가사는 여성의 몫..성차별 관습 타파 위한 남성 역할 중요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직장인 A씨(27)는 명절 때마다 어머니를 도와 음식 장만을 한다. 큰집이다 보니 준비해야 할 음식량이 만만찮지만 매번 음식을 하는 건 A씨와 어머니 단둘이다. 가족이 둘 뿐인 것은 아니다. 한 살 터울인 오빠가 있지만 그에게 명절 노동은 남일. 친구를 만난다며 나가기 일쑤다. 어머니에게 '오빠는 왜 명절에 일을 안 하냐'고 불만도 드러내 봤다. 하지만 "음식은 여자가 해야지"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추석 명절, 가족 내 성차별로 인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여성이 적지 않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음식 장만 및 뒤처리 등 명절 가사노동이 여전히 여성의 몫이어서다.

여성이 명절 가사를 도맡는 현실에 대해서 남녀 모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지난 16일 남녀 11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서울시 성평등 생활사전-추석특집'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53.3%)이 명절에 겪는 대표적인 성차별 사례로 '여성만 하게 되는 가사노동'을 꼽았다.

명절 가사노동의 시작과 끝엔 '음식'이 있다. 차례상을 차리기 위한 재료 구입부터 음식 준비, 상차림, 설거지까지 연휴 내내 할 일이 산더미지만 일하는 사람은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인 한모씨(31)는 "나를 비롯한 여성들은 '명절 풍경' 하면 거실에 누워있는 아버지와 종일 주방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떠올릴 것"이라며 "아직도 음식 준비하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인 것 같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남성들이 명절 가사에 참여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이 여성들의 설명이다. '함께 하는' 것이 아닌 여성의 일을 남성이 '돕는'다는 인식 때문. 2년 전 결혼한 이모씨(34)는 "남편이 옆에서 거들어 주는 것도 잠시"라며 "아이가 갓 100일을 넘었던 지난 설에도 시가에 내려가 전 부치고 잠도 자고 왔다. 연휴 끝날 때쯤 온몸에 스트레스성 습진이 올라와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먹었다"고 전했다.

가사 노동에 따라붙는 기성세대의 성차별적 발언도 스트레스를 늘리는 요소다. 직장인 조모씨(28)는 "세상이 바뀌고 있는 건 맞지만 어른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내가 돕지 않으면 온전히 엄마 일이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명절 때 집안일을 한다. 지난 추석에도 여느 명절처럼 욱하는 마음을 참으며 일하고 있었는데 큰아빠가 다가와 '여자가 손이 그렇게 투박해서 시집갈 수 있겠니?'라고 참견했다. 평소 같으면 화를 냈겠지만 명절 분위기를 해치기 싫어 그냥 넘어갔다"고 말했다.

명절 가사 분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할머니, 엄마 등 여성 가족 구성원의 꾸중을 듣기도 한다.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답답함을 느끼는 부분 중 하나다. 대학생 김모씨(22)는 "초등학교 때부터 당연한 일인 양 음식 장만을 도왔다. 그런데 남동생이 전 부치는 건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너도 해야 한다'며 남동생을 주방으로 불렀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막 만든 음식만 접시에 한 가득 담아 남동생을 내보내셨다. 이런 건 '여자들 일'이라며 나에게 한 소리 하시더라"고 답답해했다.

결혼 후 첫 명절을 맞는 신모씨(27)는 "친정엄마에게 추석 당일 시가 내려간다고 하니 가까운데 일찍 가서 일손 좀 돕지 그러냐고 잔소리를 들었다"며 "시가는 제사도 안 지내는데 왜 일주일부터 엄마가 스트레스를 주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가족 내 성차별과 이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성차별적 명절 관습에 이미 물들어 있다"며 "자칫하면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 있어 여성들은 먼저 이야기 꺼내길 힘들어하는 편이다. 남성이 먼저 문제를 자각하고 틀을 깨는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남성은 아내 등 여성의 명절 고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남녀가 협의해 명절 가사업무를 분담하는 일종의 '규약'을 만들어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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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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