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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은 13세기 초 이후 축성"…청주읍성큰잔치 학술세미나

등록 2018.08.31 23: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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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큰잔치 학술세미나.

청주읍성큰잔치 학술세미나.

【청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청주 중심지에 자리 잡았던 청주읍성은 13세기 초 이후에 본격 축성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청주문화원(원장 박상일)은 31일 오후 문화원 세미나실에서 청주성 탈환 426주년 기념 2018 청주읍성큰잔치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청주읍성을 돌아보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이규근 호서문화연구원장은 '고려시대 청주(읍)성'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옛 문헌에 기록된 청주성과 관련해 "13세기 초 이전엔 우암산 기슭의 청주내성과 조선시대 읍성이 위치한 시가를 둘러싸고 무심천 동안(東岸)에 축성된 토축의 나성(羅城)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13세기 초 이후엔 청주내성과 조선시대 청주읍성 자리에 있던 용두사(龍頭寺)를 허물고 석축으로 축성된 청주읍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용두사를 폐하고 청주읍성을 쌓았다는 '낭성지(琅城誌)'의 기록 등을 들었다.

청주읍성은 고려 공민왕 11년(1362)에 홍수로 청주성이 침수됐고, 공양왕 2년(1390)에 홍수로 붕괴됐다는 기록도 나온다.

노병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매장문화재로 본 청주 도심의 역사적 위상 변화'에서 청주읍성 발굴조사 결과 라말여초(신라 말~고려 초) 유적과 유물이 가장 많이 발견됐음을 밝혔다.

노 실장은 "고려시대 유적·유물이 많이 분포하고 있음은 신라시대 이뤄진 도시에서 기초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우암산 정상에서부터 도심지역을 에워싼 나성은 고려 말 1361년 홍건적 침입 때 피란온 공민왕이 행궁으로 이용하면서 위상이 강조됐다"고 말했다.

이어 강민식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실장은 '공민왕의 청주 행차와 청주목의 자취'에서 "공북루와 망선루는 청주읍성 초기 단서를 제공하고 고려 때 청주목 관아의 일단을 이해하는데 유효한 자료"라며 "압각수 전설에 전하는 남문과 북문은 행궁이 아닐까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무지개가 동쪽에서 떠올라 왕궁에 낮게 걸쳤는데 두 끝은 청주의 내성을 넘어가지 않았다'는 '고려사' 1362년 기록을 들어 내성을 궁장(宮牆)으로 이해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 김양식 충북학연구소장을 좌장으로 7명의 패널이 종합토론을 했다.

올해 청주읍성큰잔치는 다음 달 1~2일 읍성 터가 있는 중앙공원과 성안길 일대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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