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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특집 울주세계산악영화제ㅣ<2> 인터뷰/집행위원장 배창호 감독] “젊은 관객들에 산악영화 붐 기대”

월간산
  • 입력 2018.09.0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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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채널 통해 배급 늘어… 지역민·영화인·산악인 합심해 확산시켜야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배창호 집행위원장이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배창호 집행위원장이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아직 일반인들에게 생소하다. 서울 중심인 대한민국에서 지방도시 울주에서, 그것도 세계영화제도 아니고 영화의 한 장르인 세계산악영화제를 치른다고 하니 더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아주 낯이 익고 귀에도 익다. 한때 화제의 영화감독으로 회자되던 인물이다. 한국의 대표적 작가주의 성향을 지닌 배창호 감독. 지난 4월 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했다. 베테랑 감독이지만 초보 집행위원장, 1인2역이다. 올해로 3회째인 영화제가 독립법인으로 전환한 뒤 첫 번째 열리는 해다. 명칭만큼이나 연륜도 일천하다. 9월 7~11일 울주 영남알프스 일원에서 개최된다.

올해가 울주세계산악영화제로서는 분기점이다. 3회 대회를 치르고 나면 국비를 신청할 수 있다. 3회 대회까지 지자체 자체 진행능력과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기간인 셈이다. 이 기간을 넘기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국비가 지원되면 지자체 예산만으로 치러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다. 더 널리 홍보도 가능하다. 더욱이 베테랑 감독을 위촉했으니 더욱 세련된 영화제를 기대할 수 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개최를 앞두고 생소한 영화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일반인들이 궁금해 할 만한 사항을 집행위원장 배창호 감독을 직접 만나 물어봤다. 그동안 두문불출하여 궁금했던 개인사와 산악영화제 전반에 대한 내용을 인터뷰를 통해 들었다.

재미보다 주제 뚜렷한 산악영화 매력

Q. 어떻게 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으시게 됐나요? 그동안 산이나 자연, 혹은 등반행위에 관심이 깊으셨던가요?

A. “재미만을 추구하는 상업영화나 주제가 애매모호한 영화들과 달리 산악영화라는 특성에 끌려 맡게 됐습니다. 내 작품 속에 산과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 연출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등산을 통해 체력을 단련하고 인내심을 줄곧 키워왔습니다. 신작 구상에 대한 모티프를 찾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맡았으니 최선을 다해 역할을 해볼 생각입니다.”

배 감독은 의외로 산과 인연이 있었다. 미혼 시절 체중감량을 위해 인천 계양산을 거의 매일 오르며 자연스레 등산이 취미가 됐다. 그후 틈만 나면 계룡산, 치악산, 월악산 등 전국의 산을 누비며 작품 활동의 휴식기를 보냈다. 결혼 후 서울에서는 북한산, 청계산, 검단산, 아차산 등지를 오르내리며 취미활동을 이어갔다. 뿐만 아니라 그의 화제작 ‘깊고 푸른 밤’ 촬영지 헌팅을 위해 미국 요세미티에서 캠핑하던 기억은 아련하면서 즐거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내친 김에 그에게 “산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산은 일상에 지친 우리를 품어 주는 곳”이라는 신선한 답이 돌아왔다. 감성이 넘치는 영화감독이다.

Q.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아직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배창호 집행위원장이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로고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창호 집행위원장이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로고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창호 집행위원장이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창호 집행위원장이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 “첫 시작은 울주군의 영남알프스 문화콘텐츠개발 사업부터였습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2010년 10월 3일 영남알프스 간월재 억새평원에서 산상음악회 ‘울주오디세이’를 개최했습니다. 은빛 억새숲을 무대로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공연에 관객들의 호응은 아주 좋았습니다. 이에 힘입어 울주군은 영남알프스라는 자연과 문화를 접목시키는 산악영화제라는 행사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사전 준비단계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캐나다 밴프산악영화제의 화제작을 모아 ‘밴프월드투어 울주상영회’를 개최했고, 이후 2015년부터 프레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Q. 올해가 3회째인데 그동안 반응은 어땠습니까?

A.  “지난해 2회 때는 총 6만여 명이 찾아 영화제를 즐겼습니다. 인원 면에서만 보면 외국의 유수 세계영화제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짧은 기간에 비해 인지도는 매우 높아졌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개최 2년 만에 국제산악영화협회International Alliance for Mountain Film: IAMF정회원으로 가입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3회 개최가 필수인 IAMF 가입승인을 2회 만에 받은 것은 그만큼 영화제 역량을 인정받았다고 판단합니다. 또한 이로 인해 20여 개 회원국 영화제에 자연스레 홍보가 되고 있습니다. 올해 3월에는 최선희 프로그래머가 IAMF 아시아-태평양 대륙 대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국제산악영화협회에는 66회 역사의 이탈리아 트렌토영화제, 43회 역사의 캐나다 밴프산악영화제 등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영화제들이 많지만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신생 영화제답지 않게 큰 규모와 프로그램, 운영 면에서 이미 세계의 산악영화제들 사이에선 확실한 인지도를 확보했습니다. 또 세계 산악영화제 중에 우리 영화제가 처음으로 아시아영화진흥기구The Network for the Promotion of Asia Cimema: NETPAC에도 가입해 올해부터 경쟁부문에 넷팩상도 신설했습니다. 이러한 여세에 힘입어 올해 국제경쟁 출품도 지난해 31개국 260여 편에서 128편이 늘어난 42개국 388편이 접수됐습니다. 이는 국제적인 인지도 상승의 결과라고 봅니다.”

세계의 대표적인 여성 산악인 조명

Q. 올해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특별한 주제가 있습니까?

A. “국내 유일의 산악영화제라는 점이 다른 영화제와 가장 큰 차별성이자 특징입니다. 또한 해마다 주제를 정해서 그에 맞는 상영작들로 구성됩니다. 올해 새로 독립법인으로 설립된 뒤 열리는 첫 영화제라 그 의미를 살려 주제도 ‘새로운 도전’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제로서 성장하기 위해 상영편수를 대폭 늘렸습니다. 지난해 21개국 97편에 비해 올해는 41개국 139편을 상영합니다. 출품 국가수는 거의 2배에 이르러 세계의 다양한 산악영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 영화들은 알피니즘, 클라이밍, 모험과 탐험, 자연과 사람, 움프 포커스, 움프 라이프, 움프 프로젝트 등 모두 7개 섹션으로 나눠 상영합니다. 고정적인 섹션 외에도 해마다 특별한 테마를 정한 특별전도 기획합니다. 올해는 그 첫 해로, ‘히말라야-네팔’ 특별전을 마련했습니다. 해마다 세계 주요 산맥에 위치한 나라의 산악문화와 삶의 양식을 소개하는 특별 프로그램의 일환입니다. 이번 특별전에 네팔인들이 연출한 작품 6편을 상영하고 부대행사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올해 ‘울주비전’섹션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여성, 그리고 산’이라는 주제로 세계의 대표적인 여성 산악인들을 조명합니다. 관련 영화 13편과 토크 프로그램을 선보이는데, 14좌 완등기록을 가진 니메스 메로이, 여성 최초 K2 등반인 반다 루트키에비치, 히말라야 기록자인 엘리자베스 홀리 등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산악인들의 삶과 도전정신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영화제 시상부문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영화제인 만큼 좋은 콘텐츠로 관객들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올해 접수된 42개국 388편 중에 27편이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이번 영화제 기간에 상영과 심사를 거쳐 대상과 각 분야별 수상작 등 모두 7개 부문을 시상합니다. 대상 2,000만 원 등 총 상금은 5,000만 원입니다. 올해 신설된 넷팩상도 있습니다. 영화제 상영작 가운데 아시아 출신 감독이 만들고 제작국이 아시아인 나라인 작품을 대상으로 본선 진출작 14편을 이미 확정했으며, 이 가운데 최고 1편을 선정합니다. 국제경쟁과 넷팩상 수상작 발표와 시상식은 폐막식 때 합니다.

국내 산악영화 활성화를 위해 제작된 영화를 선택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제작지원도 나섭니다. 그 대표 프로젝트가 ‘울주서밋’입니다. 2015년 프레페스티벌 때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최대 5편을 선정해 총 1억 원을 차등 지원합니다. 올해 지원작은 다음 영화제에서 최초 상영하는 방식입니다. 이번 울주서밋에 선정된 5편은 ‘우디헤디 가는 길’ ,‘신시’ 등 장편 다큐멘터리 2편과 ‘계양산’ ,‘미명’ ,‘여름에 내리는 눈’ 등 단편 극영화 3편입니다. 이 작품들에 각각 2,000만 원, 1,000만 원 등 모두 1억 원이 지원되며 내년 4회 영화제에서 최초 상영될 예정입니다. 지난 제1회 영화제 때 ‘울주세계산악문화상’을 제정했습니다. 전 세계 산악문화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그해 영화제 개막식에서 시상합니다. 첫 해 수상자는 미국의 릭 리지웨이였습니다. 올해 수상자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슬로건에 적합한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 경입니다. 보닝턴 경은 세계 여러 미답봉을 최초 등정해 ‘알피니즘의 살아 있는 전설, 도전을 멈추지 않는 자’로 불리는 산악인입니다. 이번 영화제에 참석해 개막식과 특별강연, 그의 영화상영 등으로 관객들과 함께할 예정입니다.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올해 울주세계산악문화상은 크리스 보닝턴

Q. 그런데 산악영화라고 하면 소재가 제한적이지 않습니까?

A.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올해 우리 영화제 국제경쟁에 출품된 영화가 388편에 이르고, 역사가 더 긴 이탈리아 트렌토영화제는 올해 800여 편, 캐나다 밴프영화제는 400여 편이 출품됐습니다. 산악영화는 고산등반 외에도 클라이밍, 산악스포츠, 산악문화 전반으로 범위가 넓어져 다양한 산악영화들이 제작되고 있고, 그 영화들이 세계 여러 나라 산악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다큐멘터리 등 산악영화 외에도 극영화,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에 제작되는 산악영화는 유쾌하고 즐겁게 등반과 클라이밍,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들도 많습니다. 이번 영화제에서도 등반 외에 자연과 환경, 탐험 및 모험에 대한 영화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따뜻한 영화들도 많이 상영됩니다.”

Q. 산악영화가 아직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듯한데,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돌파구가 있습니까?

A. “산악영화가 일반 상업영화와 같은 대규모 제작규모나 배급시장을 갖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클라이밍이나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라 전문 등반영화 혹은 산악영화만을 만드는 실력 있는 제작사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산악영화 완성도가 과거보다 매우 높아졌습니다. 산악영화들이 상업영화관에서의 개봉은 쉽지 않지만 순회상영이나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온라인 채널을 통해 배급되고 있어 앞으로 젊은 관객들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배 감독 자체가 상업영화의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실험정신과 작가주의 정신이 매우 뛰어난 감독이다. 상업성과 절대 타협하지 않은 인간 본질을 추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의 대표작 ‘깊고 푸른 밤’이나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과 같은 영화만 보더라도 인간 내면의 깊은 감성을 일관되게 그려내고 있다.

그도 스스로 “난 센티멘털적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또 “지금은 자기 고집으로 만드는 영화시대가 아니다”고 덧붙인다. 그래서 그는 현대 상업주의 영화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에게 의외의 돌파구가 산악영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대한민국은 산악인은 세계 최강에 속하지만 변변찮은 산악기념관 하나 없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있지만 문화는 없다는 뜻이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통해 세계의 알피니즘 문화를 널리 알리고, 우리 고유의 산악문화를 찾아내서 활성화시키는 작업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한국적인 문화가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은 영화에도 예외일 수 없다.

Q.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입니까?

A. “산악영화라는 특별한 주제는 사실 장점이면서 아직은 이 주제를 전문적인 영역으로 여기거나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등산인구가 2,000만 시대에 주말이면 전국의 산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세계적인 수준의 등반가도 여럿 있지만 아직 국민들에게 산악문화라는 말은 생소합니다. 산악영화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감동적인 영화가 많습니다. 이러한 점을 국민들에게 어필하면 산악영화가 명확히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탈리아에는 라인홀트 메스너 박물관이 여러 개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에서는 등반과 관련 서적, 영화도 꾸준히 제작됩니다. 우리 영화제가 산악계와 협력해서 좋은 콘텐츠로 산악문화를 활성화 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배 감독은 대학에서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경영학(연세대)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어떻게 영화감독이 됐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의 어머니가 영화 마니아였다. 그를 임신한 상태에서도 영화 보는 일은 빼먹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른바 모태영화인이다. 전혀 상관없는 분야인 영화감독에 입문한 지 40여 년. 이제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흥행시켜야 한다. 그는 여태 그래왔듯이 ‘상업성이냐, 대중성이냐, 작품성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산악문화를 정립해야 하는 책임까지 지게 됐다. ‘일상에 지친 인간을 품어주는 산, 등산을 다녀오면 삶에 힘이 생긴다’는 그의 말대로 그의 임기 중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과연 얼마나 인간을 품어주며 흥행시킬지, 삶에 힘이 생기도록 대한민국의 산악문화를 정립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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