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취업' 15만원, '결혼' 30만원'..잔소리메뉴판, 명절덕담 가격은

임명수 2018. 9. 2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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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잔소리메뉴판. [사진 인터넷 캡처]
명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명절 갈등’.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갈등은 시댁 먼저 가기, 음식 여자가 하기 등 성(性)차별 문제가 많았다. 이 문제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어떨까. ‘미혼족’(결혼 안 한 사람들), ‘취준생’(취업준비생) 등이 많아지면서 ‘고향 방문’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고향에 가자는 부모와 혼자 남겠다는 젊은 세대들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왜 고향 방문을 꺼릴까.


덕담 가장한 잔소리, '잔소리 메뉴판' 인기 왜?
최근 인터넷상에 이러한 세태가 담긴 ‘잔소리 메뉴판’이 인기다. 어르신들의 덕담을 잔소리(?)로 간주해 가격을 붙인 것이다. 잔소리하려면 그에 맞는 금액을 지불하고 하라는 것이다. 물론 돈이 목적은 아니다. ‘덕담을 안 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잔소리 메뉴판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메뉴판은 진학을 앞둔 청소년의 경우 성적과 대입, 대학생은 취업, 직장인은 결혼과 출산 등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다. 덕담을 가장한 잔소리(?)의 가격은 5만원에서부터 50만원까지 다양하다. 가장 저렴한 메뉴는 5만원이다. ‘모의고사는 몇 등급이니’와 ‘대학 어디에 지원할 거니’ 등 두가지다. “애인은 있니”, “살 좀 빼라”는 각 10만원, “졸업은 언제 하니?”와 “아직도 취업준비 중이니?”는 15만원씩이다.

“회사 연봉은?”, “그 회사 계속 다닐 거니”는 상대적으로 비싼 20만원에 책정됐다. “나이가 몇인데 이제 결혼해야지”는 무려 30만원이다. 가장 비싼 메뉴의 대상은 부부(夫婦)다. “애 가질 때 되지 않았니?”로 50만원이다.

메뉴판 아래에는 ‘저의 걱정은 유료로 판매하고 있으니 구매 후에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설명도 붙어있다.
취업준비생인 김영훈(32)씨는 “집안 어르신들은 격려 차원이라고 하지만 듣는 우리 입장에서는 잔소리가 맞다”며 “저라고 취업 안 하고 싶고, 결혼 안 하고 싶겠냐. 그냥 묵묵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반면 임성훈(71)씨는“걱정돼서 하는 말을 잔소리로 생각하는 것부터가 문제”라며 “어른들이 다 잘되라고 하는 소리 아니냐 (잔소리메뉴판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혼 남녀가 명절 스트레스의 최고봉은 ‘가족 잔소리’를 꼽았다. [중앙포토]


고향 방문 후회? '친척 잔소리와 참견'

이러한 세태 반영은 최근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알바몬이 올 추석을 앞두고 대학생과 취준생, 직장인 등을 상대로 ‘추석 스트레스’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다. 성인남녀 2229명이 대상이다.
설문에 따르면 10명 중 5명이 ‘올 추석 친지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다’(46.7%)고 응답했다. 응답군 별로 취준생이 52.8%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직장인(44.8%), 대학생(36.2%) 순이다. 미혼인 경우 49.4%가 불참 의사를 밝혀 혼인(24.9%)의 경우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불참 이유로는 ‘친지들과의 만남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43.8%)’가 1위에 꼽혔다. 2위는 ‘현재 나의 상황이 자랑스럽지 못해서(35.3%)’가 차지했다.
또 설문응답자 중 1389명(62.3%)은 지난해 추석 때 친지 모임에 참석한 것을 후회한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는 ‘덕담을 가장한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와 참견(53.8%·복수응답)’이 가장 많았다.
설 연휴를 앞두고 지난 2월 귀성 차량으로 꽉 막힌 경부고속도로 서울 잠원IC와 서초IC 사이 구간. [중앙포토]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는 ‘집단주의’ 문화다 보니 집단을 이끌어갈 어른들은 서열을 정하고 아랫사람을 보듬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 한다”며 “반면 젊은 세대들은 외국처럼 개인주의화 돼 있기 때문에 그러한 덕담이 잔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6.25에 대한 생각이 양 세대간 다른 것처럼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살아 본 인생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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