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부끄럽지 않은 추석 차례상은?

우석영 <배려의 식탁, 제주> 공저자 2018. 9. 23. 13: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고] 폭염 이후 추석 차례상

[우석영 <배려의 식탁, 제주> 공저자]

 

지난 여름, 극한의 폭염으로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고통 받았고, 이곳의 거주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폭염으로 인한 국내 사망자 수 통계치는 공식적으로 48명이지만,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실제 사망자 수가 세 자리 숫자일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폭염 지옥' 뉴스가 뉴스의 앞머리를 장식하던 날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폭염이 숙지근해지자 기후 관련 뉴스는 돌연 언론에서 종적을 감췄다. 기후전문가, 기후전문기자를 초청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상 호우로 잠깐 재등장했긴 하다.)

그리고 며칠 뒤, 추석 이야기와 함께 차례상 이야기가 나왔다. 물가가 올랐다는 이야기였다. 지각 있는 이라면 의당 이상 기후로 인한 농작물 피해부터 떠올릴 것이다. '폭염 -> 작물 피해 -> 수확량 감소 -> 가격 상승'. 이런 함수관계 말이다. 그러나 3일 전의 일이 곧 고대사가 되어버리는 기괴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탓인지, 추석 제사상의 음식을 준비하며 이번 여름의 폭염을 떠올리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기후와 음식. 또는 기후와 식량. 우리는 대체로 이것을 연결시켜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또는 지구온난화, 지구기후붕괴)로 인한 식량난(식량 가격 상승 또는 식량 부족)을 한 번도 실감나게 겪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올 여름 폭염으로 아주 조금, 식량난의 맛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기후와 식량과 관련하여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건 정반대의 역학관계이기도 하다. '기후변화-> 식량'의 관계가 아니라 '식량 -> 기후변화'의 관계 말이다. 전자는 폭염과 농수산물 물가 상승이라는 현실로 우리에게 체감되지만, 후자는 은폐되어 있기에 '탐사'가 필요하다.

보다 단호히 말해보자. 식량의 사안이 폭염 같은 전지구적 기후 이상 현상을 초래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이 우리에게 확연히, 그리고 소상히 알려져야 한다. 인도의 물리학자이자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는 식량 문제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총량의 40%라고 단언한다. (반다나 시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참조)


40%라고? 그렇게나 많이? 정말 믿을 만한 정보일까?

2009년 로얄 소사이어티(Royal Society)가 출간한 자료에 따르면, 온실가스 총량의 18%는 토지와 산림의 변형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형의 대부분은 농축산지 확대, 오일 생산 등 식량 생산(보다 정확히는 식품기업의 이윤창출 활동)과 관계가 있다. 또한 이 자료는 온실가스 총량의 12~14%가 산업형 농업 또는 화학적 방식의 농업에서 발생된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이 둘을 합치면 30%를 넘어서는데, 여기에 수송·교통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량이 전체의 14%라는 점이 추가로 고려되어야 한다. 식료품 수송으로 인한 배출량이 어마어마할 것이기에, 이를 근거로 추정해보아도 반다나 시바의 40% 론은 아주 설득력 없는 주장은 아님이 분명하다.

다른 자료들도 같은 결론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왔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또 가장 확실한 권위를 보유하고 있는 기관인 IPCC의 5차 보고서 결론도 살펴보자. 이 보고서는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고 제시했는데, 농업·산림·다른 토지 사용으로 인한 배출량이 전체의 24%를 차지한다고 봤다. 그리고 수송·교통으로 인한 배출량이 14%, 전기·열 생산이 25%였다. 전기·열 부문에서 11%가 산업용 전기·열 생산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건, 식료품 글로벌 수송이 수송·교통 부문(14%)에, 식료품 가공 공장, 비료 생산 공장, 농기계 생산 공장에 공급되는 전력이 산업용 전력(11%)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즉, IPCC 5차 보고서는 농업-농식료품산업-식료품 수송을 아우르는 푸드 시스템의 사안을 하나의 사안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따라서 우리는 푸드 시스템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얼마나 되는지 이 보고서로는 한 눈에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려면, 저 24%, 저 14%와 25%의 일부를 합산해야만 한다는 정도는 알 수 있다.

푸드 시스템과 기후변화의 관계에 포커스를 두었던 연구자들은 이 분야 배출량이 전체의 1/3 정도이거나 그 이상이라는 결론을 제출해왔다. 2012년 발표된 한 논문에서 베뮬렌(Sonja J. Vermeulen), 캠벨(Bruce M. Campbell), 인그램(John. S. I. Ingram)은 2008년 기준 푸드 시스템의 배출량이 전체의 (최대로 잡으면) 29%라고 결론 지었는데, 어디까지나 2008년 기준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훨씬 최근인 2017년 5월에 출간된 메리디안 연구소(Meridian Institute)의 연구 결과는 이 수치를 높여 놓았다. 푸드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체의 약 33%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결과들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때, 반다나 시바가 제시한 수치인 40%는 다소 높은 추정수치라고 볼 수는 있어도 얼토당토 않는 수치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온실가스 총량의 최소 1/3은 먹을거리 문제로 배출되고 있다고 추정하는 편이 합리적 판단일 것이다.

식량의 생산 중에서도 육류의 생산이 문제라는 연구도 있어 우리의 시선을 끈다. 네이슨 피알라(Nathan Fiala)의 연구(2009)에 따르면, 육류 생산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체의 14~22%나 차지한다. 그렇다면, 육식만 근절해도 의미 있는 변화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결과를 깊이 받아들여 육식을 끊을 이들은 거의 없겠지만.

어떤 독자는 궁금할 것이다. 음식이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첫째, 식량 생산 현장의 농기계에 공급되는 석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둘째, 화학비료와 유해생물억제제(세칭 '농약')의 생산에 필요한 전기(전력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와 석유가 있다. 셋째, 농지에 살포되는 질소비료는 이산화질소가 되어 공기 중에 배출되는데, 이것이 기후를 교란하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300배에 이른다. 넷째, (우리가 식용으로 키우는) 가축의 방귀나 배설물, 거름 등에서 배출되는 메탄의 양이 어마어마한데, 메탄이 지구 기후 안정 상태를 교란하는 정도는 이산화탄소의 23~25배다. 다섯째, 앞서 말한 식료품 수송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전기가 사용된다.

사실 '여름 날씨 -> 추석 차례상 차림'의 함수관계는 추석 명절이 생긴 뒤로 늘 있던 문제였다. 그러나 기후격변의 시대에 들어선 우리는 '식탁 차림 -> 날씨'의 함수관계까지도 생각해봐야만 한다. 스마트폰에서, 마트에서, 식당에서 먹을거리를 선택할 때 그 선택이 가져올 탄소 발자국을 생각해봐야만 한다는 말이다. (듣그럽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유기농, 지역산, 제철 먹을거리, 육류 소비의 축소가 저탄소의 미래로 우리를 인도하는 식탁 차림 매뉴얼이다.) 리처드 매닝(Richard Manning)의 지적처럼 우리는 식탁에서 사실상 석유를 먹고 있기 때문이고, 어떤 식탁을 차릴지에 관한 선택은 어떤 날씨를 후세대에게 남겨줄지에 관한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행히도 인간이며, 인간은 '선택할 게 많은 동물'이다. 또한 '부끄러움'을 알아 다른 생물종을 제압하며 크게 진보할 수 있었던 동물이기도 하다. 생각건대, 후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식탁 차림을 선택할 때, 오직 그때만이 우리는 조상님들께도 부끄럽지 않은 차례상을 차리게 될 것이다.


우석영 <배려의 식탁, 제주> 공저자 (mendrami@pressian.com)

▶독자가 프레시안을 지킵니다 [프레시안 조합원 가입하기]

[프레시안 페이스북][프레시안 모바일 웹]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