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넓은 세상 꿈 비춘 작고 낡은 등대

입력 2018. 9. 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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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짧게만 느껴지는 북유럽 출장.

기내 영상을 고르고 고르다 아이슬란드 음악가 올라퓌르 아르날즈의 다큐멘터리 'Island Songs'(섬 노래들·사진)를 재생했으니. '이거다. 서울 땅에 발 딛기 전까지 난 북유럽 사람.'

해안의 낡은 등대에 숨어들던 기억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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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짧게만 느껴지는 북유럽 출장. 취재를 위해 동분서주할 때면 ‘뭐야, 서울에서보다 더 바쁘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따금 차창 밖 풍경이 날 위로해줬다. 언젠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기묘하고 낯선 그 안락함.

귀국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핀란드 공항에서 마지막 식사를 할 때도 메뉴 선정에 고심했다. 작은 레스토랑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을 때 이거다 싶은 게 눈에 들어왔다.

순록 파스타. 떠나기 싫다는 마지막 발악. 이곳의 마지막 끼니로 이만한 선택이 또 있을까. 느끼한 순록과 치즈의 범벅을 씹어 넘기면서 행복하기만 했다.

날 강제로 서울에 돌려놓을 거대하고 잔인한 기계, 즉 비행기에 올라타서도 정신은 못 차렸다. 기내 영상을 고르고 고르다 아이슬란드 음악가 올라퓌르 아르날즈의 다큐멘터리 ‘Island Songs’(섬 노래들·사진)를 재생했으니…. ‘이거다. 서울 땅에 발 딛기 전까지 난 북유럽 사람….’

2016년 아르날즈는 고국 여기저기를 찾아 음악가들을 만나는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7주간 7개 지역을 돌며 7명의 음악가를 만나 이야기 나누고 7곡을 녹음하는 섬 노래 여행. 그 과정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화 ‘Island Songs’에 담겼다.

여섯 번째 노래를 위해 아르날즈는 밴드 ‘오브 몬스터스 앤드 멘’의 멤버인 난나 브린티스 힐마르스도티르를 찾는다. 힐마르스도티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작은 마을 가르두르의 해변을 함께 산책하며 담소한다. 작고 답답한 이곳이 싫어 넓은 세상만 꿈꾼 10대 시절에 대해. 해안의 낡은 등대에 숨어들던 기억에 관해.

장면이 바뀐다. 이제 두 사람과 연주자들이 바로 그 등대 안에 있다. 카메라는 떠다니는 영혼처럼 군다. 동그란 공간 안을 느리게 돌며 이들을 바라본다. 여섯 번째 섬 노래, ‘Particles’는 그렇게 비좁은 등대 안에서 녹음된다.

‘난 여기/에메랄드 바다에 떠있네… 그러나 이 무거운 손들/그들은 내 가슴을 짓누르네’

그러게. 아직도 난 돌아오지 못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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