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희토류, 중국은 원유 .. 막판에 무역전쟁 빼준 까닭

박현영 입력 2018. 9. 20. 00:08 수정 2018. 9. 2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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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리스트로 본 아킬레스건
미국, 희토류 수입 78%가 중국산
머리카락·영유아 카시트도 제외
중국은 미국산 원유 수입량 많아
8월 관세 부과 때 슬그머니 삭제

미국 정부가 오는 24일부터 추가 관세를 부과할 2000억 달러(약 225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 목록에서 희토류를 제외했다. 희토류는 지난 7월 미 무역대표부(USTR)가 공개한 관세 부과 품목 초안에 포함됐으나 지난 17일 발표한 최종 목록에서는 빠졌다.

희토류는 스마트폰부터 전기자동차까지, 첨단 기술 제품에 필수 원료로 쓰이는 금속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희토류를 삭제한 결정은 미국이 중국산 희토류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보여준다”고 전했다.

USTR이 발표한 관세 부과 품목은 당초 6031개에서 5745개로 축소됐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었으나 검토 결과 오히려 미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품목 300개를 삭제했다.

대중국 무역에서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항할 관세 무기를 모두 소진한 중국이 앞으로 이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지 관심이 쏠린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은 희토류가 애초에 관세 부과 명단에 포함된 게 의외라고 평가한다. 미국 산업의 중국산 희토류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희토류는 열과 전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전기·전자·광학 분야에서 널리 쓰인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해 수입한 희토류 가운데 중국산이 78%를 차지했다.

에스토니아(6%), 일본(4%), 프랑스(4%)로부터의 수입은 미미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이다. 세계 소비의 80%를 공급하고, 세계 매장량의 37%를 차지한다.

디지털 영사기에 사용하는 고압 램프를 만드는 미국 기업 라이팅 테크놀로지 인터내셔널은 지난달 USTR에 ‘희토류를 제외해 달라’고 청원했다. 회사는 “희토류를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희토류 등 핵심 원료에 관세를 부과하면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서 도태돼 결국 회사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USTR은 제강에 사용하는 천연 흑연, 합금을 만드는 데 쓰는 안티몬, 원유·가스 시추에 필수인 바라이트 같은 금속도 제외했다. 품목별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0~70% 안팎이다.

미국이 막판에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 품목에는 사람 머리카락, 영·유아용 카시트, 이부프로펜(소염진통제 성분명), 100년이 넘은 골동품, 일부 화학 약품 등이 포함됐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중국이 세계 최대 수출국이거나 해당 제품을 공급하는 몇 안 되는 국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중국은 인도 다음으로 사람 머리카락을 미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머리카락은 가발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부프로펜은 미국 가정상비약인 애드빌의 핵심 원료다. 애플도 몇몇 제품이 관세 부과 목록에서 빠지면서 한숨 돌렸다. 스마트 워치인 애플워치, 무선 이어폰 에어팟 등이 속한 카테고리가 최종 목록에서 빠졌다.

전략적으로 관세 부과 품목을 조정한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중국은 지난 8월 160억 달러 규모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때 막판에 미국산 원유를 제외했다.

당초 미국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실행 단계에서 원유를 뺐다. 그만큼 미국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뜻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중국이 희토류를 미·중 무역전쟁에서 전략 무기로 활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딜런 켈리 자원 애널리스트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앞으로 중국이 희토류를 협상 카드나 전략적 지렛대로 사용해 미국에 보복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언 카스티요 분석가는 FT 인터뷰에서 “미국이 사주지 않으면 중국은 공급과잉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며 보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중국은 2010년 일본과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자 대일 희토류 수출을 통제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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