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의 한 유통물류센터 앞에는 재분류를 기다리는 하품 양파들이 상온에 노출된 채 썩어가고 있었다. 하품은 애초에 올해 수매 대상이 아니었으나 양파 가격 하락으로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자 지자체와 유통업체가 8월 수매를 진행했다. /이재익 기자 one@
[아시아경제 합천(경남)=이재익 기자] “저기 양파망들 밑에 검은 색들 보이죠? 다 썩어서 흘러내리고 있는 거예요. 어렵게 농사지은 것들이 그냥 버려지는 겁니다.”
8월말이면 수확한 양파가 이미 보관업자 창고나 유통업자의 손에 들어가 있어야 하지만 주인 잃은 양파들은 그대로 센터 곳곳에 켜켜이 방치돼 있었다. 이 센터가 올 여름에 수매한 하품 물량은 2만5000망(20㎏)에 달한다.
합천에서 양파농사를 짓고 있는 주희식 씨는 "지난해에 워낙 가물고 공급이 딸려 가격이 치솟다보니 올해 이곳저곳에서 다들 양파농사를 지었다"며 "원래 양파농사를 짓던 사람은 양파와 벼농사를 병행하기 때문에 쉽게 다른 농사를 짓지도 못한다"고 가슴을 쳤다.
양파 가격 급락의 가장 큰 원인은 양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양파 가격이 오른 것을 보고 농민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땅을 빌려 양파농사를 지으면서 전체 생산량이 폭등했다는 것. 농림부 추산 양파 재배 면적은 지난해보다 35% 증가했다. 농협 등에서 가격 하락을 억제하기 위해 올해 양파 재배를 줄여 달라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또 다른 양파농가의 최민성(가명)씨는 "일반인들까지 양파가격 오른 것만 생각하고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버리니 원래 양파농사하는 사람들만 손해일 수밖에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농민에게서 양파를 사들인 유통업체도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최근 사들인 양파들을 재분류한 뒤 폐기처분하는 것도 골머리다. 재분류 후 버려지는 것은 절반 정도로 구입 시 가격은 ㎏당 125원이지만 폐기처분 비용은 130원이다. 보관비, 인건비 등을 생각하면 손해비용은 더 커진다. 양파를 보관하고 있는 유통센터 직원 주지운(가명)씨는 "하품들로 분류돼 수매하지 않았다가 농민들의 수입이 줄어들자 지자체와 협의 후 뒤늦게 사들이다보니 비를 맞아 썩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지난해 가격 안정을 위해 수입산 양파를 갑자기 대량으로 들여오면서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한 상인들이 올해는 양파구입에서 아예 발을 빼기도 했다. 지난주에는 산지 공판장에 상인이 나타나지 않아 3일을 쉬었다. 장문철 합천유통 대표는 "농사는 밑에서 짓는데 정책은 책상 앞에서 정한다"며 "농민 손을 떠났다고 정부가 그냥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재익 기자 o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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