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신명철 기자] 한국 축구의 기둥 손흥민(26)이 짧으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까지, 길면 2026년 캐나다·멕시코·미국 월드컵(48개국 출전) 때까지 군 복무 문제로 신경 쓰지 않고 안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느냐 여부를 결정짓는 4차례 경기 가운데 첫판이 축구 팬들의 비상한 관심 속에 열린다.
한국은 23일 밤 인도네시아 치카랑 위바와무크티 스타디움에서 숙적 이란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16강전을 치른다. 대회 2연속 우승과 손흥민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 병역 특례가 걸린 금메달로 가는 길에 놓인 가장 큰 고갯길이다.
녹아웃 스테이지에 오른 모든 나라가 쉽지 않겠지만 이란과 경기를 넘으면 8강전에서 우즈베키스탄-홍콩 경기 승자와 만나고 이 관문을 통과하면 팔레스타인-시리아 베트남-바레인 경기에서 살아남은 나라와 결승행 티켓을 겨루게 된다.
반대 시드에 있는 나라들 가운데 결승에 나설 수 있는 나라로는 A 대표 팀 경기력과 관계없이 이번 대회 조별 예선 성적이 좋은 중국(3승, C조 1위)을 먼저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16강전에서 난적 사우디아라비아(1승1무1패, F조 3위)와 만난다.
이 경기에서 이긴 나라가 조별 예선에서 한국을 2-1로 이긴 말레이시아(2승1패, E조 1위)-일본(2승1패, D조 2위) 경기 승자와 4강 진출을 다툰다. 변수가 많은 축구지만 대체로 이 경기 승자가 결승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대진표로 보나 아시아 축구 판도로 보나 한국과 이란 경기는 이번 대회 우승국을 가릴 최대 격전이 될 전망이다.
한국과 이란은 모든 연령대별 경기에서 호각을 이루고 있다.
한국은 국가 대표 팀 경기에서는 9승8무13패로 밀린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 1-0(득점자 윤빛가람) 승리 다음에는 1무 4패다. 그러나 23세 이하 대표 팀 경기에서는 4승1무1패로 앞서 있다. 그런데 이 전적에서 무승부로 기록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진, 뼈아픈 경기가 있다.
잠시 시곗바늘을 16년 전으로 돌려 보자.
2002년은 올해 2018년처럼 겨울철 올림픽과 월드컵, 여름철 아시아경기대회가 잇따라 열리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 해였다. IOC(국제올림픽위회)가 올림픽 흥행을 위해 동·하계 대회를 교차해 치르기로 결정한 뒤 1994년부터 4년마다 한국 스포츠 팬들은 이 같은 스포츠 축제를 즐기고 있다.
2002년 한국 스포츠는 스타트가 그리 좋지 않았다. 2월에 열린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철 올림픽에서 부진과 불운이 겹치면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로 종합 14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 앞서 1992년 알베르빌 대회 10위(금 2 은 1 동 1),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6위(금 4 은 1 동 1), 1998년 나가노 대회 9위(금 3 은 1 동 2) 등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대회에서는 남자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남자 쇼트트랙은 알베르빌 대회와 릴레함메르 대회에서 각각 2개, 나가노 대회에서 1개의 금메달을 따 한국의 종합 10위 진입에 견인차가 됐지만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는 한 개의 메달도 건지지 못했다.
김동성이 1500m에서 1위로 골인했지만 호주의 제이스 휴이시 심판에 의해 반칙으로 인정돼 실격 처분을 받으면서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것이 부진한 성적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이어 6월에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 제17회 월드컵(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거둔 4위의 기쁨은 축구 팬들, 나아가 20대 중반 이상 한국인들 기억에 생생히 살아 있다.
그리고 월드컵 4강의 열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그해 가을 부산에서는 1986년 서울 대회 이후 두 번째로 한국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북한이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종합 경기 대회에 처음 출전했고 만경봉호를 타고 온 북한 응원단이 연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회 마지막 날 남자 농구가 중국에 102-100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금메달을 차지했고 배드민턴 복식에서 남녀가 동반 우승한 데 이어 마라톤의 이봉주가 2시간14분04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는 인상적인 마무리를 했다.
이봉주의 금메달은 1998년 방콕 대회에 이어 아시아경기대회 2연속 우승인 데다 1990년 베이징 대회 김원탁, 1994년 히로시마 대회 황영조를 포함해 4개 대회 연속 우승이어서 더욱 빛났다. 전날 여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북한의 함봉실과 함께 이룩한 남남북녀의 ‘오누이 금메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축구 팬들 관심은 남자 축구에 집중돼 있었다.
이번 대회와 마찬가지로 남자 축구 선수들의 병역 특례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은 홍명보를 잠시 대표 팀 명단에서 빼는 등 선수들 사이에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고도의 전략을 쓰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최종 엔트리에서 빠진 두 명의 선수가 있었다. 이동국과 고종수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차범근 감독이 부진한 성적에 책임을 지고 중도 귀국하는 등 어수선한 가운데 끝났지만 이동국과 고종수는 이후 10년 이상 한국 축구를 이끌고 갈 선수로 크게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발표된 최종 엔트리에서 두 선수 이름은 없었다. 고종수는 무릎 부상이었고 이동국은 히딩크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맞이한 부산 아시안게임에 월드컵 4강으로 ‘병역 특례의 특례’ 혜택을 받은 이운재(29)와 이영표(25)가 와일드카드로 합류한 가운데 축구 경기가 시작됐다.
또 다른 와일드카드로 한일 월드컵 멤버가 아닌 김영철(26)과 현영민 이천수 박지성 최태욱(이상 한일 월드컵 멤버) 이동국 김은중 조병국 등으로 짜인 한국은 조별 예선 A조에서 몰디브와 말레이시아를 4-0, 오만을 5-2로 가볍게 따돌리고 조 1위로 8강에 올랐다. 준준결승전에서는 바레인을 1-0으로 눌렀다. 이 과정에서 이동국이 4골을 터뜨렸다.
그리고 4강전에서 마주친 이란은 골키퍼 에브라힘 미자푸르와 수비수 야하 골모하미디, 공격수 알리 다에이를 와일드카드로 뽑아 이 대회에 나섰다.
1996년 아랍에미리트연합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에 2-6 참패를 안길 때 4골을 넣은 알리 다에이는 이 대회에서 2골을 기록하며 노익장을 자랑했다. 다에이는 이후 4년 더 이란 국가 대표 선수로 뛰었다.
연장 접전 끝에 0-0으로 승패를 가리지 못한 한국과 이란은 승부차기에 들어갔고 이란은 5명의 키커가 모두 성공한 반면 한국은 두 번째 키커 이영표가 크로스바를 때리는 실축으로 3-5로 졌다. 이동국 최태욱 박지성은 성공했다.
한국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태국을 3-0으로 꺾었지만 이동국을 비롯한 여러 선수가 이후 입대해야 했다. 이란은 결승전에서 일본을 2-1로 물리치고 아시안게임에서 4번째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이란에 져 여러 선수들의 병역 특례 혜택 기회를 날린 것은 물론 아시안게임 축구 최다 우승 타이틀을 이란에 넘겨줬다.
이제 다시 이란이다. 결론은 세 마디다. 긴장하지 말자. 평소 하던 대로 하자. 그리고 승리의 기쁨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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