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텅텅 빈 일본 산골 마을, 예술이 찾아온 후 생기 되찾았다읽음

도카마치·쓰난 | 글·사진 김진우 특파원

일본 에치고 쓰마리 지역 ‘대지의 예술제’ 18년

<b>나무가 아니라 작품입니다</b> 일본 니가타현 남부 에치고 쓰마리 지역에서 열린 ‘대지의 예술제’에서 사람들이 대만 작가 린순룽의 작품 ‘국경을 넘어-인연’을 보고 있다. 작가는 짚으로 새끼줄을 꼬아 만든 거대한 작품을 나무 사이에 매달았다.

나무가 아니라 작품입니다 일본 니가타현 남부 에치고 쓰마리 지역에서 열린 ‘대지의 예술제’에서 사람들이 대만 작가 린순룽의 작품 ‘국경을 넘어-인연’을 보고 있다. 작가는 짚으로 새끼줄을 꼬아 만든 거대한 작품을 나무 사이에 매달았다.

일본 니가타(新潟)현 남부 도카마치(十日町)시와 쓰난(津南)정을 합쳐 일컫는 에치고 쓰마리(越後妻有)는 고령·과소(過疏)화가 진행되는 전형적인 중산간 지대다. 도쿄 중심부인 23구 면적(622㎢)의 1.2배인 760㎢에 인구는 100분의 1도 안되는 6만3000명. 고도성장과 버블 시기 인재·자원의 공급지로서 발전에 뒤처지고 인구가 줄어들었다. 아름다웠던 계단식 논도 황폐해졌고, 빈집이나 폐교가 속출했다.

이런 흐름을 돌리기 위해 20년 전 이 지역이 선택한 것이 당시로선 드물던 ‘현대예술’이었다. 2000년부터 3년에 한번씩 열리는 ‘대지의 예술제’가 그 중심이다. ‘에치고 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로도 불리는 이 행사가 지난 7월29일 개막돼 17일 폐막했다. 올해로 7회째다.

늙고 텅텅 빈 일본 산골 마을, 예술이 찾아온 후 생기 되찾았다

■ 예술·자연·사람의 ‘지역 만들기’

지난 14~15일 찾은 에치고 쓰마리 지역은 사람과 예술,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활기가 넘쳤다. 안내소는 산재한 작품들을 둘러보는 ‘패스포트’를 사거나 교통편을 묻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숙소가 거의 찬 탓에 발을 동동 구르는 외국인도 있었다. 인적 드문 산골짜기나 숲, 들판에 설치된 작품 앞에도 노란색 패스포트를 든 이들이 줄을 이었다.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주민 네쓰 마사루(根津勝·65)는 “예술제가 사람들과의 접점을 늘렸고, 지역에 변화를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대지의 예술제’는 예술을 통한 ‘지역 만들기’의 선진 사례다. 2000년 처음 시작했을 때 16만여명이 찾았지만 6회째인 2015년에는 50만명을 넘었다. 약 50억엔(약 502억원)의 경제 효과도 가져왔다.

예술제는 ‘인간은 자연에 내포(內包)된다’를 기본이념으로 삼았다. 이 지역은 농업을 통해 ‘대지’와 관련을 맺어온 ‘사토야마(里山·마을 숲)’ 생활이 지금도 풍부하게 남아 있다. 예술을 매개로 지역의 다양한 가치를 재발견·재구축해 지역재생의 길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원래 ‘예술 페스티벌’로 구상된 건 아니었다. 공공미술의 대가로 예술제 종합디렉터인 기타가와 후라무가 이곳에서 목도한 것은 체념과 상실감이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토지를 일궈온 이들이 고령화, 젊은이들의 유출, 효율성 추구 등으로 인해 생업에 대한 존엄과 자부심을 잃어갔던 것이다. 기타가와는 “집들이 한 채씩 사라져가는 촌락 안에서 일시적이라도 좋으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즐거운 추억이 생겼으면 하는 게 예술제의 초심이었다”고 저서 <미술은 지역을 연다>에서 밝히고 있다.

늙고 텅텅 빈 일본 산골 마을, 예술이 찾아온 후 생기 되찾았다

■ 50만명 찾는 예술 마을로

인구 6만3000명 소도시
고령화·인구 유출 상실감
“시골에 예술 보러 오겠나”
예술제 출범 전 냉대·불신

출범은 순탄치 않았다. ‘예술은 있는 자들의 도락(道樂)’이라는 인식이 강해 지역 주민부터 냉대했다. 와타나베 마사노리(渡邊正範) 도카마치시 산업관광부장은 “지역 의회와 신문, 지역 예술인들까지 반대했다”면서 “ ‘누가 시골에 예술을 보러 오냐’ ‘환경만 망친다’고들 했다”고 전했다.

예술가들 설명회만 2000회
작품에 마을 담아내며 신뢰
2015년 방문객 50만명 훌쩍
3년 주기로 올해 7회 마쳐

주민들의 마음을 연 건 열정이었다. 지역설명회만 2000회를 열었다. 기타가와의 요청으로 젊은 예술가·대학생들로 구성된 ‘고헤비타이’가 마을을 돌면서 주민들과 공감을 넓혔다. 말상대가 없던 할아버지·할머니들부터 호응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과 2011년 지역을 강타한 지진이 결속력을 높였다. 고헤비타이가 무너진 집이나 폐교를 재창조하는 작업을 본 주민들이 함께 참가했고, 2011년 3월12일 지진 때는 주민들부터 예술제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지역을 단순한 ‘대상’으로, 주민들을 ‘구경꾼’으로 삼지 않은 게 변화를 일궈냈다. 기타가와는 예술가들이 마을 속으로 들어가 그 땅과 사람들을 담은 작품을 만들도록 부탁했다. 작가들은 전시 1~2년 전부터 지역 주민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대만 작가 린순룽(林舜龍)은 아나야마(穴山) 마을 숲에 짚으로 만든 거대한 작품 ‘국경을 넘어-인연’을 설치했다. 린순룽은 “거대한 자궁 안에 태아가 잉태되는 모습을 담으려 했다”면서 “한 달 넘게 대만 대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이 볏짚 하나하나를 꼬아 완성했다”고 말했다. 주요 전시장인 ‘키나레’에 ‘퍼블리시-패블릭’을 설치한 UUG는 200명 정도가 사는 가이자카(貝坂) 마을 주민들의 사진과 글을 한 변이 2.7m 정도인 ‘입체 매거진’에 담았다. UUG의 니시오 게이고(西尾圭悟)는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 마을 자체에 가치가 있다”면서 “우리는 그것을 북돋웠을 뿐”이라고 했다.

예술은 지역을 재발견하는 역할도 했다. 카메룬 출신의 프랑스 작가 바르텔레미 토구오는 나카테(中手) 마을의 산골짜기에 다양한 의자를 배치한 ‘웰컴(Welcome)’이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세계 각지에서 이민과 이동에 지친 이들의 휴식을 기원하는 이 작품은 마을에서 50년간 잊혀졌던 폭포를 재발견했다.

‘대지의 예술제’에 출품된 우쓰미 아키코의 ‘많은 잃어버린 창을 위해’(위)와 레안드로 에를리히의 ‘Palimpsest-하늘의 연못’(아래).

‘대지의 예술제’에 출품된 우쓰미 아키코의 ‘많은 잃어버린 창을 위해’(위)와 레안드로 에를리히의 ‘Palimpsest-하늘의 연못’(아래).

■ 교류가 되살린 ‘자부심’

세계 각지의 작가들과 지역에 체류하면서 주민들과 교류한 결과는 이제 지역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지역 전체에 상설 설치된 작품은 170점에 이른다. 올해도 350개가 넘는 작품이 마을과 논, 숲, 들판, 빈집, 폐교, 폐창고, 폐공장 등을 무대로 지역 예술을 꽃피우고 있다. 마을 사람들도 자원봉사 활동뿐 아니라 작품의 설치, 운영, 보존에 적극 관여하고 있다. 이곳 명산품인 쌀 ‘고시히카리’를 비롯해 지역 농산물로 식당을 열거나 관광객이 쉬어갈 수 있는 휴게소를 내놓고 있다. 참가 마을도 1회 때 28곳에서 2015년 110곳까지 늘었다.

이런 노력들이 고령·과소화의 흐름을 돌려놓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속도는 늦췄다는 평가다. 사회인구 증감을 나타내는 전입·전출 인구 폭은 20년 전에 비해 줄었다. 도시 젊은이들이 지역을 체험하는 ‘지역부흥협력대’를 졸업한 이후 이곳에 정착하는 비율이 70%에 이른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을 다시 불러낸 게 큰 성과다. 와타나베 부장은 “이전까진 이런 눈이 많은 지역에 어쩔 수 없이 살거나 나가버렸지만, 적어도 지금은 ‘우리 지역이 그렇게 나쁘지 않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면서 “아직은 작은 점들에 불과하지만 그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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