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딩크 귀화를" .. 베트남 SNS선 박항서·송중기가 동급

김지한.박린 2018. 8. 2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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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 4강 돌풍 '항서 매직'
16강·8강서 교체 선수가 결승골
족집게 기용에 축구팬들 열광
박 감독 리더십 다룬 책도 나와
오늘 한국과 준결승전 앞두고
"조국 사랑하지만 난 베트남 감독
한국 절대 두려워할 필요 없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남자축구 대표팀이 27일 2018 아시안게임 8강전에서 시리아를 꺾고 4강에 진출하자 하노이 거리를 가득 메운 베트남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함께 가자 우리! 꿈★은 이루어진다!’

지난 27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베트남과 시리아의 8강전이 열린 인도네시아 브카시의 패트리엇 스타디움. 관중석에 펼쳐진 대형 걸개 천에는 한글 문구가 눈에 띄었다. 처음엔 한국 응원단이 내건 플래카드인 줄 알았지만, 확인해 보니 베트남 응원단이 적어 온 문구였다.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한국인 박항서(58) 감독을 향한 메시지였다.

27일 열린 아시안게임 축구 8강전 베트남-시리아 경기에 등장한 한글 플래카드. 브카시=김지한 기자
베트남 축구팬들의 염원대로 베트남은 8강에서 시리아를 1-0으로 누르고 꿈을 이뤘다. 이 순간 관중석에 모인 1000여 명의 베트남 팬과 베트남 취재진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현장에서 중계하던 베트남 프리랜서 응우옌티빈은 “미스터 팍(Mr. Park) 덕분에 1년도 안 돼 베트남 축구가 달라졌다.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제 우린 금메달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감독을 맡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의 8강전이 27일 인도네시아 브카시의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어어 경기를 하는 베트남 관중들이 땡큐 미스터 박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고 응원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베트남 관중의 박항서 감독을 향한 신뢰는 대단했다. 베트남이 조별리그 3전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하자 인도네시아로 직접 날아가 경기를 관전하겠다는 팬들이 줄을 이었다. 이 때문에 베트남항공은 경기 당일인 27일 자카르타행 특별기 3편을 띄웠다.

이들은 금성홍기가 새겨진 붉은 유니폼을 입고 ‘무적의 베트남’이란 의미의 ‘베트남 보딧!(Vietnam vo dich!)’을 경기 내내 외쳤다. 일부 팬들은 "박항서 감독님 힘내세요!”를 한국어로 힘껏 외쳤다. 플래카드 중엔 ‘사랑해요’‘고맙습니다’ 등 박항서 감독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눈에 띄었다.

연장 후반 3분 응우옌반또안의 결승골이 터지자 경기장 내 베트남 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금메달을 확정지은 것처럼 기뻐했다. 박항서 감독이 경기를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 베트남 기자들은 일어서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스태프들이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을 사상 첫 4강에 올려 놓은 박항서 감독(가운데)을 끌어안고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은 국제축구연맹(FIFA) 가맹 211개국 중 랭킹이 102위에 불과한 동남아시아 축구 약체다. 하지만 박 감독이 ‘항서 매직’을 이뤄냈다.
‘베트남 돌풍’의 주역 박항서 감독은 잡초 같은 축구인생을 걸어 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코치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면서 4강 신화를 썼다. 하지만 그해 아시안게임 감독을 맡아 4강에서 탈락하자 경질됐다. 이후 K리그 경남·전남·상주 감독을 지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박항서 감독이 K리그 감독 시절 벤치에서 졸고있는듯한 모습. 베트남 감독 초창기엔 슬리핑 원이란 조롱을 받았다. [SPOTV 캡처]

결국 쫓기듯 한국을 떠나 지난해 10월 베트남 23세 이하(U-23)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베트남 진출 초기엔 박 감독이 벤치에서 졸고 있는 듯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게 알려져 ‘슬리핑 원(Sleeping one)’이란 별명을 얻었다. 조제 모리뉴 맨유 감독의 별명 ‘스페셜 원(특별한 존재)’에 빗댄 조롱 섞인 표현이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지난 1월 베트남을 아시아 U-23 챔피언십 준우승 고지로 이끌며 ‘항서 매직’을 선보였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바레인·시리아를 연파하고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4강에 진출했다. 16강과 8강에서 박 감독이 교체 투입한 선수 2명이 모두 결승골을 넣었다.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파파 리더십’으로도 유명하다. 마사지 기계로 선수의 발을 정성스럽게 문지르는 장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베트남 전역에 퍼지면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박항서 감독은 4강진출에 성공한 뒤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한국을 절대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우리는 베트남이라고 독려했다. [유투브 캡처]

박 감독은 4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다음은 한국이다. 절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베트남이다. 오케이”라고 외쳤다. 그런데 이 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베트남 사회에서 큰 화제를 낳고 있다.

베트남 신문들도 일제히 아시안게임 4강 진출을 머리기사로 다뤘다. 베트남 징은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대표팀에서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던 박항서가 베트남 축구에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다. 생큐 박항서”라고 전했다.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을 다룬 책도 베트남에서 출간됐다.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는 국영TV를 통해 박 감독과 대표팀에 축하 인사를 전하며 격려했다.
베트남 국민들은 아시안게임 4강에 진출하자 거리로 쏟아져나와 박항서 실물 크기 입간판을 들었다. [베트남 징 캡처]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영방송인 VOV가 베트남 축구대표팀에 포상금으로 10억 동(약 475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28일 전해졌다. 또 베트남축구협회가 6억 동(약 2850만원)을 내놓기로 했다. 베트남 가전업체 아산조는 2만5000달러(약 2770만원)를 쾌척하면서 선수 전원에게 55인치 TV를 선물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모인 포상금만 1억원이 넘는다. 베트남의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385 달러(약 264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아시안게임 4강에 진출하자 베트남 팬이 박항서 감독 얼굴과 태극기가 그려진 깃발을 흔들고 있다.[베트남 징 캡처]

4강 진출이 확정된 뒤 수도 하노이 등 베트남 전역엔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구대표팀의 준결승 진출을 자축했다. 박항서 감독의 사진이 담긴 실물 크기 입간판과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팬도 있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선 축구팬에겐 한국 연예인보다 박항서 감독이 오빠(OPPA)라는 글이 전파됐다.

베트남 축구팬들은 대표음식 쌀국수와 히딩크를 합해 그에게 ‘쌀딩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소셜미디어에는 박 감독과 한류스타 송중기를 나란히 배치한 사진이 돌아다닌다. 적어도 베트남에선 박항서 감독의 인기가 송중기를 누를 판이다.
27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 남자 축구 8강 베트남과 시리아의 경기. 연장 승부 끝에 1-0으로 승리한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원정 응원단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과 한국은 1960년대 베트남전쟁 때 총칼을 겨눈 사이였지만 요즘 9000만 베트남인들은 한국 사람들을 친근하게 여긴다. ‘민간 외교관’ 박 감독 덕분에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올라갔다. 베트남 팬들은 박 감독에게 베트남으로 귀화할 것을 요청할 정도다. 베트남을 찾은 한 한국 관광객은 "식당에서 박항서의 나라에서 왔다며 음료수를 공짜로 줬다”고 전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U-23 남자축구에 출전하는 베트남 축구대표팀 박항서 감독이 28일 오후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베트남은 29일 이곳에서 대한민국과 준결승전을 치른다. [뉴스1]

박항서 감독은 29일 오후 6시 인도네시아에서 조국 한국과 결승 진출을 다툰다. 운명의 장난처럼 박 감독은 조국에 칼을 겨눠야 한다. 베트남이 승리하면 잉글랜드 토트넘에서 활약하고 있는 공격수 손흥민(26)은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고 군에 입대해야 할 처지다.

하지만 박 감독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현재는 베트남 감독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면서 "2002년 월드컵 때는 코치였지만 지금은 감독이다. 그땐 4강에서 도전을 멈췄지만 이번엔 4강에서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카르타=김지한 기자, 박린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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