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장수에서 살인사건이 났는데, 시신을 토막 내고 인육(人肉)까지 먹었다니까요."

1994년 9월 16일이었다. 적막이 흐르던 새벽 3시, 서울 서초경찰서에 들이닥친 이선영(가명·당시 27세)씨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이 (서울로) 오고 있어요. 다 죽어요. 저를 유치장에 넣어주세요."

그의 말은 훗날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대한민국 범죄사(史) 가장 엽기적인 기록, 지존파 사건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그날은 추석 연휴 직전이었다.

1994년 9월 21일 지존파 일당 강문섭(사진 왼쪽 세 번째 검은색 반소매 티셔츠), 김현양(하얀색 와이셔츠), 문상록(보라색 와이셔츠)이 전북 장수군 반암면 교동리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추석 당일이던 그 해 9월 20일, 지존파 두목 김기환(26)과 조직원 강동은(21), 강문섭(20), 김현양(22), 문상록(23), 백병옥(20)이 수갑 찬 모습이 공개됐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그러고는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힌다" "스스로 인간 이길 포기했다. 우리는 악마의 대리인"이라고 악을 썼다. 명절을 맞은 국민들은 경악했다.

이들은 모두 5명을 살해했다. 뚜렷한 범행 동기가 없었다. ‘그냥 죽인 것’이었다. 벌초하던 중년 부부, 길 걷던 여성, 그렌저를 탄 연인 등을 내키는 대로 살해했다.

지존파 아지트는 전남 영광군 불갑면 분홍색 단독주택이었다. 조직원 일부는 "담력을 키우겠다"며 피해자 인육을 먹기도 했다. 아지트 지하에는 감금시설과 시신 소각용 화덕이 있었다. 화덕에서 타다 남은 유골이 발견됐다.

당시 고병천(66) 서초경찰서 강력반장은 "당장 복귀하라"는 상황실 메시지를 받았다. 지존파로부터 달아난 이선영은 고 전 반장을 붙들고 "그들이 사람을 죽이고, 토막 내고, 불에 태웠다"고 증언했다. 강력사건으로 잔뼈가 굵은 고 반장도 도저히 믿기가 어려운 내용이었다.

지난 21일 서울 송파구에서 만난 고병천 전 서초경찰서 강력반장.

Q. 이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나?
"토막, 화장(火葬), 인육 같은 소리를 어떤 누가 단박에 믿겠나. (이선영이)마약 중독자인가 싶어서 팔목을 봤다. 멀쩡하더라. 마침 그날 울산에서 중소기업 사장 부부가 납치됐었다. 이씨가 알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 알고 있었다. '지존파'가 그 부부를 납치·살해했다는 것이다. 당시 제보자 이선영은 지존파 조직원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 전화로 계속 연락이 왔다. '어디가', '돌아와'라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때부터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서를 쓰기 시작했다."

검거 작전은 9월 19일 새벽 5시 무렵 개시됐다. 고 반장과 서초서 강력형사 6명은 쇠파이프와 권총으로 무장했다. 지존파가 다이너마이트, 장총 등을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 분홍색 지존파 아지트가 보였다. 고 반장은 현장을 살핀 뒤 형사들에게 "1㎞ 후퇴하라"고 지시했다. 아지트에서 나오는 일당을 하나씩 검거하기로 한 것. 조직원 강동은을 시작으로 문상록, 김현양, 이경숙이 차례로 체포됐다. 이제 아지트에는 강문섭, 박병욱만이 남았다. 형사들은 총기를 발사하면서 급습했다. 공포탄 소리에 놀란 강문섭은 두 손을 위로 올리며 투항했고, 박병욱은 뒷산으로 도주했다. 그도 얼마 못 가 대기하던 전경들에 의해 붙잡혔다.

Q. 조사과정에서 이들의 행동은 비상식적이었다.
"지존파 조직원들은 범행을 후회하거나 뉘우치지 않았다. 김현양은 오히려 웃으면서 '난 인간이 아니야. 그래서 다 잡아 죽이려고… 우리 엄마? 내 손으로 못 죽여서 한이 맺힙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①돈이 많은 자를 증오한다 ②10억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③배신자는 죽인다 ④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는 행동강령까지 만들었다.

시신을 훼손할 때는 삼겹살도 같이 구웠다. 이웃들이 시체 태우는 연기를 의심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이웃들에게 삼겹살을 나눠주기도 했다. 강력형사만 20년째였지만 이런 놈들은 처음이었다. 지존파는 방송 카메라가 돌면 하나같이 흥분했고, 헛소리를 늘어놨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지존파 아지트 내부 사체소각로, 전남 영광군 아지트 외부 전경, 피해자가 타고 있던 그렌저 승용차, 지하 감금실.

Q. 그 당시 여론은 어땠나.
"영광에서 조직원들을 검거한 뒤 서초경찰서로 곧바로 향했다. 서초서에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왔다. 미국 CNN카메라도 그 사이에 있었다. 9월 26일 종합수사결과를 발표했는데, 기자들이 '진짜냐? 진짜 (지존파가)그랬냐'면서 믿지를 못하더라.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잔인함에도 한계가 있는데, 지존파는 그걸 넘어선 것이다. '극악무도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국민들은 당연히 분노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서초서를 찾아왔다."

Q. 왜 지존파인가?
"원래 지존파는 이름은 '마스칸'이었다. 마스칸은 그리스어로 야망을 뜻한다. 조직원들은 범행을 앞두고 지리산에서 합숙하면서 살인계획을 세웠다. 여기서 살인훈련도 했다. 훈련 때 조직원들은 지존(至尊)이라고 적힌 두건을 이마에 둘렀다. 두목인 김기환의 별명이 지존이었다. 이는 김기환이 홍콩영화 '지존무상'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조직명은 여기서 유래했다."

Q. 지존파는 사이코패스 집단인가?
"사이코패스 아니었다. 이들은 대부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어릴 때부터 절대적 빈곤 속에서 살았다. 부모에 대한 원망이 깊었다. 조사하면서 의외의 순간도 있었다. 중국집에서 '잡탕밥'을 시켜줬더니 눈이 휘둥그래졌다. 생전 처음 먹어본 음식이라는 것이다. 음식을 싹 비우고 '너무나도 맛있다',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나' 이런 말을 했다."

Q. 결정적 제보자 이선영이 탈출한 과정이 궁금하다.
"김현양은 이선영을 좋아했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않는다'는 행동강령에 위배되는 짓이었다. 이 문제로 또 다른 조직원 문상록이 소주병으로 김현양의 머리를 내리쳤다. 김현양이 병원에 갔을 때 이선영은 탈출했다. 영광→대전→서울로 세 차례 택시를 갈아탔고 곧장 경찰서에 온 것이다."

1994년 9월 21일 전북 장수군 반암면 교동리에서 열린 지존파 일당 현장검증에 수백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Q.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나.
"지존파 일당 6명은 법원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 받았다. 1995년 11월 2일부터 두목 김기환을 포함해 조직원 6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다. 재판 과정에서 강동은, 김현양, 문상록 등은 고 반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인간적으로 대해준 것 감사합니다" "우리 같은 죄인이 나오지 않도록 힘 써 주세요" 등의 내용이었다. 사형 직전 지존파 일당은 천주교 영세를 받았다. 조직원 문상록의 경우, 가족이 '부끄럽다'며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내 처(妻)가 교도소에서 시신을 인수받은 뒤 천주교 공동묘지에 묻었다. "

지존파 일당 강동은이 사형을 앞두고 고 전 반장에게 보낸 편지.

Q. 지존파 범죄는 왜 그렇게 잔인했나.
"지존파 일당은 태어나서 잡탕밥 한번 못 먹어본 '애들'이었다. 서울 강남에서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범인들은 절대적으로 빈곤했으며 부모를 원망했다. 이들 가슴 속에 세상에 대한 증오감이 뿌리를 내린 뒤, 주체하지 못 할 정도로 커진 것 아닐까. 잔학무도함에는 기성세대 과오(過誤)도 있다고 본다. 물론 지존파는 용서받지 못 할 죄를 지었다. 모두가 죗값을 받았다."

고 전 반장은 경력의 대부분을 강력 분야에서 보내다 2009년 퇴임했다. 퇴임 이후 광운대 범죄학과에 입학, ‘지존파 사례를 중심으로 하는 범죄단체 행동패턴’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