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주홍글씨’에 맞선 그녀, 새 삶을 찾아 나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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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제인/개브리얼 제빈 지음·엄일녀 옮김/400쪽·루페·1만4800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성 추문에 휩싸였던 여성 르윈스키를 기억하는지? 이 소설은 바다 건너 외국에서 발생했던 무수한 성 스캔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국내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대중과 미디어, 반대자의 가십거리로 소비된 한 여성의 일상과 그의 인생을 진지하게 공감해 본 적이 있는지도 반문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한 번의 불륜사건과 관련된 혹은 그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들이다. 정치인을 꿈꾸던 20대 대학생 아비바는 지역 하원의원 에런 레빈의 선거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그와 불륜관계가 된다.

원작의 제목은 ‘영 제인 영(Young Jane Young)’. 의역하면, ‘어린 시절의 제인 영’ 혹은 ‘어렸던 제인 영’이다. 제인은 불륜 사건이 있은 지 10년 뒤인 현재 아비바가 개명한 이름이다. 각 챕터는 아비바와 제인, 어머니 레이첼, 딸 루비, 하원의원의 아내 엠베스 등 여러 여성의 시점에서 서술되도록 구성돼 있다. 덕분에 사랑과 결혼, 모녀관계, 직장, 사회생활 등 동시대를 사는 여성의 삶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결코 ‘아비바는 잘못한 게 없다!’고 두둔하지 않는다. 이야기 속 여성들은 스캔들에 대해 떠들어대는 제3자의 손가락질을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맞아 낸다. 다만 아비바와 제인에 대한 도덕적인 혹은 동정적인 판단은 미끄러지고 빗나가도록 절묘한 결말과 반전을 만들어 둔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여성들의 선택과 새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당당함’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과거의 ‘주홍 글씨’를 둘러싼 네 여자의 이야기는 특유의 유쾌함을 줄곧 유지하며 끝내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비운의 주인공이란 탈을 쓰지 않는다. 얼굴도 안 보고 살아가는, 서로에 대한 실망과 원망만 남은 이 여성들에게서 약간의 연대감도 엿보인다. 가족과 전통, 도덕성을 중시하는 유대계 사회에서 발생한 일인데도 말이다. 결국 미국이어서일까? 한국이라면 어떻게 흘러갔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비바 제인#개브리얼 제빈#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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