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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전 대지진 난 일본땅서 외할아버지는 학살당했다"

송고시간2018-09-0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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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600여명 희생 간토대지진 조선일 학살…피해자 유족 기자회견

"일본 무책임, 한국 무관심, 언론 무지로 진실 규명 안돼"

"日, 과거 덮어둔다고 사라지지 않아"…"진실, 동북아 평화에 기여"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95년이 흐른 오늘에도 왜 학살했고, 누가 학살했고, 또 누가 학살 당했는지 진실이 묻혀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무책임과, 한국의 무관심, 그리고 언론과 학계의 무지 때문입니다."

18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홋카이도 지진이 일어난 다음 날인 7일 일본 도쿄(東京)에서는 95년 전인 1923년 9월 1일 일어난 간토(關東)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에 대해 희생자의 유족이 나서서 진상규명과 일본 정부의 반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일본 당국이 이제 막 재난 극복에 힘을 쏟기 시작한 홋카이도 지진에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까지도 시선을 집중하는 상황에서 이런 기자회견이 열린 것은,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당시의 진상이 어둠 속에 있고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재난 극복'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간토대지진은 간토지방에서 발생했던 규모 7.9의 대형지진이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고, 자경단, 경찰, 군인 등이 재일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이런 내용은 수년 전 만들어진 영화 '박열'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의 수는 6천661명(독립신문 기록)으로 알려졌지만, 일본 우익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도쿄도지사는 관례를 깨고 매년 도쿄에서 열리는 조선인 추모식에 최근까지 2년 연속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도 했다.

당시 외할아버지가 희생됐다는 권재익(62·한국 거주)씨는 기자회견에서 '할아버지가 살해당한 땅에 갈 수는 없다'며 그동안 일본 땅을 밟지 않다가 용기를 내 일본 언론 앞에 섰다.

그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이 묻혀있는 이유에 대해 ▲ 일본이 나서서 진실을 밝히지 않은 '무책임' ▲ 한국 정부가 그동안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일본에 항의하지 않아 책임을 방기한 '무관심' ▲ 한국 언론과 학자들이 관심을 두지 않은 '무지'를 꼽았다.

일본 찾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피해자의 외손자 권재익 씨
일본 찾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피해자의 외손자 권재익 씨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자행된 조선인 학살 당시 외할아버지가 자경단에 의해 살해됐다는 권재익(62)씨가 7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2018.9.7 bkkim@yna.co.kr

그는 "무책임, 무관심, 무지가 해소될 때야말로 진실과 평화가 올 수 있다"며 "이는 한일 양국과 동북아시아 평화에도 기여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의 외할아버지 남성규씨는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군마(群馬)현의 자갈공장에서 일하다가 일본인들이 조직한 자경단에 살해 당해 서른 살로 생애를 마쳤다.

막연히 일본에서 외할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만 외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던 권씨가 외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생전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는 지붕을 뚫을 힘이 없어서 일본에서 죽었다'고 말했는데 우연히 읽게 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관련 책에서 "'후지오카(藤岡) 사건' 당시 조선인들이 학살당할 때 지붕을 뚫고 도망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조선인 6천여명 희생"…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조선인 6천여명 희생"…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도쿄=연합뉴스) 데라사키 유카 통신원 = 일본 도쿄(東京)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 도쿄도립공원에 있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1923년 9월 발생한 간토대지진의 혼란 속에서 잘못된 책동과 유언비어 때문에 6천여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존엄한 생명을 앗겼다"(박스 표시)라고 적혀 있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유포됐고 이 과정에서 현지의 자경단·경찰·군인 등이 재일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2017.9.1 tryk39@yna.co.kr

그는 이후 과거 호적 관련 문서에서 외할아버지의 사망장소가 '군마현의 후지오카 경찰서'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가 이 '후지오카 사건' 때 돌아가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

후지오카 사건은 당시 후지오카 경찰서가 보호하던 조선인 노동자 17명이 자경단에 살해당한 사건이다.

권씨는 이번 방일 기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에 가서 제사를 지낼 생각이라며 "내 경우에는 외할아버지가 어디서 돌아가셨는지를 알게 됐지만, 대부분은 어디서 돌아가신 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또 다른 유족 조광환(58)씨는 "처음에는 귀찮기도 하고 아픈 과거를 뒤집어낸다는 게 슬프기도 했지만,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일본에 왔다"고 말했다.

조씨의 큰할아버지는 대지진이 일어나기 2년 전 일본에 건너갔다가 간토대지진 당시 살해됐다.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피해자들의 유족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피해자들의 유족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7일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자행된 조선인 학살 희생자들의 유족인 권재익(62)씨(가운데)와 조광환(58)씨(오른쪽), 어머니가 조선인 학살을 목격했다는 재일교포 윤봉설 씨(왼쪽)가 일본 도쿄(東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인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2018.9.7 bkkim@yna.co.kr

그는 고이케 도지사가 학살 조선인에 대한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다고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덮어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두 나라가 더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과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지진 당시 한국인들이 끌려가 살해당했다는 말을 어머니한테서 들었다는 재일교포 윤봉설 씨는 "간토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은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한국과 일본 모두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간토대지진 당시의 유언비어는 인터넷 세상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처럼 더 심각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을 마련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재일교포 오충공 씨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조선인들에게 저지른 제노사이드(대학살)"라며 "당시 학살은 재일 조선인만의 역사가 아니니라 세계에 호소해야 할 비극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日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항의하는 우익세력
日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항의하는 우익세력

(도쿄=연합뉴스) 데라사키 유카 통신원 = 일본 도쿄 스미다(墨田)구 도립 요코아미초(橫網町)공원에서 1일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들을 추도하기 위한 행사에 반대하며 항의하는 일본 우익세력들을 경찰이 저지하고 있다. 1923년 일본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를 강타한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가 이날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렸다. 2017.9.1 choinal@yna.co.kr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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