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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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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자

2018.09.15 13:00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보다 ‘안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큰 문제가 생기곤 한다. 잘못된 믿음을 퍼트리거나 잘못된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우들 말이다. 지식 수준이 부족할수록 자신의 지식 수준을 과대평가하는 현상 또한 나타난다 (더닝-크루거 효과). 예컨데 정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수록 정치에 대한 자신의 지식 수준을 과대평가한다는 연구가 있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싶지만, 자신의 모름을 눈치챌 줄 알고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이 귀한 현실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지적 겸손 (intellectual humility)’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생각과 믿음이 틀릴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는 태도를 말한다. 자신의 믿음의 근거가 되는 사실들이 변하거나 틀렸을 가능성, 또 근거가 잘못되지 않았더라도 그에 대한 본인의 ‘해석’이 틀렸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할 줄 아는 사람들의 특징에는 무엇이 있을까?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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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거 중심


우선 지적 겸손 정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근거’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주장이 있다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탄탄한지, 근거가 빈약하거나 논리 비약이 심한 것은 아닌지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마주했을 때에도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보다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근거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일례로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읽게 했을 때 지적 겸손 정도가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기존 생각에 일치하는 글보다 일치하지 ‘않는’ 글을 더 오래 꼼꼼히 읽는 경향을 보였다(Deffler, Leary, & Hoyle, 2016). 

 

2.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눈


이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능력 또한 상대적으로 뛰어나다. 실제 존재하는 사건과 만들어진 가짜 사건들을 나열했을 때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인지 더 잘 파악하는 경향을 보였다(Deffler et al., 2016). 또한 지적 겸손 정도가 낮은 사람에 비해 자신의 답이 틀렸을 때, 즉 잘 모르는 문제를 마주했을 때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정도가 덜했다. 

 

3. 지적 호기심과 깊은 사고력


지적 겸손 정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배움에 대한 욕구가 더 큰 편이기도 하다.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에 큰 흥미를 보이며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배워서 모름을 해소하려는 욕구도 더 큰 편이다. 또한 대체로 생각하길 즐기는 편이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슈에 대해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는 걸 즐기고 높은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를 푸는 것 또한 좋아한다(Leary et al., 2017). ‘쉽고 확실한 답’보다는 어렵더라도 본질에 가까운 복잡한 설명을 선호할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4. 몰라도 괜찮아


틀렸을 때 과하게 충격을 받거나 화를 내는 일이 비교적 적다. 애초에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항시 인지하므로 틀렸다고 해서 방어적으로 굴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부딫히는 갈등 상황에서 다른 주장에도 비교적 열린 태도를 유지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편이다. 그 결과 지적 겸손 정도가 높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직에서 좋은 ‘리더’가 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한다(McElroy et al., 2014).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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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지가 드러나는 것을 비교적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에도 열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며, 상대방을 잘 존중하는 특성 때문에 지적 겸손 정도가 높은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토론을 감정 싸움으로 만드는 일이 적고 더 나은 합의를 도출할 것으로 이야기 된다. 


나 역시 최근에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회의에서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속이 상했다. 나의 무지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만 같았고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분노와 부끄러움, 자학에 소모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데 내가 뭘 모르는 게 그렇게 큰 일인가 질문해보았다. ‘내가 뭘 좀 모르는 게 그렇게 큰 일인가? 사실 당연한 게 아닐까? 내가 뭐라고 나는 나한테 완벽을 요구하는가 너무 오만한 게 아닌가?’ 이런 질문을 하다보니 어느새 내가 종종 삽질하는 건 사실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니 천재가 아니라니 흑흑’ 하는 꼴인 거 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든지 모르는 것 투성이일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진정이 되고 비로소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인정할 것. 괜히 아는 척 하다가 나중에 크게 망하지 말 것. 모르는 게 있으면 주변에 묻기. 도움을 청하기. 회의 준비는 미리미리 하고 내용을 미리 컨펌 받을 것 등. 


내가 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로 가득찬 머리 속을 비우고 진정한 배움과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닐까?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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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fler, S., Leary, M. R., & Hoyle, R. H. (2016). Knowing what you know: Intellectual humility and judgments of recognition memory.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96, 255-259.
Leary, M. R., Diebels, K. J., Davisson, E. K., Jongman-Sereno, K. P., Isherwood, J. C., Raimi, K. T., Deffler, S. A., &  Hoyle, R. H. (2017). Cognitive and interpersonal features of intellectual humility.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3, 793-813.
McElroy, S. E., Rice, K. G., Davis, D. E., Hook, J. N., Hill, P. C., Worthington, E, L., Jr., & Van Tongeren, D. R. (2014). Intellectual humility: Scale development and theoretical elaborations in the context of religious leadership. Journal of Psychology and Theology, 42, 19-30. 


 

 

※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등,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현재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self-compassion과 겸손humility, 마음 챙김mindfulness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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