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너의 결혼식'은 '첫사랑=썅X' 구도를 탈피했을까

김지혜 기자 작성 2018.08.29 13:24 수정 2018.08.29 16:28 조회 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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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결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너의 결혼식'이 늦여름 극장가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는 첫날 '목격자'를 제치고 정상으로 데뷔했다. 이어 6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한 끝에 전국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이번 주말 손익분기점(150만 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제작비 30억의 중·저예산 영화다. '인랑', '신과함께-신과 연', '공작' 등 200억 대작이 즐비했던 올여름 극장가에서 '너의 결혼식'의 선전은 작은 영화의 매운맛을 보여준 달콤한 결과다. 물론 여름 시장의 막바지인 8월 말 마지막 주자로 경쟁에 합류해 대작과 정면 대결을 펼치진 않았지만, 자생력을 발휘해 손익분기점까지 이른 것은 알찬 성과라 할 수 있다.

'너의 결혼식'은 고등학교 시절 만난 우연(김영광)과 승희(박보영)가 10여 년에 걸쳐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2012년 개봉해 전국 411만 관객을 동원한 '건축학개론'과 같은 해 개봉한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를 잇는 첫사랑 소재의 멜로 영화다.

너의 결혼식

이 영화는 특별히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고 볼 수는 없다. 주인공의 매력에 기대는 멜로 영화다. 이야기도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이 크며, 전개도 예상한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이 영화가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은 단순하고 수준이 낮다. 섹드립만이 10~20대 남성의 눈높이 수다를 보여주는 장치도 아닐 것이며, 그것이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안일한 생각이다.

그럼에도 젊은 관객들의 취향과 감성을 저격한 것은 적당한 판타지와 현실감각을 투영하며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소환했기 때문일 것이다. 

'너의 결혼식'은 첫사랑 영화이자 성장 영화로서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시도를 한다. 끈기와 노력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과 사랑 이후의 상처와 성장까지 아우른다. 이 과정에서 현실 연애의 지질함도 그린다. 

대체로 첫사랑 멜로는 남성적 시각에 편중된 서사 구성을 띤다. 이 작품 역시 남자 주인공 '우연'의 시선에 의해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10여 년의 사랑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승희는 타자화된 욕망의 객체로 비친다.

이 자체가 나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관객은 승희의 내면의 변화를 추측할 뿐 충분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승희는 '어장관리녀', '간 보는 여자'의 굴레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앞서 개봉한 '건축학개론'이 제시한, 첫사랑에 실패한 남성이라면 일견 공감한다는 '첫사랑녀=썅X' 구도에서 절반 정도 탈피했다. 

너결

'너의 결혼식'은 서로가 서로를 만남으로 인해 삶에 있어 얼마나 큰 자극이 됐고 성장의 촉매제가 됐는지를 보여준다. 공부에 별 뜻이 없던 우연은 승희를 만나기 위해 명문대에 입학하고, 시련의 세월을 거쳐 자신의 꿈도 이룬다. 물론 이 과정조차 판타지적 요소가 큰 것은 사실이다.

승희는 '3초의 법칙'을 이야기하고, 우연은 '사랑은 타이밍'이라며 엇갈리는 운명을 안타까워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이야말로 이 두 가지 법칙에 기인한 과정이며 결과였다. 

결국, 첫사랑 영화는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사랑의 향수를 자극하느냐 마느냐가 성패의 갈림길이 된다. 한 영화를 보고도 각자의 추억을 환기할 수 있는 정서적 자극이 이뤄져야 그 멜로 영화는 관객과 소통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건축학 개론'이 400만 관객을 흥행에 성공하며 신드롬을 일으켰을 때 첫사랑에게 연락을 시도한 중년남성이 적잖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생애 처음 느낀 사랑을 그린 영화가 공감대를 형성했을 때 선사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감과 울림의 지수는 그만큼 높다.

너결

'너의 결혼식'은 남성의 시선으로 그려진 첫사랑 영화지만 '여성 판타지'를 한껏 자극한다. 이 작품은 애초 강하늘 캐스팅을 추진하다가 불발돼 김영광에게 시나리오가 넘어갔다. 

결과적으로 이 캐스팅은 탁월했다. 신선한 피의 수혈은 같은 포장지라도 다른 내용물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선사했다. 김영광은 모델 출신다운 멋진 외모를 뽐내며 20~30대 여성의 가슴을 흔들었다. 그간 무수한 작품에서 활약해왔음에도 이렇다 할 매력을 발산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배우에게 작품과 캐릭터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여기에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에서 일가견을 보여온 '국민여동생' 박보영의 안정적인 연기력과 특유의 사랑스러움은 여자친구 손에 이끌려 영화를 보러온 남성 관객에게 '오빠 미소'를 짓게 했다. '뽀블리' 박보영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함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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