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가난을 이겨낸 '열 개의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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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핀란드 헬싱키에서 본 음악 축제 '플로 페스티벌'에는 숨은 보석 같은 공간이 있었다.
장내에 설치된 10개의 특설무대 모두 저 나름의 개성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나만 알고 싶은 곳.
10일 저녁 무대에 오른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루보미르 멜닉(70·사진). '지속 음악(Continuous Music)'의 창시자인 그는 피아노 한 대만으로 독특한 소리 풍경을 자아냈다.
그의 음표들은 세잔의 붓 자국이나 차창의 빗물처럼 세차게 퍼부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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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바로 ‘디 아더 사운드(The Other Sound) 스테이지’다. 실험적 현대 음악가들을 위한 무대. 미니멀리즘의 개척자인 미국의 거장 테리 라일리(83)의 연주를 본 것도 바로 이곳에서였다. 3만여 관객이 장사진을 이룬 메인무대 쪽에서 떨어져 후미진 곳에 자리한 데다 실내가 어둡고 아늑해 이곳은 페스티벌의 안식처 역할을 했다.
안식을 명상까지 끌고 간 이가 있었다. 10일 저녁 무대에 오른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루보미르 멜닉(70·사진). ‘지속 음악(Continuous Music)’의 창시자인 그는 피아노 한 대만으로 독특한 소리 풍경을 자아냈다.
특별한 연주법의 비결로 그는 가난과 배고픔을 꼽는다. 젊은 시절에 멜닉은 프랑스 파리 국립오페라극장의 문지기로 일했다. 돈이 없어 거리에 버려진 과일과 야채를 주워 먹기도 했다. 멜닉은 “극도의 허기는 예민한 감각을 깨워주었고, 고통을 잊기 위해 피아노 연주에 몰두한 것이 나를 길러냈다”고 말한다.
한때 그는 필립 글래스, 스티브 라이히가 많은 연주자를 동원해 황홀한 소리 풍경을 자아내는 것을 듣고 좌절하기도 했다. 자신에게는 연주자를 고용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생각했다. “내게는 무려 10개의 손가락이 있지 않은가.”
이날 밤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옆 작은 테이블에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멜닉은 천으로 된 싸구려 캐리어에서 자신의 CD와 LP들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혼자서 음반을 팔고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까지 취하느라 분주한 노년의 멜닉은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가 여전히 가난하다는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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