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방탄판사단' 논란..판사들의 뒤늦은 후회

김종훈 기자 2018. 9.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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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서초동살롱] 과거 압수수색영장 '날림 발부' 반성하는 판사들 "뿌린대로 거두는 것"
/사진=뉴스1

"영장담당판사가 육탄방어에 전직 판사가 증거인멸하고…완전 범죄네" (네이버 이용자 aree****)

"감시 세력도 없겠다 아주 그들만의 세상이었겠지" (네이버 이용자 dlae****)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영장 심사 문제를 두고 양승태 사법부가 거센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수사대상에 오른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잇따라 기각됐기 때문인데요. 특히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세 번이나 기각됐습니다. 유 전 연구관은 그 사이 검찰이 압수하려 한 대법원 자료를 파기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데에는 나름의 법리와 이유가 있습니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이 갖고 있던 대법원 자료가 법이 정한 공무상 기밀에 해당한다고 보고 공무상 기밀 누설 등 혐의로 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 전 연구관이 갖고 있던 자료는 연구보고서 같은 판결 참고자료에 불과해 공무상 기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법원이 비난을 받는 것은 압수수색 영장 발부 비율 때문입니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 간 압수수색·검증영장 발부 비율은 평균 89.3%였습니다. 반면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수사에서 압수수색 영장 발부 비율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열에 아홉이나 영장을 내주던 법원이 '제 식구'가 수사 대상이 되자 반대로 열에 아홉을 기각한다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판사들도 비판받을 만한 상황이라는 건 인정합니다. 다만 문제의식이 조금 다릅니다. 여론은 이번 수사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하지만, 판사들은 평소 발부율이 거의 90%나 됐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수사기관이 증거물 수집을 위해 신체나 장소를 수색하고 물증을 압수하려면 영장이 있어야 합니다. 압수수색은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법원의 심사를 거쳐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실시해야 한다는 거죠. 이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90%에 육박한다는 것은 그동안 법원이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검찰이 청구하는 대로 영장을 발부해줬음을 뜻한다는 게 판사들의 생각입니다.

흔히 '영장'하면 생각하는 구속영장도 최근 7년 간 발부율이 79.4%로, 80%에 육박하는 수준이긴 했습니다. 그럼 구속영장 심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7년 간 구속영장 사건 추이를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구속영장 청구 건수는 4만2999건에서 3만9624건으로 감소했습니다. 중간에 등락이 있긴 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하향곡선을 그렸습니다.

구속영장 청구 건수가 감소한 것은 영장실질심사 제도 때문입니다. 1997년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구속심사는 검찰이 제출한 수사자료만 갖고 이뤄졌습니다. 피의자는 방어권을 거의 행사할 수 없었죠.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열에 아홉은 발부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보니 구속이 필요하지 않은 사건에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이 시절 영장판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부장판사는 "전치 4주짜리 교통사고만 내도 구속영장을 청구하던 때였다"며 "검찰에서 너무나 많은 영장을 요구하다보니 시간에 쫓겨 사건을 제대로 볼 틈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이런 식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이 일었고, 영장판사가 직접 피의자를 심문한 뒤 영장 발부·기각을 결정하게 하는 영장실질심사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이후 검찰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마구잡이 식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검찰도 법률이 정한 요건을 고려해 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건만 골라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됐습니다. 영장실질심사 제도 때문에 검찰도 엄격한 '자체 심사'를 하게 된 것이죠. 구속영장 영장 청구 건수가 줄었음에도 발부율을 80% 수준으로 유지했던 것은 이런 이중의 심사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압수수색 영장은 2010년 9만5861건에서 2016년 18만8538건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유죄를 입증하는 데 있어 진술보다 물증이 중요해지면서 압수수색이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압수영장 심사는 예전 구속심사처럼 검찰 자료만으로 결정됩니다. 영장실질심사 제도처럼 진행한다면 피의자가 압수수색을 예측하고 증거를 인멸할 위험이 크겠죠.

피의자의 방어권은 압수수색 현장에서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영장에 적힌 대로 압수수색을 집행하고 있는지, 수사와 상관없는 자료를 가져가는 것은 아닌지 변호인과 함께 감시하는 식으로요.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는 이런 방어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압수수색도 당황스러운데 검사나 수사관의 면전에 대고 '그건 가져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죠. 이렇다 보니 각종 서류는 물론 컴퓨터부터 휴대폰까지 '탈탈' 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결국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려면 법원이 심사를 제대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판사들이 후회하는 것도 이 부분입니다. 그동안 '대충' 영장을 내주다가,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와서야 압수영장 심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엄격히 보겠다고 나섰으니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한 부장판사는 "뿌린대로 거둔 거니 어쩌겠냐. 할말이 없다. 그동안 판사들이 얼마나 생각없이 영장을 내줬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물론 전·현직 판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대부분 차단한 법원의 판단이 무조건 옳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지체하는 사이 진실을 규명할 자료가 파기됐고, 이 때문에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만 사법불신을 초래한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판사들의 후회도 늦었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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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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