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시리아 반군 최후 거점 '대학살' 위기

나주석 2018. 9. 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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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시리아 내전이 최종단계에 들어갔다. 민주화를 요구한 반정부군과 철권통치의 권력을 놓지 못하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힘겨루기는 이미 '독재 세력'의 승리로 결론이 난 상태다. 7년간의 끔찍한 전쟁은 이제 사실상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드만 남겨뒀기 때문이다. 외신들은 이들리브가 '블러드배스(Bloodbath, 대학살)'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터키와 인접한 이들리브는 그동안 '안전지대'로 설정됐다. 이 때문에 반정부군이 장악했던 지역들이 하나둘 무너질 때마다 정부군을 피해 피난을 떠난 시리아인들이 향했던 곳은 이들리브였다. 그동안 시리아군은 반정부군의 거점을 함락시킬 때 항복을 권고한 뒤 병원, 학교 등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폭격, 포격으로 상대편의 전의를 꺾었다. 그리고 불필요한 시가전으로 인한 상호 간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마지막에 퇴로를 열어주는 패턴을 보였다. 이때마다 탈출한 반정부군과 시민들은 대부분 이들리브행을 선택했다. 100만명 가량 살던 이들리브에 300만명이 몰려있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피난민들이 이들리브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은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반정부군을 후원해왔던 터키 인접지역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러시아와 이란, 터키 등 시리아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3개국이 이 지역을 평화지대로 선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군이 대부분의 반정부군 거점을 함락시킴에 따라 정부군의 주력은 이제 북서부 이들리브로 향했다. 이들리브를 안전지대로 지정하는데 합의했던 러시아의 태도 역시 달라졌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들리브를 차지한 세력은 쓸어버려야 할 테러리스트"라면서 "이들은 시민들을 인간방패로 삼고 있다"고 언급했다. 시리아 정부군이 내전 초기 고전을 겪다 극적으로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의 후원 덕분이었다. 러시아 역시 지중해에 함대 훈련 등을 하며 힘을 모으고 있다. 일부에서는 시리아군의 군사작전이 시작될 경우 서방세력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러시아군이 함대를 전개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들리브 일대에 가끔 포격이 진행되고, 항복을 권고하는 전단이 뿌려짐에 따라 정부군의 공세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스타판 데 미스투라 유엔 시리아 특사는 지난달 30일 급기야 "민간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면서 "시리아 정부군이 공세에 나서면 '퍼펙트 스톰'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좀처럼 유엔에서는 감정적, 자극적 표현을 자제하는데 미스투라 특사의 표현은 이례적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대재난을 뜻한 퍼펙트스톰을 언급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리브는 시리아 난민들에게는 그동안 시리아 내부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지만, 객관적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지역 거주민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국제기구 등이 제공한 식량으로 생존하고 있다. 외부의 지원이 끊길 경우 기아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시리아 정부군은 이 지역의 주요 농경지들을 파괴한 상태다. 그동안, 이 지역 시리아 난민들에게 동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터키가 이들리브 공세가 시작됐을 때 난민을 받아줄지는 의문이다. 터키는 현재 경제위기에 빠진 상태다. 더욱이 터키 정부가 수용한 난민은 300만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들이 국경을 열고 다시 난민을 받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들리브에 있는 반정부군 가운데 최대 세력은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이라는 조직이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알카에다와 연계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가장 강경파에 속하는 이들이 과연 시리아 정부군과 타협을 할 것인지 의문이다. 더욱이 시리아 정부군은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리고 있다. 실제 이들이 알카에다와 연계된 점 때문에 시리아 정부군은 나름의 공격 명분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HTS는 결사 항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동구타, 다라 등 항전 당시와 상황 역시 다르다. 예전에 반정부군은 싸우던 곳에서 물러서 이들리브로 피신을 했는데, 이제 더 이상 이들이 도주할 곳이 없다. 이들리브는 이제 반정부군이 장악한 시리아 최후의 거점이기 때문이다.

터키와 러시아는 이달 7일 카자흐스탄 수도 이스타나에서 만나 이들리브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리브에서 결전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 자리에서 타협점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HTS 등이 이 타협점에 동의해야 한다는 점은 별개의 문제다. HTS 등은 그동안 정부군과 가장 강력하게 맞섰던 세력이다. 사실 이들에게 있어서 항복, 또는 타협할 이유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들로서는 시민들을 끌어안은 채 정부군과 결전을 벌이는 것 이외의 전략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하지만 설령 기적이 있을 수 있다. 이들리브가 참극으로 끝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이 기적이 시리아의 비극을 막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내전이 끝난 뒤 정부 지지 세력은 정부에 맞서 총을 들었던 이웃들을 심판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리아 정부군은 반정부군 측에 섰던 시민들에게 고향에 돌아가, 다시 시작하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들이 고향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이들은 없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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