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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여성 인턴 스캔들…결국은 '꽃뱀' 낙인

송고시간2018-09-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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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 '비바, 제인' 번역 출간

비바, 제인
비바, 제인

[문학동네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대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여성이 유력 국회의원의 선거캠프에 인턴으로 들어간다. 철없는 이 여성은 유부남인 이 중년 의원과 사랑에 빠진다. 관계를 끊지 못하고 이어가던 두 사람은 결국 언론에 들통난다. 그런데 화살은 온통 젊은 여성에게만 쏟아진다.

미국 작가 개브리얼 제빈의 장편소설 '비바, 제인'(출판사 문학동네·엄일녀 옮김). 최근 번역 출간된 이 소설은 한국에서 여성들을 공격하는 데 자주 쓰이는 '꽃뱀' 프레임과 같은 양상을 보여준다.

세상의 잣대는 여성의 품행을 문제 삼아 낙인찍기에 바쁘고, 대중의 관음증과 인터넷은 그녀를 영원히 놓아주지 않는다.

정치 분야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20대 여성 아비바 그로스먼은 마이애미 지역 하원의원 에런 레빈의 인턴이 되어 일하던 중 레빈과 불륜 관계가 된다. 우연한 사고로 이 관계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무너져버린다. '더러운 창녀'라는 욕을 먹고, 기자회견에서는 그녀만이 죄인이 된다. 반면, 하원의원 레빈은 재선에 성공해 정치 인생을 그대로 이어간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단 한시도 그 여자의 직속 상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 가족, 특히 아내와 아이들이 입은 상처에 대해서는 무척 미안합니다만, 위법한 일은 없었다는 점을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107쪽)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된 아비바는 집에만 틀어박혀 우울증을 앓다 어느 날 나가 종적을 감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세상의 시선은 이렇다.

"그 여자애는 하원의원이 유부남이라는 걸 알면서도 유혹했죠. 내 보기에 그 여자앤 권력과 스포트라이트를 향해 달려든 거예요. 아니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행실이 단정치 못하고 몸매는 좀 많이 풍만하지만 얼굴이 예쁘장한 그런 여자들 있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나 되는 줄 알고 레빈 같은 남자를 꾀려고 했던 거죠. 나는 그런 사람들한테는 영 동정심이 안 생겨요. 아니 근데 그 여자애 성이 뭐였더라?… 진짜 수치였어요. 레빈은 입지가 탄탄한 하원의원이었거든요. 그 여자애만 아니었다면 레빈은 첫 번째 유대계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는데." (15쪽)

아비바의 엄마 레이철은 딸의 사건 이후 남편과 이혼한 뒤 한 남성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 교수로 일한다는 남자조차 이런 식으로 철저히 남성 입장에서 상대 여성을 깎아내리고 낙인찍는다. 레이철은 이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고, 얼마 뒤 다른 장소에서 이 남자로부터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받자 이렇게 대꾸한다.

"아비바가 내 딸이 아니었다면요? 누군가의 딸자식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하나요? 레빈은 성인 남자이자 선출직 공무원이고 내 딸은 사랑에 빠진 철부지였는데, 레빈은 결국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내 딸만 두고두고 회자되는군. 뭐야, 그리고 십오 년이 지났는데, 어째서 그애가 또다른 꼰대의 농담거리가 돼야 하는 거지?" (100쪽)

이 소설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다섯 여성의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를 펼쳐가면서 자신에게 몰아닥친 상황에 좌절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여성의 선택들을 보여준다. 또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여자는 어떤 피해를 보는지, 세상은 그녀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후폭풍의 끝은 어디이며, 결국 성 추문에 휩쓸린 여자에게 새로운 인생이 가능하기는 한지 생각해보게 한다.

책 편집자는 "미국 작가의 작품인데도 그대로 우리의 이야기로 느껴진다는 것은 미소지니(여혐)와 슬럿셰이밍(여성의 품행이 원인을 제공했다며 낙인찍기) 문제가 세계 공통이라는 방증일 것"이라고 말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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