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2018 대한민국 '살롱 문화'에 빠지다..SNS 피로 20·30, 취향 따라 살롱에 집결

나건웅 2018. 9. 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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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만남에 대한 반작용일까. 급격한 IT 발달로 비대면이 일상화된 요즘, 오히려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 토론을 하는 오프라인 커뮤니티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공통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모아 대화의 장을 마련해주는 ‘커뮤니티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만만찮은 비용을 내는 유료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가입하는 이가 부지기수다. 18세기 중반 프랑스, 지성인과 예술가가 한데 모여 토론을 펼치고 지식을 나누던 사교 집회를 뜻하는 ‘살롱 문화’가 때아닌 2018년 한국에서 부활하는 모습이다.

최근 한국에 불어온 살롱 문화 트렌드를 ‘S·A·L·O·N’이란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국내 최대 독서 커뮤니티 트레바리에서는 월 1회 멤버가 투표로 정한 책을 읽고 만나 토론을 벌인다. 순수 문학은 물론 IT, 재테크, 패션, 음악 등 모임마다 읽는 책 종류가 달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트레바리 제공)
Space오프라인 공간의 힘

살롱 문화 필수 요소는 두 가지다. 첫째는 사람, 둘째는 공간.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만큼이나 어디서 만나는지도 중요하다. 살롱 문화 명칭 자체도 프랑스어로 방을 뜻하는 ‘살롱(salon)’에서 유래했을 정도다. 국내 커뮤니티가 저마다 공간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도 여기 있다.

유료 독서모임 커뮤니티 ‘트레바리’는 멤버 투표를 통해 책을 정해 읽고 한 달에 한 번 토론 장소인 ‘아지트’에 모여 의견을 주고받는다. 최초 압구정 아지트에 이어 올 초 안국에 두 번째 아지트를, 최근에는 공유 오피스 ‘패스트파이브’ 성수점 2층과 지하 1층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세 번째 둥지를 마련했다. 2015년 8개 클럽, 멤버 40명으로 시작한 트레바리가 현재 180개 클럽과 멤버 수 3000명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독서모임 커뮤니티로 성장한 배경에는 공간의 힘이 자리한다. 카페나 스터디룸 등 매번 다른 장소를 섭외했던 기존 소모임 대비 모임의 유지와 안정성 면에서 탁월하다.

멤버가 각자 취향을 공유하는 멤버십 서비스 ‘취향관’ 역시 장소를 보는 순간 마음을 사로잡히게 된다. 서울 합정에 위치한 2층 양옥을 리모델링해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살롱으로 탈바꿈시켰다. 취향관 명패가 붙어 있는 나무문을 열고 1층에 들어서면 호텔을 연상케 하는 컨시어지와 바 테이블이 모습을 드러낸다. 2층에 있는 원테이블룸에서는 멤버들이 서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공유하고 대화하는 모임인 ‘살롱’이 열린다. 커피, 영화, 철학, 와인 등을 주제로 하루 평균 1~2개 살롱이 진행된다. 고지현 취향관 공동대표는 “취향관은 공간 기반의 콘텐츠 서비스다. 정해진 시간에만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늘 문이 열려 있어서 언제든 찾아가고 싶은 공간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취향관은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2층 양옥을 리모델링해 모임 장소로 활용한다. 취향관 멤버는 커피, 와인, 철학, 그림 등 다양한 취향을 서로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임을 갖는다. (취향관 제공)
Artist골목마다 예술가 집결

문래·을지로 등 최근 힙플레이스로 부상한 골목상권에서는 아티스트 중심의 살롱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철공소 골목으로 유명한 서울 문래동은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문화거리 중 하나다. 중심에는 ‘문래문화살롱’이 있다. 맥주와 와인을 파는 펍이지만 저녁이면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들이 모여 공연을 펼치는 공간이 된다. 문래문화살롱을 운영하는 것은 ‘플라이스페이스’라는 작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공연이나 전시 기회가 없는 아티스트들이 모여 만든 집단이다. 매장 내 서빙을 돕는 아르바이트생 포함 직원 대부분이 현직 아티스트다. 문래동을 비롯해 연희문화살롱 등 현재 서울에만 5개 문화 살롱을 운영하고 있다.

낙후된 인쇄골목 이미지를 넘어, 느낌 있는 카페와 주점이 대거 들어서며 ‘힙플레이스’로 떠오른 을지로 일대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을지로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상당수는 아티스트다.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을지로에 정착한 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작업실 겸 매장을 운영하는 이가 많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깝게 지내며 교류한다. ‘아티스트 골목’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다른 지역 예술가들도 손님으로 방문한다. 매장에서 즉석 공연이나 전시회가 열리는 모습은 을지로에서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Library책과 함께

최근 살롱 문화를 이끄는 주요 콘텐츠는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레바리 외에도 독립서점을 거점으로 한 ‘북토크’ 문화가 움트고 있다.

전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 카피라이터 최인아 대표가 문을 연 ‘최인아책방’이 대표적이다. 북클럽 멤버십을 신청하면 월 1회 독서토론에 참석할 수 있다. 최 대표가 신간 중 직접 한 권을 골라 멤버에게 배송하면 그 책을 읽고 최인아책방에 모여 저자나 출판사 관계자와 자유로운 토론을 나누는 형태다.

다른 독립서점들도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지역 주민 간 대화의 장을 열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서점 ‘지금의세상’은 매월 1회 ‘지금의살롱’이라는 심야 이벤트를 진행한다. 참가자가 고민을 적은 쪽지를 신청곡과 함께 서점 주인에게 건네면 주인이 고민을 읽고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해주는 식이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참가자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이야기꽃이 핀다. 김현정 지금의세상 대표는 “쉽게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책과 대화, 그리고 노래를 찾는다. 참가자들끼리 나눈 대화만으로도 힐링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Open전문가 아니어도 OK

프랑스 살롱 문화의 핵심은 평등과 개방성에 있다. 살롱에서만큼은 성별·계층·연령을 불문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한국은 그보다 더 개방적이다. 해당 분야와 관련된 지식이 아예 없어도 된다. 기존 모임에 인맥이 없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신청·참석할 수 있다.

단순 참석뿐 아니라 멤버 스스로가 모임을 주도·운영할 수도 있다. 취향관이 진행하는 ‘멤버살롱’은 일반 멤버가 개설해 진행하는 모임이다. 취향관 멤버는 누구나 관심 있는 주제로 살롱을 제안하고 개설할 수 있다. 스태프는 멤버가 제안한 살롱을 가다듬는 보조 역할 정도만 한다. 취향관 측에서 제안하는 취향을 공유하는 ‘프로젝트살롱’과는 달리 멤버 주체성이 중요하다. 트레바리에도 멤버 피드백을 받아들여 정규 클럽으로 탄생한 모임이 많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가치관·취향·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그 밖에 사회에서 따지는 다른 기준은 필요가 없다. 행복감을 얻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손병문 플라이스페이스 대표는 “살롱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접근성과 개방성이다. 누구나 편하게 다가와서 예술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장이 돼야 한다. 우리 동네, 또 바로 집 앞에서 콘텐츠를 즐기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미소 지었다.

Not free유료라서 더 열심

현재 운영되는 살롱 커뮤니티 상당수는 유료다. 4개월 단위로 시즌을 운영하는 트레바리는 클럽장이 있는 모임은 29만원, 없는 모임은 19만원을 받는다. 트레바리와 마찬가지로 콘텐츠 위주로 진행하는 소셜살롱 ‘문토’ 역시 3개월에 19~29만원을 내야 한다. 멤버십으로 운영하는 취향관은 3개월에 45만원으로 이용료가 조금 더 비싸다.

적지 않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역시 그만한 가치를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레바리는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 각계를 대표하는 명사들이 클럽장으로 나서 독서모임에 참여한다. 취향관도 비슷하다. 다양한 활동을 위해 필요한 비용과 언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 사용료까지 고려하면 그렇게까지 비싸지 않다는 평이다. 취향관 멤버는 시즌마다 기본 음료 50잔, 시즌 스페셜 음료 10잔을 무료로 즐길 수도 있다.

서비스가 유료인 덕분에 참여에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2년째 트레바리 활동을 하고 있는 임지형 씨는 “비용을 내고 참여하는 멤버 간의 토론이기 때문에 무작위 구성원으로 이뤄진 다른 모임에 비해 토론의 질이 높다. 일단 돈을 냈기 때문에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모임에 참석하려고 한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3호 (2018.08.29~09.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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