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누가 집값 올려달랬냐" 잔뜩 화난 여의도 주민들

이상빈 기자 2018. 9. 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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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집값 올려달랬나요. 낡은 집들 재건축 허가나 빨리 내주지. 마스터플랜 발표하고 집값 2~3억 뛰면 뭐합니까. 팔지도 못하는 집인데.” (여의도 시범아파트 주민 A씨)

박원순 서울시장의 ‘여의도·용산 통합개발’ 발언 이후 2개월이 지났다. 박 시장의 발언 이후 공교롭게도 서울 집값이 뛰기 시작하자 국토교통부가 반발하고 나섰다. 박 시장은 7주만에 전격적으로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투기꾼이 아닌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나서 주택시장을 들쑤셔 놓은 셈이 됐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 입구. /이상빈 기자


이미 각종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올해 말 미군 기지 이전과 함께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용산은 박 시장과 국토부의 갈등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서울시의 발언으로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던 여의도는 주택 시장이 요동치면서 정부와 서울시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땅집고가 여의도 주택 시장 내부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취재했다.

■“오락가락하는 정부ㆍ서울시에 혼란스러워”

여의도 공작아파트 주민 B씨는 “서울시와 국토부가 여의도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말을 뒤집는 바람에 주민들이 화가 잔뜩 났다”며 “통합개발 해달라고 주민들이 매달린 것도 아닌데 시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해 놓고 다시 안한다고 하니까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래픽=조선DB


지난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통합개발 계획 발표 이후 여의도 주민 사이에선 여의도가 초고층 주거 단지를 갖춘 국제금융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집값도 뛰기 시작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7월 9일 104.5였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9월 10일 현재 107.1로 쉬지 않고 올랐다. 여의도가 속한 영등포는 104.7에서 108.2로 용산구는 107.5에서 110.7로 올랐다. 직전 5~7월 서울 평균이 0.5 오른 것과 비교하면 영등포(1.0)와 용산(0.9)은 더 크게 올랐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여의도 일대 아파트들은 지난 7월 이후 호가를 2억~4억원씩 올리고 있고, 여의도에서 지난 7월 이후 실거래가 부쩍 늘어난 대교아파트의 경우 연초에 비해 최대 2억원 가량 실거래가가 차이가 난다.

올해 1~9월 서울 평균과 용산구, 영등포구 아파트 가격지수 추이. /한국감정원


■ “통합개발 요구하지도 않았는데…왜 가던 길 세우나”

하지만 박 시장 발언을 모든 여의도 주민들이 반긴 것은 아니다. 노후 재건축 단지마다 사정이 달랐던 탓이다. 여의도 Y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통합 개발을 환영하는 주민도 많지만 이번 발표로 잘 진행되던 재건축 단지에서 사업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시장이 밝힌 여의도 통합개발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여의도 도심 공간을 다시 짜고 금융 기능을 극대화하고 단지별로 진행되던 재건축 사업을 통합해 새로운 계획을 짜게 될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현재 여의도는 단지별로 재건축 사업 속도가 제각각이다. 상대적으로 사업 속도가 빠른 단지들은 통합 재개발로 인해 속도가 늦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D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통합 개발을 하면 몇 개 단지를 묶어 재건축하도록 할텐데 단지 간 지분 문제나 학교 이전 등의 문제로 다시 시끄러울 것”이라며 “재건축 사업 속도가 빨랐던 단지들은 다시 원점에서 검토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갑자기 맥이 빠지게 됐다”고 했다.

/표=조선DB


여의도는 신탁방식으로 재건축을 진행하던 아파트 단지가 많았다. 신탁방식 재건축은 조합이 단독이 아니라 금융회사인 부동산신탁사와 함께 재건축을 진행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주민들이 별도 비용까지 부담하며 서둘렀다.

총 1790가구로 여의도에서 가장 큰 시범아파트는 재건축 속도가 가장 빨랐지만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개발기본계획 변경안 보류 결정을 받았다. 이제형 시범아파트 정비사업위원회 위원장은 “47년이나 된 아파트여서 안전사고 위험도 있고, 주변에 싱크홀도 나올만큼 재건축 사업이 시급하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시는 주민 의견을 듣지 않고 불쑥 통합개발안을 발표했다가 보류하겠다고 말을 뒤집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주민들이 더 불안해 하는 이유는 보류된 절차가 언제 재개될지 모른다는 것. 신탁업계 관계자는 “7월 발표 당시만 해도 8월 말 발표 이야기가 나왔는데 보류를 결정하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까지 미뤄진다’고 하니 미지수”라며 “공무원들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해 답답하다”고 했다.

통합개발 발표로 집값이 올랐다며 찬성하는 여의도 주민도 많다. Y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여의도 아파트들은 통합 개발 없어도 재건축이 되면 강남만큼 가격이 오를 걸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제일 먼저 진행되던 곳이 갑자기 막히니 다른 단지들도 불안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여의도 일대 아파트는 재건축 사업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신탁방식을 많이 이용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여의도 수정, 대교, 진주, 시범 아파트. /이상빈 기자


■“가격 올랐다지만 거래 많지 않아”

여의도 집값은 서울시 발표 이후 올랐지만 실제 거래는 많지 않다. 일부 단지는 매매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사업시행자 지정이 된 아파트는 장기보유 요건(10년 보유, 5년 거주)을 충족한 조합원 매물만 거래가 가능해진다. 시범아파트는 시행자가 지정됐고, 광장ㆍ공작아파트 역시 시행자 지정을 앞두고 있다.

여의도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집값이 올랐다는 것도 일부 호가를 올린 매물이 거래돼서 그런 것”이라며 “매수자는 많은데 매도자는 거의 없어 실제 매물이 많지도 않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엄중한 부동산 상황을 고려해 여의도·용산 개발을 보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DB


이제형 시범아파트 정비사업위원회 위원장은 “여의도 일대 아파트는 거래 자체가 쉽지 않아 투기 세력에 의한 집값 상승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면서 “낡은 집을 빨리 고쳐살고 싶은데 정치 논리보다 원칙대로 재건축을 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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