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2 포커스] '앙팡 테리블' 고종수는 그렇게 감독이 되고 있다
입력 : 2018.09.1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서재원 기자= 90년대 말 한국축구를 씹어 삼켰던 무서운 아이(앙팡 테리블)가 20년 뒤 감독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서툰 면도 있지만, 한 걸음씩 내 디디며 나아가고 있다. 감독 고종수의 이야기다.

지난 3일 열린 대전 시티즌과 수원FC의 경기였다. 대전의 1-0 승리로 경기종료 휘슬이 울렸다. 대전의 벤치가 시끌벅적했다. 코치진과 선수들이 부둥켜안고 기쁨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고종수 감독만 한 걸을 떨어져 미동 없이 경기장을 바라봤다.

몇 초의 순간이었다. 고종수 감독은 경기장에 탈진해 쓰러진 선수들을 지긋이 바라본 뒤, 그제야 벤치로 방향을 돌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 들어왔다. 승장의 모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무표정으로 선수들을 격려했고, 상대 감독, 코치진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 무표정은 기자회견까지 이어졌다. 그에게 휘슬 울릴 때 상황에 대해 물었다. "지도자들은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짜증을 낼 때도 있다. 끝나고 주저앉은 선수들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선수들의 절실한 마음이 강했다. 안쓰럽기도 하고, 소리친 것도 미안했다." 고종수 감독이 직접은 전할 수 없는, 선수들에 대한 미안함이 진하게 묻어있었다.

고종수 감독은 늘 선수들에게 채찍을 들었다. 승리 후 "선수들에게 강하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하다"라고 말한 그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내일부터 강하게 해야 한다. 1경기, 1경기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승과 무패에도 굳은 표정이기에, 질문하는 기자가 농담을 건네 표정을 풀어줘야 할 정도였다.

대전 관계자는 "승리에 취하실 만도 한데, 좀처럼 표정을 풀지 않으신다. 본인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선수단까지 영향을 끼칠 것 같아 그러시는 것 같다"라고 고종수 감독의 표정 관리 이유를 대신 전했다.



다시 일주일 뒤, 대전은 부산 아이파크 원정에서 2-1로 승리하며 3연승과 함께 7경기 무패(5승 2무)행진을 이어갔다. 꿈에 그리던 4위권까지 진입했다. 그러나 고종수 감독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안일한 생각을 하면 떨어진다. 우리가 플레이오프에 갈 수도, 꼴찌를 할 수 있다. 잘 한 것은 잘 한 것이고, 앞으로를 위해 다시 뛰어야 한다"라고 다시 채찍을 들었다.

고종수 감독의 말처럼, 대전의 상승세가 언제 멈출지, 순위가 언제 떨어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지난 5월 3연승을 달릴 때에도 연패가 찾아왔다. 7월 한 달 동안은 5경기 무승(2무 3패)의 늪에 빠지기도 했다. 그가 "축구는 알면 알수록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롤러코스터 같은 축구 인생을 살았기에, 누구보다 '잠깐의 행복'에 취하지 않는 법을 빨리 배웠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고종수 감독은 선수시절 천재로 불렸다. 이동국, 안정환 등과 함께 K리그의 전성기를 이끌던 스타였다. 앙팡 테리블이란 별명도 그 때 나왔다. 19세 8개월의 나이로 1998 프랑스월드컵에도 참여했다. 2001년 세계올스타와 경기에서 환상적인 프리킥 골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2002 한일월드컵에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사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원조 황태자는 그였다.

하지만 고종수 감독의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고질적인 무릎 연골 부상에서 비롯된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짧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 사이 숱한 악성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축구 천재가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것은 한 순간의 일이었다. 이후 그에게는 '비운의 천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어린 나이에 워낙 많은 일을 겪었고, 고난 속에서 성숙함을 배웠다. 과거의 자신의 잘못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도자는 더욱 진중히 임하려 한다. 선수 시절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고종수 감독이 7경기 무패와 4위 등극에도 취하지 않는 이유다.

고종수 감독의 개인 SNS 프로필에는 '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말이 적혀있다. 호랑이 같이 예리하고 무섭게 사물을 보고, 소같이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가 어떻게 현재를 살아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는 아직 베테랑 지도자가 아니다. 하루하루 배워나가고 있다"는 고종수는 그렇게 감독이 되고 있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