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매트를 처음 밟았던 8년 전만 해도 부녀(父女)는 감히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딸이 아시안게임 같은 종목에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설 것이란 사실을. 꾹 참았지만 둘은 끝내 펑펑 눈물을 쏟았다. 딸은 매트 위, 마이크를 잡은 아버지는 중계석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여서정(16·경기체고 1)은 23일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체조 도마 결승(인터내셔널 엑스포)에서 두 차례 연기 평균 14.387점을 획득하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은메달은 올해 마흔셋의 우즈베키스탄 여자 체조 '전설' 옥사나 추소비티나(14.287점)였다.
아담한 체구(150㎝·45㎏)의 여서정은 빨간색 체조복에 빨간 끈으로 머리카락을 질끈 맸다. 결선 출전자 8명 중 마지막 순서로 경기를 치러 부담이 클 법도 했지만, 두 차례 모두 안정적 연기를 선보이며 우승을 확정했다. 1986 서울 대회(평균대 서선앵, 이단평행봉 서연희) 이후 32년 만에 나온 한국 여자 체조 금메달이었다. 더구나 여자 도마 금은 최초다.
경기 후 미소를 띠었던 여서정은 최종 성적을 확인하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같은 시각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그의 아버지이자 한국 남자 체조의 전설인 여홍철(47) 경희대 교수 역시 눈물을 훔쳤다. 1994·1998 2회 연속 아시안게임 도마 금을 획득한 그는 이번 대회에서 방송 해설위원으로 자카르타를 찾았다. 20년 전 자신이 그랬듯, 도마를 넘어 아시아를 제패한 딸의 모습을 현장에서 본 여홍철은 "장하다. 너무 장하다"며 "오전에 서정이와 통화했더니 긴장된다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를 치르라'고 했다. 그동안 고생한 딸을 얼른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체조 DNA'를 타고난 여서정은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자연스럽게 체육관을 드나들었고, 여덟 살인 2010년 본격적으로 체조를 시작했다. 여홍철은 "처음엔 '수없는 부상을 견뎌야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아야 한다'고 말렸다. 하지만 '끝까지 하겠다'는 서정이를 이길 수 없었다"고 했다. 여서정의 어머니 김채은(45)씨도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여자 체조 단체)다.
시작할 땐 몰랐지만 어느새 '여홍철의 딸'이란 타이틀이 부담으로 따라왔다.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도 '아버지 덕'이란 따가운 시선이 따라붙었다. 하루 5시간 넘는 강훈련을 견디고, 수없이 경기 영상을 돌려본 여서정은 경기체중 시절 3년 동안 전국소년체전에서 금메달 11개를 휩쓸었다. 여홍철은 "딸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실력을 문제 삼은 편견을 스스로 떨쳐내 대견하다"고 말했다.
'여홍철의 딸' 대신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여서정은 이날 경기 후 "믿기지 않는다. 나의 100%를 다하고 내려왔다"고 했다. 아버지 여홍철이 체조 중계 중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아시안게임 금을 땄으니까 올림픽 금메달도 아빠 목에 꼭 걸어 드리고 싶다"며 울먹였다. 여홍철은 1996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다.
앞서 열린 남자 마루 결선에선 김한솔(23)이 14.675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 광저우대회의 김수면에 이어 8년 만에 이 종목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김한솔은 일찍이 '제2의 양학선'으로 주목받았다. 체조 선수 출신인 아버지 김재성씨는 까불까불한 여덟 살 아들의 성격을 고치기 위해 체조를 권유했다고 한다. 주 종목은 마루지만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도마를 연마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양학선의 이름을 딴 '양1'(도마를 앞으로 짚고 세 바퀴 비틀기) 성공률을 80% 정도로 끌어올렸다. 24일 남자 도마 결선에도 이름을 올린 김한솔은 대회 2관왕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