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4시간 격론.."처벌 불가피" vs "대체복무 가능"
12개 단체 의견수렴..대법관 검토 후 연내 선고
(서울=뉴스1) 이유지 기자 =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대체복무제 도입이 예고된 상황에서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인 이들의 형사처벌 여부에 대해 30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검찰 측과 피고인 측이 약 4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다.
이번 공개변론은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한지 14년 만으로, 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28일 대체복무제 없는 병역법 5조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상태라 기존 판례가 바뀔지 주목된다.
대법원에서 이날 오후 2시에 열린 공개변론은 오후 6시를 넘겨 종료됐다. 가장 큰 쟁점인 정당한 사유 해석과 병역의무 형평성 관련해 검찰 측은 '측량이 불가능한 주관적 영역은 법적으로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으며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피고인 측은 '심사과정을 거쳐 대체복무에 임할 경우 형평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 김후곤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은 "개인신념 등 주관적 영역은 측량과 평가가 불가능하기에 정당한 사유에 포함된다고 해석할 경우 같은 구성요건을 포함하는 납세 거부 등의 경우에도 처벌을 피할 '만능 열쇠'로 기능하며 형사법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며 "누구라도 개인신념으로 거부한다면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생명권 등 높은 기본권 제한에도 젊은이들은 국가존립과 사회안전을 위해 군 복무를 하고 있고, 국가가 존재해야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다"며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고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건 바람직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형벌 부과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피고인 측 오두진 변호인은 "병역 거부자는 병역 기피자들과 분명히 다르며 형사처벌로 양심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내면적인 것이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보호받을 가치가 있으므로 헌재가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 반박했다.
이어 "무죄 선고는 의무의 면죄가 아니며 피고인들은 처음부터 대체복무의 의사를 표했다"며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무죄 선고를 받더라도 깊고 확실하고 진실한 양심으로 의무를 이행하게 될 것이고 이는 앞으로 제정될 관련 규정에 적시하면 될 것"이라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박상옥 대법관은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면 다른 젊은이가 일정한 병력 형성을 위해 현역으로 복무하게 된다"며 "입영 젊은이들은 생명과 신체의 위험이 있는 병역 근무로 기본권이 제한되는데 어떤 근거로 정당성 있는 사유로 해석할 수 있나"라고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오 변호인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어차피 병력 자원이 될 수 없기에 국가와 사회 전체에 도움되도록 형평성에 맞게 수용한다면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메르스 사태, 경주지진 등 위험한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군복무보다 강도가 낮은가에 대해서는 일반인들도 수긍하고 있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검찰 측 참고인 장영수 고려대 법대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말 개인의 확고한 소신이냐는 점에 대해서는 엄격한 객관적 검증이 필요하며, 특혜가 되지 않도록 하는 합리적 대체복무를 전제했을 때만이 정당한 사유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 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쟁점인 국제법·비교법적 측면에서도 설전이 오갔다. 피고인 측은 독일·콜롬비아 등의 해외사례와 유럽 인권 조약 및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자유권 규약) 등을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가 국제법상 확립된 규범이라 주장했으나 검찰 측은 권고에 불과하며 각 나라의 국가존립과 국제정세에 따라 정책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조희대 대법관은 "피고인 측은 독일 헌법을 예로 들고 있지만 독일은 1, 2차 세계대전에서의 살상이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법률에 규정한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지금도 주변국이 군비를 증강하고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어 자위권 강화 필요성이 증대되는데 외국보다 군사적으로 엄중한 상황에서 정당화될 수 있겠느냐"고 질문했다.
권순일 대법관 또한 "침략전이 아니라 방어전의 개념에서 국가존립 자체가 흔들려 모든 구성원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할 때도 거부한다면 실정법의 집합체인 국가가 이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고 국가안보 측면에서 꼬집었다.
이에 피고인 측 이창화 변호인은 "영국도 미국도 전시에 대체복무제를 인정했다"며 "오히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교도소에 보내 국가비용을 낭비하는 것보다 국가안전보장과 공익이 요구되는 시기에 자신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답했다.
한편 김선수 대법관은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도 18조 양심의 자유 보장에 의해 도출되는 기본권리라 규정한다"며 "2015년 대한민국이 제출한 4차 보고서 심사 후 위원회는 18조 위반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전과기록 말소·보상 및 대체복무제 도입이 필요하다 했는데 이를 지킬 의무가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검찰 측 정유미 대검 공판송무과장은 "권고의 효력을 갖고 있을 뿐 명시적으로 법적 구속하는 것은 아니기에 위반했다고 해서 잘못됐다 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며 "실정법 해석의 문제도 발생하고 사회 전반의 인식이나 분위기 등 상황과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법무부도 이행하려 차근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국방부에서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신기훈 대령이 참고인으로 나와 대체복무제 논의 현황을 보고하기도 했다. 신 대령은 "국방부는 실무추진단과 민간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해 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가치는 형평성"이라 전했다. 고려요소로는 Δ형태 Δ기간 Δ심사방법 등에서 징벌적이지 않되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게 국민 공감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이번 재판의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선고된다 해도 병역의무가 종료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신 대령은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련 법규의 병과 규정을 적용해 대체복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 말했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의견수렴을 위해 국방부·병무청·대한변호사협회·한국형사법학회·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대한민국재향군인회 등 12개 단체에 쟁점에 관한 의견을 제출해달라 요청한 바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공개변론을 포함해 그간 심리한 내용과 검찰 및 피고인 측 의견서 등을 검토해 올해 내 선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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