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고 있는 회사가 특례업종이 맞는지 아닌지 묻는 전화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지난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뒤 두달이 넘도록 통계청에는 ‘우리 회사도 특례업종에 해당하느냐’는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특례업종은 사실상 합법적으로 무제한 노동시간 연장이 가능한데, 판단 기준이 모호해 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근로기준법은 통계청이 고시한 ‘한국표준산업분류표’ 가운데 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운송관련서비스업, 보건업 등 5개 업종을 주 52시간제의 ‘특례업종’으로 규정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하거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업종은 사용자가 노동자 대표와 합의하면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둔 것이다. 국회는 지난 3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면서 기존 26개에 이르던 특례업종을 5개로 크게 줄였다. 무분별한 장시간 노동을 막으려는 취지였다.
문제는 특례업종으로 규정하기 모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례업종의 하청업체가 대표적인 경우다. 예를 들어, 항공운송업으로 주 52시간제의 특례업종인 아시아나항공의 지상여객서비스를 담당하는 ‘주식회사 케이에이(KA)’에서도 비슷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케이에이는 아시아나항공의 하청업체로, 탑승권 확인과 여권 검사와 같은 공항 출입국 업무와 라운지 여객서비스 등을 맡는다.
케이에이 직원들은 지난 7월1~9일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이 넘는 ‘연장근로’를 했다. ‘기내식 대란’으로 항공 스케줄이 지연되다 보니 대기하는 승객들을 돌보던 직원들도 덩달아 퇴근이 늦어졌다. 당시 연장근로를 한 직원들은 임신부와 산모, 유아, 장애인 등을 위한 항공 서비스를 담당하는 ‘한사랑 서비스팀’ 직원 18명으로, 케이에이 소속 전체 직원 90명 가운데 20%에 해당한다. 원정태 ㈜케이에이 대표는 “그 기간 공항 내에서 사용할 휠체어를 요청하는 손님들이 20~30명씩 발생했다”며 “기내식 대란 당시 주 52시간을 넘기긴 했지만, 케이에이는 특례업종에 해당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케이에이지회도 이 회사가 특례업종에 해당한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와 통계청에 문의한 결과, 케이에이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많았다. 케이에이의 업무를 특례업종인 ‘항공운송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케이에이 등기부를 보면 ‘회사 설립 목적’에 항공운수 지원과 항공관리 서비스업, 케이터링 용역 등이 적혀 있다. 통계청은 “비행기 탑승권을 발권하거나 장애인을 지원하는 등의 업무는 항공운송에 특화된 서비스업이 아니다”라며 “명시된 사업 목적 모두 특례업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비슷한 사례는 특례업종 가운데 하나인 ‘육상·수상 운송’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철도 역사나 항구, 비행장에서 운송장비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활동은 특례업종 세부항목인 ‘운송지원 서비스’에 해당하지만, 철도와 선박 등을 개량하고 개조하는 활동은 ‘운송장비 제조업’으로 특례업종이 아니다. 승용차와 버스, 화물차 자체를 임대하는 렌트업도 특례업종이 아닌 ‘운송장비 임대업’이다.
그뿐만 아니다.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케이블카는 특례업종인 ‘육상운송업’이지만, 관광지나 유원지에서 오락 목적으로 운영하는 케이블카 등 궤도 시설은 ‘오락 관련 서비스업’에 해당한다. 물 위에서 음식점과 주점 등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면 ‘음식점업’, 운송활동과 결합해 운영하면 ‘수상운송업’이다. 노인요양 복지시설이나 영유아 보호시설 등 사회복지 시설 운영업도 보건업과 유사하지만 비특례업종이다.
등기부에 기재된 회사 설립 목적만으로 특례업종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케이에이처럼 지상여객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는 ‘주식회사 에어코리아’가 그런 사례다. 대한항공 손자회사인 에어코리아의 등기부상 회사 설립 목적에는 ‘지상조업’ ‘항공운송지원서비스업’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케이에이와 유사한 업무를 하는 이상 특례업종으로 단정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훈 노무사는 “지상조업은 항공기 취급업 중 하나이지만, 실제 에어코리아의 주된 업무가 어떤 업무인지는 확인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등기부에 올라온 회사 설립 목적과 실제 사업장에서 주된 업무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중간영역이 있다”며 “현장에서 노동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관련 쟁의가 발생하기 전에는 특례업종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관련 규정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연장근로 요건인 ‘노사 합의’ 없이 장시간 노동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한 대형병원 노동조합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 병원에선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 특례업종으로 적용받기 위해 노사 간 합의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1주일에 68시간씩 일한다는 이 병원 노동자들은 7월 이후에도 “보건업은 특례업종이어서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법률 전문가와 상담한 뒤 사용자가 노동자 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한 경우에만 연장근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제야 사쪽에 주 52시간제 시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상혁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노무사는 “사업장이 특례업종이 아닌데도 모호한 규정 탓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이 예상외로 많다”며 “정부가 특례업종 적용 조건을 현장에 명확하게 알리고, 이를 위반하지 않도록 지속해서 지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도 “제도는 모호한 경계선에서부터 허물어지게 마련이므로, 결국 특례업종의 실태를 파악해 기준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주 52시간제 시행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