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양칠성, 인도네시아 교과서에 실린 한국인 영웅 [TV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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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에서 인도네시아 교과서에 실린 한국인 양칠성이 주목받았다.
여동생은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독립영웅 묘지에 묻혀 있는 양칠성의 무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양칠성은 현지인이 아님에도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을 도왔고 수년간 많은 공을 세웠다.
그 후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이뤘고 양칠성은 부하들이 진급하면서 독립 영웅으로 국립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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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김현민 기자] '서프라이즈'에서 인도네시아 교과서에 실린 한국인 양칠성이 주목받았다.
16일 오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에서는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 동참한 조선인의 사연이 소개됐다.
1942년 전북 완주에서 살던 양칠성은 일본군에 강제 징용돼 태평양 전쟁에 가게 됐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양칠성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 뒤 징용된 이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양칠성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어머니는 끝내 아들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978년 여동생은 양칠성을 인도네시아에서 찾았다는 연락을 받게 됐다. 여동생은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독립영웅 묘지에 묻혀 있는 양칠성의 무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양칠성은 참전 당시 일본이 점령한 인도네시아에서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다. 포로들과 가깝게 지네던 그는 한 포로의 여동생과 혼인을 맺었다. 그러던 중 1945년 전쟁이 끝났지만 전범으로 몰릴 수 있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현지에서 숨어지내야 했다.
이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됐다. 양칠성은 현지인이 아님에도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을 도왔고 수년간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던 중 그는 1949년 네덜란드 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했다.
그 후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이뤘고 양칠성은 부하들이 진급하면서 독립 영웅으로 국립묘지에 묻혔다. 당시 양칠성의 묘비에는 야마다와 시치세이라는 이름이 표기돼 있다.
그의 본명이 양칠성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한 일본인 교수에 의해 밝혀졌고 여러 한국 단체들의 노력으로 양칠성이라는 이름이 세겨진 새 묘비가 세워지게 됐다. 그의 사연은 인도네시아 학교 교과서에 '우리나라 독립을 도와준 고마운 한국인'이라는 내용으로 실려있다.
김현민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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