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안희정 '징역 6년' 이윤택..다섯 가지가 달랐다
한 사람은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작가 겸 연출가로 높은 명성과 권위를 누리던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은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거명되고 있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단장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두 사람을 검찰과 법원으로 데려갔다.
피고인들은 각 예술계와 정치계에서 높고 넓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피해자는 그 영향력을 직접 받는 사람들이었다. 이 전 감독 사건에서는 "연희단거리패의 단원들이거나 연극계에 오랜 기간 종사한 사람들"이, 안 전 지사 사건에서는 "도지사인 안 전 지사가 임면 등 권한을 갖고 있는 별정직 공무원"이 피해자였다.
두 사람의 법정에서의 주장도 비슷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신체 접촉 자체는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애정관계에 의한 것(안 전 지사 주장)"이라서, 또는 "연기지도의 일환(이 전 감독 주장)"이라서 무죄라는 주장이었다. 안 전 지사는 최후진술에서 "사회·도덕적 책임은 피하지 않겠지만 과연 범죄인지는 판사님께서 잘 판단해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고, 이 전 감독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연기지도를 법의 잣대로 논단하는 건 새로운 장르의 예술의 씨를 자르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한 달여 간격을 두고 각기 다른 법원에서 내린 두 사람에 대한 1심 선고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전 단장은 징역 6년을(서울중앙지법 9월 19일 선고), 안 전 지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서울서부지법 8월 14일 선고).
비슷한 듯 다른 두 사건…'무죄'와 '실형' 갈려
특히 징역형과 벌금형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업무상위력간음·강제추행과 달리 유사강간치상은 벌금형이 없고 징역형의 상한이 아닌 하한이 설정돼 있는 중죄다.
■ 관련 형법 조문
「 제297조의2(유사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제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01조(강간 등 상해·치상) 제297조, 제297조의2 및 제298조부터 제300조까지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제305조의2(상습범) 상습으로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부터 제300조까지, 제302조, 제303조 또는 제305조의 죄를 범한 자는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
」
기소 전 구속·불구속 여부도 선고 결과를 점쳐볼 수 있는 표식이다. 안 전 지사는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전 단장은 구속된 상태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서부지법은 4월 5일 안 전 지사에 대해 두 번째로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범죄 혐의에 대해 다퉈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한 마디로 '죄가 되는지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은 3월 23일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피의자의 지위·피해자의 수·추행의 정도와 방법 및 기간 등에 비추어 범죄가 중대하다"며 이 전 감독을 구속했다.
안 전 지사 재판에서는 '위력의 행사'가, 이 전 단장 재판에서는 '상습성'이 쟁점이었다.
안 전 지사 재판부(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는 "기본적으로 안 전 지사에게 위력은 존재했으나 개별 상황에서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위력에 의한 간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이 전 단장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0부)는 "배우들을 상대로 안마를 시키거나 연기지도를 하면서 오랫동안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성추행 범행을 자행하여 왔다"며 강제추행죄보다 형량이 1.5배인 상습강제추행죄로 인정했다.
안 전 지사의 무죄 선고에는 "피해자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고 증언과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보일 수 있는 예측불가의 다양한 반응을 감안 하더라도 피해자의 증언․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거둘 수 없다"고 봤다.
반면 이 전 단장 재판부는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세부적 내용까지 일관되고 구체적이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게 봤다. "피해자들은 미투 운동에 용기를 얻어 자신들이 당한 피해를 늦게나마 밝힌 것으로 보일 뿐 특별히 의심할 만한 사정은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가 피해자를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느냐는 사건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안 전 지사 재판부는 피해자를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 아니고, 성적 주체성을 갖추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지하면서 자기 책임 아래 이를 행사할 수 있는 충분하고 성숙한 사람"이며 "안 전 지사가 자신을 흠모하는 지지자의 심리상태에 편승했다 하더라도 이는 (피해자와) 상호적인 것"이라고 봤다. 그 결과 일부 사건은 "미투 운동을 언급하거나 문을 열고 나가는 등으로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해 피할 수 있었다고 봤다.
반면 이 전 단장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별다른 사유 없이 연극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 전 단장의 지시에 수긍했던 사람들로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봤다.
그러면 이 전 단장은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해 권력을 남용한 사람"이 된다. 재판부는 "(성적 접촉) 대부분 이 전 단장이 일방적으로 한 것인데 (그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움직이지 않은 것이 곧 동의 한걸로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유형력을 행사해 수치심을 느끼게 했는데 피해자가 이를 참고 계속 안마를 했다고 해서 무죄로 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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