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서비스 안내

파파야·구아버·애플망고·용과… 사과·배 전통과일 제치고 “내가 국산”

  • 박수호 기자
  • 입력 : 2018.09.14 10:51:18
  • 최종수정 : 2018.09.14 11:07:50
부모님 세대 때만 해도 쌀농사를 짓던 여수의 농부 위덕숙 씨는 5년 전부터 애플망고로 전향한 후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수입과일이라고만 생각해온 국내산 애플망고가 엄청 맛있더라 탄복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관련 시장도 커진 덕분이다.

블랙초크베리, 파파야, 구아버, 망고, 블랙베리. 국내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아열대 작물이다. 전남 고흥에서는 올리브 나무, 경남 거제에서는 아열대 채소인 ‘차요테’와 아열대 과일 ‘게욱’을 노지, 즉 일반 환경에서 키우는 실험이 진행되기도 한다.

기후변화에 따라 국내 작물 환경도 달라지면서 식탁에도 새로운 메뉴가 부쩍 많이 올라오고 있다. 천혜향은 보편화됐고 국내산 바나나는 물론 파파야도 이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신라호텔 마니아인 한 일본 고객은 이 호텔 히트상품인 애플망고 빙수가 언제 출시되는지 매년 체크한다. 그 시기에 맞춰 신라호텔 숙박을 예약하기 위해서다. 한여름 서울신라호텔 빙수를 먹기 위해 최소 1시간 이상 대기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2011년부터 특급호텔 최초로 선보인 호텔신라서울 애플망고빙수.

2011년부터 특급호텔 최초로 선보인 호텔신라서울 애플망고빙수.

호텔신라 관계자는 “2011년 첫 선을 보였는데 최고급 제주산 애플망고라는 단일재료 위주로 본연의 맛을 최상으로 살린 빙수라는 타이틀로 국내 고급 빙수 시장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국내산 애플망고가 이렇게 맛있는지 탄복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관련 시장도 커졌다”라고 소개했다.

여수산 애플망고 수확과 동시에 완판

2020년이면 경지면적 10%가 아열대


무화과는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 혹은 반사막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여름철 강수량이 많은 한국 기후에는 맞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상업재배가 시작됐다. 통상 무화과는 유통 과정에서 품질 저하가 심해 수입산은 건무화과만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라 국내산 생(生)무화과는 경쟁력이 높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아침에 무화과를 따서 물류센터에 입고한 후 다음 날 아침까지 배송하는데 사이트에 올리면 그날 저녁이면 완판될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마켓컬리는 여세를 몰아 애플망고, 바나나 등 국내산 열대과일 농가를 섭외해 모바일 쇼핑몰에서 속속 소개하고 있는데 매출 성장세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부모님 세대 때만 해도 쌀농사를 짓던 여수의 농부 위덕숙 씨는 농사일을 물려받아 5년 전부터 애플망고로 전향한 후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박스 10만원, 수확량은 올해 500박스 정도인데 이미 지난 8월에 모두 나갔다. 위덕숙 씨는 “한번 맛본 고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 부산 등 대도시 위주로 순식간에 팔려나가 경작 면적을 확대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아스파라거스, 용과, 패션프루트 등 수입과일·채소류가 최근 국내 농가 생산 제품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업체들의 식자재 조달 전략에도 변화가 뚜렷하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갈수록 국산·수입산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제철을 맞은 상품 중 최고 품질 제품이면 그냥 수매를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국내산 애플망고로 만드는 신라호텔 애플망고빙수는 한여름에 없어서 못 팔 정도다.

한국의 농업 지도가 바뀌고 있다. 그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1973년 대비 지난해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0.67℃ 올라갔다. 통계청의 ‘기후변화에 따른 농작물 주산지 이동 현황’ 자료를 보면 사과, 복숭아, 포도, 단감, 감귤, 인삼 등 주요 소비 작물은 1970년과 2015년 사이 주산지가 모두 북쪽으로 이동했다. 블랙초크베리, 파파야, 구아버, 망고, 블랙베리 등 아열대 작물이 국내에서도 재배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겨울이 추워 비닐하우스, 온실재배를 병행하지만 전남 고흥에서는 올리브 나무, 경남 거제에서는 아열대 채소 ‘차요테’와 아열대 과일 ‘게욱’을 노지, 즉 일반 환경에서 키우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2020년이면 경지면적의 10.1%가 아열대 기후에 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더불어 2060년이면 26.6%, 2080년이면 62.3%로 확대되면서 한반도는 사실상 아열대 기후권으로 바뀔 것이란 전망이다. 이와 같은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다면 2040년이면 쌀 생산 가능 지역은 지금보다 13.7%, 옥수수는 10~2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농촌진흥청은 2008년부터 아열대 작물 연구를 시작해 현재까지 총 50종의 아열대 작물을 도입, 이 중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20종을 선발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오크라, 삼채, 여주, 공심채, 강황, 사탕무, 얌빈, 게욱 등 야채 12종과 망고, 패션프루트, 용과, 올리브, 파파야 등 과수 8종이 여기에 해당한다.

농진청 관계자는 “아열대 과수 중 망고는 열풍기, 히트펌프, 다겹보온커튼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46% 절감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한 나무 키를 낮게 키우는 방법으로 노동력 36% 절감, 상품률을 20% 높이는 기술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최근 재배 면적이 늘고 있는 패션프루트 묘목 번식 기술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묘목값을 10a당 240만원 줄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농촌 풍경을 바꿔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음식점 등 상업용 수요 증가

오크라 장아찌 등 신메뉴 개발도 활발

아열대 작물 재배가 늘어나면서 산업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해외여행 열풍 지속, 다문화 가정 증가, 외국인의 한국 국적 취득 증가 등의 영향으로 시장 형성이 충분히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1년 만에 가맹점만 100여개 이상 전국으로 퍼진 베트남 음식 프랜차이즈 ‘에머이’. 권영황 에머이 본부장은 “베트남 여행객 증가로 현지 음식과 가장 가까운 베트남 식당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예전 베트남 식당들은 관련 식자재를 대부분 수입했다는데 에머이는 대부분을 국내에서 조달한다. 관련 농가가 늘어나 다행히 수급을 맞출 수 있는 수준”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아열대 작물을 기초로 한 한식 요리 개발도 한창이다. 김명희 경기대 교수팀은 요리 전문가와 손잡고 여주 소고기전, 파파야 샐러드, 공심채 새우교자, 오크라 장아찌, 차요테잎 추어탕 등 아열대 13작물, 95개의 요리 조리법을 만들어 책자로 발간했다.

아열대 과일은 단위면적당 소득이 일반 작물보다 높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는 “아열대 작목 재배 농가가 늘어난 것은 사실 기후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금전적인 면이 더 크다. 일반 채소류보다는 과일류(망고, 패션프루트 등)가 더 높은 가격을 받고 있고 또 저변도 넓다 보니 농가소득이 올라간다는 점에서 젊은 농부 중심으로 빠르게 재배 면적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아열대 기후를 활용한 농사 모델이 정착하기에는 어려운 점도 있다. 평균 기온이 상승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한국 기후는 겨울철이면 영하권으로 내려간다는 점에서 아열대 작목 재배의 최적지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관련 재배 농가에서도 겨울철 난방비가 농가소득의 최대 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수 애플망고 농업인 위덕숙 씨는 “남부 지방이라 해도 폭염과 한파가 한번씩 오면 관련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시설관리에 추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보니 농사가 쉽지만은 않다”고 토로했다.

더불어 아열대성 해충인 꽃매미, 미국 선녀벌레 등 외래 해충 유입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농림부를 중심으로 친환경 방제법을 전파하는 등 피해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상대해보지 못했던 해충 때문에 국내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속속 나온다. 현재까지는 희소성이 있어 고가를 책정해도 팔리지만 시장에서 ‘신기하다’ 할 정도로는 상업성을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재배 가능한 온도대에 들어간다’는 것이지, 이를 상업적 경작으로 품질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다. 체리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기후대에서 재배는 가능하나 재배 기술이 부족해 가격 경쟁력, 품질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기후대가 맞아서 새로이 재배 가능한 작물은 재배 기술이 없는 불확실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의 분석이다.

인터뷰 | 서형호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장

고품질 국내산 망고, 수입산보다 가격 높아

Q. 통계 작성 이후 아열대 작물 국내 도입 1호 농가는 어디인가.

A 우리나라에 도입돼 재배한 지 오래된 대표적인 아열대 작물은 바나나와 망고다. 바나나는 1980년대부터 재배하기 시작해 수입이 개방된 1994년 이후 재배를 포기했다가 2015년 이후 다시 재배 농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망고는 바나나를 대체할 수 있는 아열대 작물로 1993년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최초로 도입돼 재배됐다. 현재까지 고소득 작물로 각광받고 있다.

Q. 현재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신기하다’ 할 정도가 아니라 외래 농작물 중 ‘파프리카’처럼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농작물이 있나.

A 재배 역사가 오래된 망고·바나나를 제외하고, 새로운 작물로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작물은 ‘여주’ ‘그린 파파야’ ‘패션프루트’ 등을 들 수 있다. 과거에는 다문화가정이 주로 소비했으나 최근에는 해외여행을 통해 음식을 접해본 후 소비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재배 면적도 조금씩 늘고 있고 일부 마켓과 뷔페에서는 신선한 과일을 쉽게 볼 수 있다.

Q. 새로운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연락을 해보면 극적으로 농가소득이 올랐다는 곳은 많지 않은데 그 이유는.

A 새로운 아열대 작물의 경우 소비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 생산량이 현재 소비를 충족한다. 아열대 작물의 연구와 재배 역사가 짧아 우리나라 소비자 기호에 맞게 충분히 개량되지 않은 때문이다. 재배 기술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아 아직까지 소비자 욕구를 충분히 충족하고 있지 못한 점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망고의 경우 수입산보다 고품질 과실을 생산하면서 더 높은 가격을 받는다. 앞으로의 노력에 따라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Q. 특급호텔이나 식당에서는 계약재배 등 수급을 원활하게 가져가고 싶은데 쉽지 않다고 한다. 정부에서 이런 수요·공급을 좀 더 편하고 쉽게 매칭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나.

A 호텔이나 식당과 계약재배를 하기 위한 안정생산 기술 지원은 가능하지만, 일정한 소비가 유지되거나 증가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패션프루트와 여주의 예로 볼 때 다양한 제품으로 소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계약재배를 통한 농가 생산이 주를 이루고 있다. 농진청에서는 소비자의 소비 촉진을 위해 유용한 기능성을 분석해 홍보하고,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를 개발하는 등 소비 촉진을 위한 근본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 박수호(팀장)·강승태·정다운·나건웅·김기진 기자 / 사진 = 윤관식·최영재 기자 /그래픽 : 신기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5호 (2018.09.12~09.1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