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비웃듯… 외제차 몰며 양육비 안주는 ‘못된 아빠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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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우는 이혼 한부모 가정

한모 씨(43·여)의 전남편은 1년 8개월째 연락두절 상태다. 전남편의 외도로 두 사람은 재판 이혼을 했다. 2016년 12월 법원은 한 씨에게 아들의 양육권을 인정하며 전남편에게 “아이가 성인이 되는 2028년까지 매달 6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전남편은 단 한 차례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파트, 차량 등의 명의는 바꿨다. 거주불명 상태의 전남편을 찾기 위해 경찰에 휴대전화 위치 추적 요청도 했지만 “범죄자가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달에 200만 원 남짓 버는 한 씨는 홀로 11세 아들을 키우고 있다. 한 씨는 “이번 달에는 카드 현금서비스도 받았고 주말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며 “양육비 소송을 하자니 비용도 만만치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을 받은 뒤에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아빠’들이 많다. 2012년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한부모 중 양육비를 전혀 받지 못한 이들은 83%가 넘는다. 양육비를 지급하는 사람이 여성인 경우도 극소수 있긴 하지만 대부분 남자다. 김도현 변호사는 “양육비 소송을 청구하는 사람의 98%가 여성”이라고 말했다.

박모 씨(53·여)의 전남편 역시 6개월째 두 딸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 지난해 7월 이혼 후 전남편은 7개월간 양육비를 지급하다가 올 2월부터 끊었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전남편은 고가의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두 딸의 양육비는 한 푼도 주지 않으면서 “억울하면 소송하라”며 버티고 있다. 친정집에 얹혀사는 박 씨는 매달 아르바이트로 100만 원 남짓 벌어 생활비 등을 겨우 충당하고 있다.

현행법상 ‘양육비 미지급’은 일반적인 채무 미이행 사건처럼 소송을 통해 받아내는 수밖에 없다. 소송비가 보통 수백만 원 들고 기간도 길게는 3년 이상 걸린다. 승소를 하더라도 재산을 숨기고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추가로 소송을 해야 한다. 김도현 변호사는 “비양육자(대부분 전남편)가 재산을 빼돌리면 사해행위취소소송을 통해 숨긴 재산을 찾아야 하는데 여기에 또 3년가량 걸린다. 포기하는 분들이 다수”라고 말했다.

비혼 한부모 가정의 경우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비혼모 대부분은 상대 남성의 개인 정보를 알지 못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 때문에 비혼 한부모의 양육비 신청률은 10% 미만에 그친다.

합법적으로 양육비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법을 무릅쓰고 ‘무책임한 아빠들’을 고발하려는 이들도 나타났다. 지난달 만들어진 ‘Bad Fathers(나쁜 아빠들)’라는 사이트에서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빠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28일 현재 16명의 얼굴 사진, 이름, 거주지, 나이 등이 올라와 있다. 사이트에는 ‘법원의 판결문, 합의서 등 사실관계를 거쳐 작성된 리스트이며 양육비 지급 사실이 확인되면 즉시 삭제된다’고 쓰여 있다. 사이트 운영자는 “불법인 줄 알지만 ‘아빠의 초상권’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더 우선돼야 하는 가치”라고 밝혔다.

선진국에서는 양육비 미지급 행위를 ‘아동학대’로 본다.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영국 등은 양육비 지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의 운전면허를 정지하거나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소영 변호사는 “미성년 자녀의 3년 치 양육비를 미리 법원에 선납하게 하거나 재산분할 금액 중 일부를 양육비로 예납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자현 기자
#이혼 한부모 가정#양육비 안주는 아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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