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타자를 본 시선은 어떻게 바뀌어왔나

2018. 9. 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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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계몽주의·19세기까지
백인·기독교·유럽 중심 이어져
현재는 과학·자본이 새 권력으로

[한겨레] 인류학을 넘어서-사회와 타자
버나드 맥그레인 지음, 안경주 옮김/이학사·1만6000원

아프리카 콩고의 음부티족(피그미족) 남성인 오타 벵가가 1906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열린 ‘인간 동물원’ 전시회에 끌려와 침팬지를 안고 있는 모습. 벵가는 앞서 벨기에 식민지였던 고향에서 미국의 한 사업가에게 인신매매로 팔려와 ‘진화가 덜 된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곳곳에서 인간 동물로 전시되다가 1916년 서른다섯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국 소설가이자 언론인, 교역상이었던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718)는 유럽의 초기 계몽주의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18년째 무인도에 홀로 지내던 크루소는 어느날 해안가에 사람의 뼈와 그을린 살점들이 널려 있는 걸 보고 충격과 혐오감에 휩싸인다. 식인 흔적이었다. 겨우 평정을 되찾은 그는 ‘야만인’의 존재와 그들의 악마성을 떠올린다. 유럽의 축소판이던 섬에서 그는 더이상 섬의 주인이 아니었다. 기독교 세계 질서의 현현인 유럽인이 전혀 낯선 타자를 의식하고 규정하는 순간이다. 크루소는 “악은 오류나 병리적인 것이지, 신의 설계를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함 탓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섬에서 흑인 청년을 만나 하인으로 삼고 기독교 세례를 주며 ‘프라이데이’(금요일)란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 역시 유럽 백인 기독교 세계관의 실천을 상징한다.

미국 인류학자 버나드 맥그레인의 <인류학을 넘어서>는 유럽인의 눈에 비친 ‘타자’와 ‘이질 문화’ 개념의 발생과 변천을 추적하고 한계와 과제를 짚은 책이다. 맨 처음부터 서구가 주도해온 인류학의 고고학인 셈이다. 인류학은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연구 대상과 범위가 방대하다. 크게는 생물로서의 인류를 연구하는 형질인류학과 고고학, 인류의 문화·사회 구조를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으로 나뉘는데, 멀리는 15세기 유럽의 지리상의 발견(대항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르네상스 시대와 맞물리면서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태양중심설로 촉발된 지리학과 천문학의 비약적 발전이 패러다임 혁명을 불러왔으며, 새롭게 발견된 공간의 새로운 존재, 즉 비유럽인 ‘사회와 타자’(책의 부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게 된 것. 위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가 한 사례다.

지은이는 크게 3부로 짜인 책에서, 유럽인의 외부 세계에 대한 시선을 르네상스의 타자, 계몽주의의 타자, 19세기의 타자로 구분 짓는다. 현대 인류학 이전까지 서구 중심 인류학이 차레로 밟아온 궤적이다. 르네상스의 타자는 이교도의 다른 말이나 다름 없었다. 대양이 유럽 너머 황금과 향신료가 있는 세계에 가닿는 바닷길이라기보다 존재의 한계, 세계의 경계였던 시대였다. 예루살렘을 놓고 십자군 전쟁까지 벌였던 이슬람교도들은 ‘반기독교’가 아닌 ‘비기독교’인들이자 개종시켜야 할 ‘잠재적인 기독교인’이었다.

17~18세기 유럽을 풍미한 계몽주의는 타자에 대한 시선도 바꿔놓았다. 기독교가 절대 지위를 잃고 하나의 종교로 간주되면서, “비유럽인 타자는 더이상 (비기독교인으로) 배제되지 않고 (비기독교 종교의 구성원으로) 규정되어 포함됐다.” 18세기 북미 원주민에 대한 유럽 점령자들의 정책이 ‘제거’(배제와 폐지)에서 ‘보호구역’(제한) 설정으로 전환된 게 단적인 예다. 이제 관심은 “낯설고 야만적이고 비유럽적인 종교는 어떻게 발생했는가?”로 옮겨갔다. 고전역학의 완성자이자 독실한 청교도였던 뉴턴은 이교의 기원을 ‘타락’에서 찾았다. 이때 “타락은 더이상 악마의 능력에 기인하지 않고 인간 능력의 결과라는 점에서 이미 ‘인류학적’이다”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교도의 종교는 “당대의 야만을 비추는 살아 있는 실재”였고, 타자는 그렇게 계몽과 교육의 대상이 된다.

2016년 5월 서울 시청 앞 광장과 무교동길에서 열린 ’2016 지구촌 나눔 한마당’에서 이집트 카이로 공연단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즈 공연단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9세기 들어 진화론과 지질학적 시간 개념은 또 한번 유럽인들의 타자 인식에 대전환을 가져왔다. 미개한 외부인의 존재는 인류 진화사나 문명 발달사의 옛 단계가 현존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마침내 인류학은 “악마적 현실에 기반을 둔 삶에 대한 논쟁”이나 “무지와 앎의 대조”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비교라는 실증주의적 형태”를 띠게 됐다. “신은 죽었다”는 선언이 나온 순간부터 철학이 인류학이 됐고, 생물학이 인류학과 친족 관계를 맺었으며, 진화의 화석 증거를 제공하는 지질학이 인류학의 토대를 구축했다. “비유럽인 타자의 ‘지금의 삶’이 (초창기 인간의 기원인) ‘그때의 삶’을 재현”하는 것으로 이해됐고, ‘우리’ 사회가 아닌 세계의 많은 곳은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간주됐다. 원시민족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이런 과정을 토대로, 20세기 들어 처음으로 ‘우리’와 낯설고 이질적인 ‘타자’와의 차이는 문화적 차이 내지 다양성으로 해석된다. 현대 인류학이 과거와 다른 핵심은 진화론적 발전 단계(19세기), 계몽주의(17~18세기)의 무지와 미신, 르네상스(15~16세기)의 악마적 열등성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가 타자에 대한 인식의 보편적 근거가 됐다는 점이다. 지은이의 표현을 빌리면 ‘차이의 민주화’이다.

옮긴이 안경주 박사(경북대 초빙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 책은 서구 중심주의 시각이 인류학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보여주는 계보학으로서 의미가 있다”며 “오늘날 인류학은 인공지능, 트랜스 휴머니즘 등 과학기술의 급진전, 그 배후의 거대자본과 권력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지난해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3월21일)을 이틀 앞두고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기념대회에서 페루에서 온 여성 2명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내용의 알림판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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