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욕' 사과한 한수민과 하하, 초점이 어긋났다

오은진 2018. 9. 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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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아직도 뿌리깊은 여성혐오, 세상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오은진 기자]

인터넷으로 자료 검색 중 사진 한 장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진 일이 있었다. 남자 중학교 학생들이 성교육을 받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그 중 한 남학생의 등에 '보이루'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보이루'는 인터넷 방송의 한 BJ가 만들어 사용한 말인데 이를 여성 성기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는 사람들이 많아 논란이 되고 있는 단어이다.

최근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 등으로 젠더 감수성이 많이 높아졌다고들 한다. 그런데 매일 새로운 여성혐오 표현이 등장하고, 그런 표현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여러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것을 보면 정말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건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어떤 학생은 '보이루'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아무런 문제없이 학교를 다니고, 어떤 학생은 '보이루'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고 대자보를 붙였다가 남학생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데(경향신문 2018.8.16.일자 기사 "보이루 비판하니 발차기가 날아왔다") 이것이 과연 달라진 세상인가.
 하하가 인터넷방송에서 손가락욕을 하고 있다
ⓒ 아프리카 TV
얼마 전 개그맨 박명수의 부인 한수민씨와 방송인 하하가 패륜 논란에 휩싸였다. 두 사람 다 자신이 하는 말이 진짜임을 증명한다며 특정 손짓을 했다. 이 제스츄어는 '내 말이 진짜가 아니면 우리 엄마는 창녀'라는 의미의 손가락 욕이다. 이를 접한 언론과 대중은 비난했고, 하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약속의 의미일 뿐이라며 오해를 끼쳐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비난과 하하의 사과는 맞고, 동시에 틀렸다. 손가락욕은 부모 욕이 아니라 뿌리 깊은 여성혐오이며, 약속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약속을 하는데 엄마의 순결을 재물로 삼은 것이 잘못된 것이다.

문명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여성 혐오(misogyny 미소지니, 여성에 대한 혐오나 멸시, 또는 반여성적인 편견)의 역사는 뿌리 깊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상대를 모욕할 때 쓰는 욕이다. 가장 널리 쓰이는 숫자욕은 엄마와 성관계를 맺을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그냥 단순히 '너의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심한 욕이 되기도 한다.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의미의 '걸레'라는 욕은 여성에게만 사용되는 욕이다.

한수민과 하하가 한 욕은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규정하고, 성경험 유무에 따라 성녀와 창녀로 나누는 이분법을 전형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여성혐오 사회에서 엄마는 같은 인간이 아닌 가장 성스러운 여자이므로 그를 창녀라고 욕하는 것이 제일 큰 모욕이다. 이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엄마의 순결을 재물로 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욕은 부모 욕이 아니라 엄마에 대한 모욕이며, 여성을 같은 사람이 아닌 성적인 대상으로만 본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이다. 
 강민호가 경기 중 손가락욕을 한 것이 중계되고 있다.
ⓒ SBS sports
사실 이와 같은 손가락 욕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삼성 라이온즈 포수 강민호 선수가 경기 중계 중 같은 손가락 욕을 하는 것이 카메라에 잡힌 것은 지금처럼 논란이 되지도 않았으며, 스포츠 선수가 같은 욕을 한 것이 처음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수민과 하하가 한 욕이 논란이 되고 사과를 했다는 점에서 사회가 이전에 비해 나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던 것을 인식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언제까지 몰랐다는 말로 면죄부를 받으려 하나. 언제까지 문제를 지적해야 하고,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의식 없는, 초점이 어긋난 사과를 들어야 하나.

이제는 우리 모두 공부가 필요하다. 혹시 내가 쓰는 말이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부하고 조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문제없이 편하게 잘 살았는데 왜 자꾸 불편하게 만드냐고? 내가 편하게 지냈다면 내가 편했던 만큼 누군가는 불편하고 조심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이 변했다고,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여성혐오는 넘쳐나고, 새로운 여성혐오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여성 성기를 비하하는 단어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성교육을 받고, 일본 야동에 자주 등장하는 '앙 기모띠'가 학생들의 유행어가 되는 지금이 편안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 않는가. 지금은 달라졌다고 말할 때가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말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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